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수 되려면 미국 시민권 있어야 한다?

국립대학 국어국문학과의 이상한 교수 공채

등록 2008.10.30 11:36수정 2008.10.30 14:43
0
원고료로 응원
a

2008년도 겨울학기 졸업식 지난 3월 나와 함께 한국어 교육을 마친 학생들의 사진. ⓒ 구은희

▲ 2008년도 겨울학기 졸업식 지난 3월 나와 함께 한국어 교육을 마친 학생들의 사진. ⓒ 구은희

"교수님의 그간의 다양한 경력은 학과가 원하는 바와 거의 일치합니다. 그러나 학과의 이번 공채는 외국인(시민권 소유자 이상)을 모시고자 하는 것이어서, 이번에는 모실 수 없음을, 유감이지만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읍니다. 교수님께서 보신  공고문에 그 점을 명확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 드립니다."

 

한국의 모 대학에서 한국어학과 교수 공채에 관하여 담당자가 나에게 낸 메일 내용이다. 한국어 학과 교수를 채용하는 데에 한국인이 아니어야 한다는 사항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정말 역설적이다. 오히려 한국인이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닐까? 모든 공고가 영어로 작성되어 있었고, 제출 서류도 까다롭지 않을 뿐 아니라 주택까지 제공한다는 사실, 그리고 공고 내용이 미국 내 한국어 교사 협회를 통하여 받은 것이라 의심을 하고 있었던 터이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담당자로부터 이런 메일을 받고 나니 허탈하기 그지 없었다.

 

이는 미국에서 테솔 학과 교수를 채용할 때 미국 국적자는 안 된다는 조항이 들어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미국에서는 결코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채용 공고에 성별, 연령, 인종, 체류 상태 등에 의해서 차별을 두는 조항을 넣을 수 없게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1980년도 이후 출생한' 이라든지 '군필한' 등의 문구는 미국 채용 공고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1990년도에 유학을 목적으로 도미한 본 기자는 학위를 마치고 직장에 취직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영주권도 취득하여 살아가고 있지만 미국에 사는 동안 한 번도 미국 시민권이 없어서 불편한 점이 없었다. 미국에서는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나 아무런 차별을 못 느끼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영주권을 취득하면서도 본 기자는 한국이 이중국적을 인정할 때까지는 결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면 이중국적이 인정되지 않는 한국 법상  '국적상실신고서'라는 서류를 관할 영사관에 제출하게 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법적으로 한국 국적을 잃게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한국 국적을 버린다는 사실이 용납되지 않아서 영주권을 받고도 시민권을 신청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미국 내에서 살아가는 데에 시민권이 없어도 아무 불편함이 없기에 더욱 그러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미국 주립대학교에 채용될 당시에도 영주권자였기 때문에 받는 불이익은 없었다. 미국 국방부 소속인 미국 국방언어대학에서조차 교수 채용시 영주권자와 시민권자를 차별하지는 않는다. 내부적으로는 채용시에 차등을 줄지는 몰라도 이렇게 공식적으로 시민권자여야 한다든지 영주권자여야 한다든지 하는 내용을 명시하지 않는다.

 

모 국립대학교의 국어교육학과 교수 공채 공고문의 일부

The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Education of ABC University invites applications for 1 position full-time, open rank, and tenure track positions

Each candidate must have earned a Ph.D. by the 03. 2008 start date and will be expected to lecture in English, also must have FOREIGN(not Korean) nationality (Overseas Koreans who don't have Korean nationality are applicable).

 

한국어 교육학과에서는 정년 트랙 전임교수 1명을 모집합니다. 지원자는 2008년 3월까지 박사학위를 취득하여야 하고 영어로 강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지원자는 외국인(비 한국인) 국적이어야 합니다(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 않은 재외동포는 지원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한국의 모 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어교육학 담당교수로 외국인을 채용한 이래 각 대학교들이 앞을 다투어 외국인 교수 모시기에 돌입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외국인 교수 채용의 목적을 잊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인 교수를 채용하고자 하는 것은 선진국에서 익힌 학문과 기술을 한국에 있는 대학교 학생들에게 전수하고자 함이며 그에 따라서 영어나 외국 대학교에서의 교육 경력들이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조항이 '한국 국적이 아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조항으로 뒤바뀌어져 있다는 사실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본 기자에게 답신을 보낸 그 학과에서도 파란 눈의 백인 교수가 한국어 교육학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외국인 교수가 한국어 교사들에게 가르치는 모습은 정말 신기하긴 하겠지만 어이없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다인종 사회로 변화해 가는 한국에서 외국인들에게도 균등한 기회를 주고 훌륭한 외국인 교수들을 영입하여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국인이 아닌 사람들을 차별하는 역차별은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많은 나라들은 이중국적을 넘어서 다중국적까지 허용한다고 한다. 그 나라의 시민이 될 때 그 나라의 의무와 권리를 수행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것은 용납되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외동포들을 한국인으로서 포용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미국 시민권이 없어서 채용되지 못 하는 그런 상황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어 #시민권 #교수채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