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 싼 막둥이, 알고 보니 ‘부전자전’

등록 2008.11.10 15:02수정 2008.11.1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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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자전의 주인공 사진은 올해 가을 막둥이의 학교에서 학예회가 있어 갔다가 막둥이의 교실 앞에서 단둘이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은 중2 딸아이(막둥이의 누나)가 찍었다. ⓒ 송하나

▲ 부전자전의 주인공 사진은 올해 가을 막둥이의 학교에서 학예회가 있어 갔다가 막둥이의 교실 앞에서 단둘이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은 중2 딸아이(막둥이의 누나)가 찍었다. ⓒ 송하나

지금은 일요일 아침 7시. 잠결에 소리가 들려 잠을 깬다. 참고로 우리 집 네 식구(아내, 나, 중2 딸, 초2 아들)는 아이들 평생 한 방에서 함께 잠을 자온 터다.

 

“엄마, 나 오줌 싼 거 같아요.”

“뭐, 그래. 그럼 옷 벗고 화장실 가서 씻고 오렴. 엉덩이도 잘 씻어야해 냄새 나.”

 

그렇다. 우리 집 막둥이가 밤새 이불에다가 지도를 예쁘게 그려놓은 게다. 아내도 평소 하던 대로 막둥이에게 별로 눈치나 야단도 치지 않고 막둥이의 다음 행동을 지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뭐 그렇다고 우리 막둥이가 자주 야간근무(이불에 지도 그리는 일)를 하는 것은 아니니 지나친 상상은 금물이다.

 

잠결에 듣고 있던 나도 ‘오줌’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왠지 오줌이 마려워서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화장실로 간다. 방금 화장실에 들어간 막둥이의 뒤를 이은 것이다.

 

내가 화장실을 들어서자마자 막둥이는 화장실 세탁기 앞에서 한참 옷을 벗고 있다가 완전히 ‘얼음(‘얼음 땡’ 놀이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 되는 게 아닌가? 부스스 나타난 아빠를 보자 마치 자신이 투명인간이라도 된 듯 가만히 있는 막둥이를 보고 웃음이 나오는데 참느라 혼난다. 마치 막둥이를 전혀 못 본 것처럼 볼일을 보고 화장실을 나선다. 막둥이의 바람대로 ‘투명인간’이 화장실에 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던 잠을 마저 자려고 잠자리에 조금 누워 있으니 안방 문이 열린다. 조금 전 화장실에 있었던 ‘투명인간’이 방에 잠입을 한 것이다. 팬티를 비롯해 속옷을 전부 새로 입는 막둥이를 실눈을 떠보고 있으려니 재미있다.

 

그런데 막둥이에게 난감한 상황이 생긴다. 아내가 아침 일찍부터 외출을 하려고 하면서 막둥이에게 이불 뒤처리를 부탁하는 게다.

 

“막둥아, 아빠 일어나시면 ‘아빠, 저 오줌 싸서 이불이 젖었어요. 세탁해주세요’라고 해. 알았지?”

 

뭐라고 그러는지 보고 있으니 막둥이가 또 ‘얼음’이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대답이 없다. 대충 얼버무린다. 그럼 그렇지. 어떻게 자신 있게 대답을 할까.

 

이어지는 아내의 외출. 그리고 막둥이는 작은 방으로 가서 컴퓨터를 하는 게 아닌가. 일요일이라 한참 자고 있는 누나와 아빠는 전혀 모르고 있는, 엄마와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로 말이다. 이 모든 순간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 실눈을 떠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막둥이가 알면 어떨까. 아마 기겁을 하겠지.

 

조금 더 자고 일어났는데도 막둥이는 한참 컴퓨터에 열중이다. 아침에 전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막둥아, 왜 빨래 통에 이불이 담겨 있지?”

“예~~ 저... 몰라요.”

 

막둥이가 어떻게 나오려나 보려고 물었더니 둘러대는 말이 서투른 막둥이는 “몰라요”라는 말로 대충 얼버무린다. 그러고는 컴퓨터에 열중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어본다. (그 아빠가 누군지 참 짓궂긴 하다. 하하하하.)

 

“이상하다. 왜 이불이 젖었지. 누가 물을 쏟았나. 막둥이 너의 이불인데 너는 몰라?”

“아, 예. 뭐 그거요. 그 비슷한 거 쏟았어요.”

 

아주 곤란한 것 같으면서도 아닌 척 하는 막둥이의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게다.

 

사실 옛날 우리의 풍습은 자녀가 오줌을 싸면 ‘키’를 둘러 씌워서 옆집으로 소금을 얻어오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번 창피를 당하면 다음엔 아이들로 하여금 그러지 않게 하려는 어른들의 속셈이 깔린 풍습이다. 하기야 요즘 교육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은 학을 떼며 이런 풍습을 못 하도록 말리고 있는 실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랬던 나의 어린 시절인데도 우리 집은 그런 일은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그랬나. 3형제 중 장남이었던 내가 유달리 야간근무(이불에 지도 그리는 일)를 자주 했다. 잊어버릴 만하면 그랬던 듯. 그런데도 나의 어머니는 가끔씩 “오줌 싸는 것을 늦게 떼는 아이들은 머리가 좋다더라”라고 말해주곤 하셨다. ‘그래서 내가 머리가 좋은가 보다’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나의 부모님도 나의 ‘야간근무’ 행각을 보면서 알면서도 간혹 모르는 체 넘어가신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게다. 오늘 나의 막둥이도 내가 알고 있었다는 걸 말해주지 않으면 영원히 오늘 일은 엄마와 자신만의 비밀로 생각할 테니까 말이다. (물론 막둥이가 커서 이 기사를 보게되면 비밀이 아니겠지만).

 

이런 일 뿐만 아니라 자녀가 다른 종류의 창피한 일, 부끄러운 일, 야단맞을 일 등을 했을 때 그것을 꼭 따져 묻고 고치려하는 것도 현명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모르는 척, 아닌 척 넘어가는 것도 참으로 현명한 일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아마도 막둥이는 모를 거다. 자신의 아빠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도 그랬다는 것을. 아빠를 따라가려면 아직도 1년이나 남았다는 것을. 하하하하.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2008.11.10 15:02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더아모의집 #송상호목사 #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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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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