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쇼핑 중독은 괜찮지 않나요?

책과 CD, 테이프... 나에겐 너무나 소중한 것들

등록 2008.06.18 18:51수정 2008.07.2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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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찾는다고 인터넷을 하다 보면, 가끔 '쇼핑중독'에 대한 글을 보게 된다. 홈쇼핑을 보면 필요 없는 물건인데도 자신도 모르게 주문을 하거나, 백화점에 가면 쓸데없이 충동구매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를 보면서 처음엔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내 삶에도 역시 쇼핑중독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색다른 쇼핑중독이랄까.

 

방 한 구석을 차지해버린 CD와 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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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한 구석에 정리되어 있는 테이프와 CD, DVD. 정리할 공간이 모자라 남는 CD들은 종이가방에 넣어 한쪽 구석에 놔두었다. ⓒ 하지혜

방 한 구석에 정리되어 있는 테이프와 CD, DVD. 정리할 공간이 모자라 남는 CD들은 종이가방에 넣어 한쪽 구석에 놔두었다. ⓒ 하지혜

내 방 한쪽 구석엔 천으로 덮인 종이가방이 있다. 그 안에는 40개 정도 되는 CD와 여러 개의 테이프가 들어 있다. 또 한쪽에는 집 모양의 정리함이 있는데, CD와 테이프로 꽉 찬지 오래다. 더 넣으려면 이젠 두 겹으로 넣어야 할 정도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중학교 때부터 테이프를 조금씩 사 모았다. 하지만 그때는 복사를 해서 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테이프를 살 돈이 없으면 주위에서 테이프를 빌려 복사한 적이 많았다.

 

그러다 우연히 한 장의 음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녹음해서 판매한다'라고만 알고 있던 나는 보이지 않게 수고하는 많은 이들이 노력해서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특히 아는 오빠가 컴퓨터 음악에 쓰는 프로그램이라고 내게 보내준 프로그램을 보고 '이런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면 진짜 공부도 많이 하고, 음감도 좋아야겠다. 그리고 정말 고생 많이 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 돈을 아끼려고 테이프를 복사하면 내가 테이프를 샀을 때 그분들이 벌 수 있는 돈을 못 벌게 된다고 생각하니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 나는 테이프를 직접 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CD 플레이어가 생긴 이후에는 테이프를 사는 것을 멈추고 CD를 샀다. 생각해 보면 두 달에 세 개씩은 샀던 것 같다. 하지만 집에서 내가 CD를 사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로 CD를 주문한 적이 많았다. 그런 모습을 보셨던 담임선생님께서는 나만 보시면 '너 정신차리고 공부해라'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하셨다.

 

지금은 인터넷 음악사이트를 이용해 주로 음악을 듣지만, 요즘도 가끔 CD를 사러 근처 음반매장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인터넷으로만 듣기 아까운 앨범들이 있기 때문에.

 

한 번은 내가 원하는 CD가 하필 품절이라 더 이상 나오지 않아 포기하려 하는데, 경매사이트에 그 CD가 올라온 것이었다. 그날 나는 치열한 접전(!) 끝에 경매에서 이겼다. 만원짜리 CD를 4만원이 넘는 가격에 사게 되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어이없게도 그 다음 날 근처 음반매장에서 그 CD를 파는 걸 보고 경매입찰을 취소했지만.

 

나만의 서재를 꿈꾸며 모아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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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책꽂이와 책장에 가득찬 책. 방에는 더 이상 책을 놔둘 공간이 없다. 그런데도 난 아직 책을 사고 싶다. ⓒ 하지혜

내 방 책꽂이와 책장에 가득찬 책. 방에는 더 이상 책을 놔둘 공간이 없다. 그런데도 난 아직 책을 사고 싶다. ⓒ 하지혜

 

내 방 한쪽 구석이 CD와 테이프에게 점령되어(!) 있다면, 또 다른 한쪽에는 책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사는 것을 좋아했다. 오죽했으면 책을 너무 많이 봐서 눈이 나빠졌을 정도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책을 사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 때 학교 내 기독교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동아리는 다른 동아리보다 기독교 서적을 많이 읽는 곳이었다. 자연히 나도 책을 많이 찾게 되었고, 교회에 다니지 않다가 다시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책을 찾게 되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방을 얻어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집세와 밥값을 제외하면 책을 살 수 있는 돈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학교 밖에서 맛있는 밥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책을 사기 위해 방이나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간식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산 책이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나자 100권이 넘게 되었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책을 거의 사지 않았다. 100권의 책 중 읽은 권 수가 반도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졸업하고 짐을 챙겨서 집에 올 때 조금 큰 종이상자 두 개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랐던 책들이었지만, 사는 데만 관심 있었지 읽는 데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또 책 읽는 속도가 느리기도 했다. 소설이나 만화 같은 경우는 빨리 읽어도 대강의 내용만 파악하면 되니깐 괜찮은데, 내가 산 책들은 대부분이 평신도신학, 세계관, 문화관, 기독교인의 정치참여 등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서 읽어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중요하다 싶은 부분엔 밑줄을 긋게 되고, 책을 읽다 드는 생각들을 귀퉁이에 적어놓기도 했다. 그래서 읽는 속도가 정말 느려져서 1주일에 책을 한 권 읽기도 힘들어졌다.

 

지금은 책을 다시 조금씩 사고 있다. 특히 미디어와 관련된 책들을 사고 있는데, 미디어비평을 하고 싶다는 내가 미디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사지 않더라도, 나만큼 책 사기를 좋아하는 남자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을 때도 있다. 몇 달 전에 책장에 있는 책을 전부 꺼내서 세어 보니 125권이었는데, 아마 그 뒤에 책을 더 사서 지금은 140권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참에 다시 한번 다 꺼내서 세어볼까.

 

색다른 쇼핑중독, 그리고 작은 꿈 하나

 

나에겐 작은 꿈이 있다. 결혼하면 집에 작은 서재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서재 한 쪽에는 책으로 가득한 책장을 두고, 다른 한 쪽에는 장식장을 두어 CD와 DVD를 사서 꽂아놓고 싶다. 또 서재 중앙에는 앉아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DVD를 볼 수 있는 작은 탁자를 하나 놓고 싶다.

 

모르겠다. 이 꿈이 내 쇼핑중독에 대한 하나의 정당화일지도. 하지만 난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이런 쇼핑중독은, 괜찮은 거 아닌가요?'

덧붙이는 글 <쇼핑 중독> 응모글
#쇼핑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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