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자락넘어 다녀온 군위 유적

제2석굴암과 한밤마을, 화산산성

등록 2008.06.03 13:35수정 2008.06.03 13:35
0
원고료로 응원

5월 31일, 팔공산 자락을 넘어 제2석굴암이란 이정표가 군데군데 있어 찾아가기 쉬운 경북 군위 삼존석굴을 찾았다.

 

비로자나 석불좌상

 

입구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8호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나불 좌상이 있는데 현재 광배가 없어진 상태다.

 

a

석조비로자나불 불상의상태가 마치 근래 불상처럼 양호하다. ⓒ 김환대

▲ 석조비로자나불 불상의상태가 마치 근래 불상처럼 양호하다. ⓒ 김환대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는 육계를 펑퍼짐하게 표현하였다. 볼에 살이 올라 풍만한 얼굴은 길게 늘어진 두 귀와 함께 양감을 느끼게 한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 입고 있는데 앞가슴을 넓게 드러내고 있고 형식으로 보아 9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불상처럼 돌의 재질이 그래서인지 너무나 근래작처럼 보인다.

 

모전석탑

 

이제 삼존 석굴이 보이고 그 앞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1호 군위 삼존석굴 모전석탑이 있는데 단층 기단위에 탑신을 올린 특이한 형태로, 전탑을 모방하여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이다.

 

a

모전석탑 마치 벽돌탑을 연상케 한다. ⓒ 김환대

▲ 모전석탑 마치 벽돌탑을 연상케 한다. ⓒ 김환대

 

마구잡이로 그냥 쌓은 듯 하나 다시 쌓으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어서 그런 듯 하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석굴암 보다 앞선 불상

 

이제 국보 제109호 군위 삼존석굴이 바로 앞에 보인다. 절벽의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 제24호)보다 연대가 앞선다.

 

a

제2석굴암 군위 삼존석불로 석굴암 보다 시기가 앞선 불상이다. ⓒ 김환대

▲ 제2석굴암 군위 삼존석불로 석굴암 보다 시기가 앞선 불상이다. ⓒ 김환대

 

가운데 본존불은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땅을 향한 것으로 우리나라 불상에서 나타나는 최초의 예라 한다. 좌우의 보살상은 각각의 머리에 작은 불상과 정병이 새겨진 관을 쓰고 있다.

 

대율리 전통마을

 

제2석굴암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오면 대율리 전통 문화마을이 있는데 이 곳은 집집마다 돌로 담장을 쌓아 마치 제주도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한밤전통마을의 명물로 마을에는 부림 홍씨 집성촌으로 상매댁 또는 쌍백당으로 불리는 전통가옥 등이 있다. 마을에는 구불 구불한 소나무 숲이 있고 진동단이라는 돌 솟대가 있는데 아마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였던 것 같다.

 

a

마을 숲 마을숲내에 진동단이 있다. ⓒ 김환대

▲ 마을 숲 마을숲내에 진동단이 있다. ⓒ 김환대
 
a

진동단 진동단으로 마을의 솟대 역활이다. ⓒ 김환대

▲ 진동단 진동단으로 마을의 솟대 역활이다. ⓒ 김환대
 

또한 이 숲에서는 임진왜란 때 홍천뢰 장군이 의병들을 모아 훈련을 시켜서 왜적을 무찌렀던 장소라 한다.

 

마을내에 모셔진 보물 불상

 

마을내에는 용화전이란 작은 전각에 모셔진 보물 제988호 군위 대율동 석불입상이 있는데 민머리 위에 육계, 둥근 얼굴, 아담한 눈과 입, 어깨까지 내려진 긴 귀 등에서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손끝이 위로 향하도록 펴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몸쪽으로 하여 가슴에 대고 있는 독특한 모양이다.

