물회의 진가를 확인시킨 '어랭이물회'

[맛객의 맛있는 이야기]

등록 2008.11.15 13:14수정 2008.11.1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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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랭이는 제주 바다에서 흔하게 잡히는 생선이다. 제주 사람들은 이 어랭이를 잡아서 회를 치거나 물회를 만들어 먹는다. 먹어본 바, 그 맛이 아주 뛰어나다 ⓒ 맛객


제주도에 왔다면 물회 한 그릇은 비우고 가야 섭섭하지 않을 성 싶었다. 그렇다고 막 들어갈 수는 없는 일. 자리물회로 명성을 떨쳤던 그 집은 이전한 뒤, 맛과 서비스에서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해서 찾아낸 곳이 바로 이집, 서부두 앞에 자리한 산지물이다.


어랭이물회를 먹어본 바, 탁월한 선택이었다. 방송용어로는 대박이었다. 아니 대박특급이라 해도 자신 있는 맛이었다. 원래 처음부터 물회를 기대하고 간 건 아니었다. 굳이 발단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언젠가 한 친구로부터 받은 문자로 연결된다.

'맛객, 어랭이회 먹어봤어?'

뜬금없이 어랭이회라니. 이유인즉슨, 제주에서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간 식당에서 어랭이회를 접했단다. 그 순간 내 생각이 나서 알려주려고 했단다. 나를 생각해준 건 고마운데.... 이건 염장질이야 염장질!

어랭이는 제주 인근지역에서만 나는 물고기이다. 크기가 작아 그동안 잡어 취급을 받아왔는데 자연산 바람을 타고 급 부상해서 제주의 맛이 되어가고 있다. 자랑하자면 어랭이는 100프로 자연산이란 말씀.

산지물 식당에는 어랭이물회만 있는 건아니다. 전복물회, 소라물회, 한치물회, 활한치물회,  쥐치물회, 자리물회, 해삼물회, 그리고 어랭이물회까지 총 8종에 이른다. 이중에서 어랭이물회를 선택한 건 그때 친구의 염장질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해서였을 것이다. 아마 이른 아침만 아니었다면 한 접시에 3만원하는 어랭이회를 시켜놓고, 한라산소주와 궁합을 맞췄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은 어랭이물회를 대하는 순간, 세찬 제주 바닷바람에 저 멀리 마라도까지 날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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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게 칼질한 채소와 진한 국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물회의 진수를 느끼게 해준다 ⓒ 맛객


처음엔 어랭이무침이 나오나 싶을 정도로 내용물이 풍성하게 쌓여져 있어, 먹기도 전부터 물회의 지존을 티내고 있었다. 단순히 양만 많은 게 아니라 오이, 당근, 양파 등을 섬세하게 칼질했다. 이는 곧, 채소와 회, 국물이 따로 놀지 못하게 하는 맛의 미학을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역시나 눈에 보이는 것이 속임수는 아니었다. 혀에 착 감기는 맛은 우리가 왜 물회를 먹어야 하는지 정답을 제시해주었다. 물회맛의 진수를 보고자 한다면 이른 아침에 먹길 권한다. 뜨거움에 익숙한 도시인들에겐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물회 한그릇 비우고 나면 속이 확 풀리는 느낌, 물회란 그런 것이다.

참! 이 글의 제목이 맛객 미식인생 최고의 물회는 어랭이물회라고 해서, 어랭이가 최고로 맛있는 물횟감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산지물에서 맛본 어랭이물회가 그간 먹어본 물회중에서 최고로 맛있었다는 얘기이다. 그러니까 이집의 다른 물회 즉, 전복이나 자리물회를 맛봤어도 내 미식인생 최고의 물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산지물의 물회 솜씨가 뛰어나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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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회에 밥 한술 놓고서 떠 먹는 맛이란... ⓒ 맛객


산지물은 영업한지 10여년정도 지났지만 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식당들에 비해 맛과 서비스에서 아직 정성을 다하고 있음을 느꼈다. 일예로 주방에서 반찬쟁반을 들고 나오던 도우미를 보고 두사람이라고 말하자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리고 잠시 후 물병과 물컵을 들고 와 주문을 받는다.

보통 손님이 새로 와도 자신이 하던 일을 마저 마치고 주문을 받거나, 불러도 잠시만요~ 하는 게 익숙한 한국의 서비스 수준이 아니었던가. 산지물에서 손님부터 챙기는 게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우리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지금도 살아있어 산지물에 대한 좋은 평판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한국의 식당은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서비스가 발전하나 변질되거나 두 부류로 나뉜다. 아쉽게도 한국의 많은 식당들은 후자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 맛객이 산지물에 바라는 건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하라는 것이다. 다음에 또 다시 제주를 찾게 된다면 그땐, 산지물에서 여유를 가지고 한 잔 걸쳐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어랭이 #어랭이물회 #산지물 #제주도 #제주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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