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희망을 들어올린 장미란

등록 2008.08.17 10:35수정 2008.08.1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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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자연 운동을 피하는 성격을 갖고 말았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제일 싫었던 것이 체육시간이었습니다. 학교에 진학하면 먼저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체육복을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로요. 운동을 못하니 사도 입을 일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집이 넉넉하면 공동으로 구입하는 것이니 한 벌 사두는 것도 괜찮을 것이지만 고학을 하는 형편이라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저학년 때라고 생각됩니다.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나는 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혼자 고향을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말이죠. 지금이야 대중교통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지만 그 때 부산에서 저의 고향 함양까지 다녀올려면 차를 한 번 이상 꼭 갈아 타야 했습니다. 아마 그 때 진주에서 차를 갈아탄 것 같은데, 내 옆에 미끈한 신사 한 분이 앉더군요. 나이 차이도 많이 나려니와 출신이 나와는 다른 분 같아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는데, 그 분이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어디에 사느냐, 어느 학교 몇 학년이냐, 어디에 다녀오는 길이냐 등등을요. 나는 솔직하게 묻는 말에 답했습니다. 그러니 그 분도 자신을 소개하더군요.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렸는데, 그 분의 하는 일이 목회(전도사)라는 것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분은 나를 보더니 뜬금없이 운동을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운동선수가 되면 국위도 선양하고 자신의 삶도 어느 것에 결코 뒤지지 않으니 권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단단하게 생긴 얼굴하며 몸집이 운동선수, 그것도 구체적으로 배구를 하면 장도가 밝겠다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이럴 때 난처한 것은 저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거든요. 저는 그 분이 말을 쉬는 틈을 타서 제가 장애인이어서 운동선수는 될 수 없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대화는 마무리 될 줄 알았죠. 하지만 그 전도사님은 잠시 미안한 기색을 보이더니 더 열심히 말을 붙여 왔습니다. 몸이 불편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사람은 몸이 불편한데도 운동에 대한 이론을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배구 심판이 되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나는 그 분이 고마웠습니다. 그의 말이 장애인이지만 꿈을 가진다면 불가능이 없다는 메시지로 저에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매일 스포츠신문을 한 부씩 사서 읽으며 운동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스포츠신문을 사서 읽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마 군사정권 시절 국민들의 비판안을 누르는 우민화정책의 한 방편으로 스포츠를 장려한 적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반발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반신문을 보면서도 스포츠에 대한 기사는 별로 읽지 않고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었습니다. 올림픽과 월드컵 등 세계적인 빅 스포츠 행사에는 나도 모르게 관심이 쏠리더라구요. 우리나라에서 열린 88올림픽 때 그리고 일본과 공동 주최한 2002 월드컵 때는 가족과 함께 운동장을 찾아가 응원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 후 시간이 많이 지나고, 지금 중국 베이징에서 하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초반부터 우리나라 선수들이 선전을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종합 10위권 내 진입을 목표로 참가했다고 하는데 그 목표는 어렵지 않게 이룰 것 같습니다.

 

집에 TV가 없기 때문에 중계방송을 시청하지 않다가 오늘  PC 인터넷을 통해서 장미란 선수가 역도 금메달 따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것도 아이들의 성화 때문이었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장미란 역도만 보자고 해서 제가 양보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었습니다. 장미란이 든든했습니다. 몸집은 다른 나라 선수들보다 비대하지 않은데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성적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세계 신기록이라고 햇습니다. 앞으로10년 안에는 깨지 못할 기록일 것이라고 아나운서는 흥분되어 해설을 덧붙였습니다.

 

외국에 나갔을 때와 운동경기 때 외국과의 시합에서는 애국자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맞는 말 같습니다. 장미란이 더욱 예쁜 것은 그가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고 난 뒤 앉아서 두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신앙인의 겸손을 읽었습니다. 그런 크고 위대한 일도 내가 해냈다기보다 하나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고백, 그것이 바로 주님 앞에 드리는 감사 기도거든요.

 

나는 기쁜 나머지 축전을 보냈습니다. 축전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정치가 경제가 아무리 어렵고 불안하다고 해도 장미란 선수가 들어올린 역도의 그 무게가 우리의 소망이 되어 밝은 미래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세계 신기록 수립 후 장 선수가 다소곳이 앉아서 드리는 기도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각자 어떤 입장에 놓여 있건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은 40여년 전 시외버스 안에서 만난 한 전도사님이 나에게 들려준 말입니다. 장미란이 어두운 이 시대, 희망을 번쩍 들어올렸듯이 목표를 정하고 힘써 전진하는 우리가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8.08.17 10:35 ⓒ 2008 OhmyNews
#장미란 선수 #장애인 #소망 #역도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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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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