 

a

대율리 석불입상 마을내에 용화전이란 건물에 있다. ⓒ 김환대

▲ 대율리 석불입상 마을내에 용화전이란 건물에 있다. ⓒ 김환대

 

조각수법으로 보아 9세기 불상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넓은 대청과 상매댁

 

마을 안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 대율리 대청이있는데 조선 전기에 지어진 건물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으며, 지금의 것은 1632년 다시 지어 학교처럼 사용되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 크기의 건물로 누각형 집인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a

대율리 대청 넓은 건물로 잘 지어졌다. ⓒ 김환대

▲ 대율리 대청 넓은 건물로 잘 지어졌다. ⓒ 김환대

 

대청 옆으로 인접해 있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57호 군위 상매댁은 쌍백당이라고도 불리는데 250여년 전에 홍우태의 살림집으로 세웠다고 전한다. 현재 건물은 그 뒤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이며, 사랑채 대청 상부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보아 그 시기는 현종 2년(1836)경으로 추정한다.

 

a

상매댁 대청 옆에 있는 전통 고가이다. ⓒ 김환대

▲ 상매댁 대청 옆에 있는 전통 고가이다. ⓒ 김환대

 

원래는 독특한 배치 형태를 이루고 있었으나 중문채와 아래채가 철거되어 현재는 ㄷ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 사당이 남아 있다. 조선 후기에 보이는 실용주의 개념을 건축에 도입한 예로 볼 수 있는 주택이다.

 

올라가는 길이 아주 멋있는 산성

 

영천에서 군위로 넘어가는 경계 지점에 걸쳐 있는 화산산성을 찾았다. 차로 인접한 거리까지 가면 도로변에 표지판이 잘 설치되어 있다. 올라가는 길은 고랭지 채소가 재배되고 있으며 넓은 지역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a

화산산성 길 길이 아주 분위기를 자아낸다. ⓒ 김환대

▲ 화산산성 길 길이 아주 분위기를 자아낸다. ⓒ 김환대

 

군위군 고로면에 있는 이 성은 조선 숙종 35년(1709)에 병마절도사 윤숙이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병영을 건설하고자 쌓은 산성이다.  먼저 홍예문을 세우고, 혜후와 두청 스님으로 하여금 군수사(軍需寺)를 짓게 하였다. 그 후 홍예문에서 수구문에 이르는 거리 200m, 높이 4m의 성벽을 구축하던 중 심한 흉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a

홍예문 화산산성에서는 홍예문이 잘 남아 있다. ⓒ 김환대

▲ 홍예문 화산산성에서는 홍예문이 잘 남아 있다. ⓒ 김환대

 

현재 북문과 수구문터는 축성을 시작하여 공사하던 옛 모습 그대로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일부 군사 보호구역 시설이라 출입이 잘 안 되었으며, 현재도 3사관학교 군사 훈련장이 주변에 있고, 군수사는 그 훈련장내에 있다.

 

a

화산산성 수구 독특한 수구 또한 잘 남아 있다. ⓒ 김환대

▲ 화산산성 수구 독특한 수구 또한 잘 남아 있다. ⓒ 김환대

 

군위군에 가면 삼국유사의 산실인 인각사와 그 외 지보사 등 유명 사찰만 둘러보고 오나 팔공산 자락을 넘어 얼만 되지 않은 시간 주변을 둘러보는 코스도 반나절 답사로는 안성 맞춤이다. 특히 화산산성은 일반인들이 잘 출입하지 않는 곳이라 인적이 드물어 한 번 가볼 만하다.

 

 

 

2008.06.03 13:35 ⓒ 2008 OhmyNews
#군위 제2석굴암 #대율리전통마을 #화산산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대통령 태도가...' KBS와 MBC의 엇갈린 평가
  2. 2 5년 뒤에도 포스코가 한국에 있을까?
  3. 3 윤 대통령 95분에서 확인된 네 가지, 이건 비극이다
  4. 4 6자로 요약되는 윤 대통령 기자회견... 이 노래 들려주고 싶다
  5. 5 감정위원 가슴 벌벌 떨게 만든 전설의 고문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