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청자를 눈물 젖게 한 MBC <휴먼다큐- 사랑>

등록 2008.05.21 14:08수정 2008.05.2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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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면 울 준비를 한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도 않던 각티슈를 옆에 두고 최대한 TV 가까이에 앉아 음량을 조절하고 있다. 이내 화면에서는 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낯익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이야기하며 움직이고 있다. 이내 난 관객이 되어 최대한 편한 자세가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고 있다.

 

어떤 이의 슬픔에 관한 사무치는 이야기를 들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시작된 화면. 한 가족이 나오고 죽어가는 아내가 등장할 때부터 이내 눈물이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난 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5월이 되면 난 항상 MBC에서 특집으로 방영하는 <휴먼다큐- 사랑>을 기다린다. '사랑'을 테마로 한 4~5가지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감동'이 무엇인지를 강하게 보여준다.

 

특히나 암에 걸린 배우자를 떠나 보내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너는 내 운명>과 <안녕, 아빠>는 '가족'의 의미가 상실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되묻고 있는 진지한 작품이었다. 더불어 감정이 메말라 있는 사람들에게도 단비처럼 눈물을 적셔주는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럼 올해는 어떠한 작품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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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까지만 살아야해 <엄마의 약속> ⓒ iMBC

돌잔치까지만 살아야해 <엄마의 약속> ⓒ iMBC

 

딸의 돌잔치를 해주기 위해서 그때까지 지독한 암을 견대내다 끝끝내 생을 마감하는 엄마의 이야기 <엄마의 약속>, 뒤늦게 입양한 아이로 인해서 인생의 참기쁨을 알아가는 가족의 모습은 담은 <늦둥이 대작전>, 자신과 같이 암에 걸린 자식을 통해서 더 열심히 살아가려하는 엄마의 이야기 <울보 엄마>, 그리고 <우리 신비>까지…. 상차림은 푸짐하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 먹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 중에서도 뭐니뭐니해도 한 작품을 고르라면 주저없이 시청자의 눈물을 쏙 빼게끔 만들었던 첫날 방영된 <엄마의 약속>이다.

 

서른 셋 안소봉의 죽음을 그 곁에서 바라보는 그녀의 어머니의 모습을 담담하게 취재한 일기 <엄마의 약속>은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보는 이로 하여금 혼을 다 빼앗아 갈 만큼 슬픔의 흔적이 강하게 배인 작품이었다.

 

1여년 가까운 취재를 통해서 뽑아낸 일상의 기록과 인터뷰 등은 생생하다.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암'이라는 병을 앓게 된 딸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솔직히 처음에는 아이가 미웠다. 그래도 내 자식이 더 소중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결코 자식을 쉽게 놓아줄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이 간절히 표현되어 있었다. 그리고 죽은 딸을 위해서 딸이 간절히 바라던 돌잔치를 해주고, 묵묵히 그녀의 흔적을 지워가는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흔적을 지워간다는 것. 그것은 남은 자에게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고통만 받다가 떠난 사람의 흔적을 지워버리기가 어디 쉽겠는가?

 

담담히 그려나가는 스케치처럼 <엄마의 약속>은 지극히 사실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고통받으면서도 미화하지 않았다. 아파서 짜증부리고 투정되는 모습, 피변으로 고통받는 딸과 그것을 두 발을 구르며 안타깝게 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대로 화면에 담겨 있다. 그래서 더욱 더 값져 보인다. 시청자의 숨은 감성을 과감히 들춰내게끔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다큐멘터리의 힘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2008.05.21 14:08 ⓒ 2008 OhmyNews
#휴먼다큐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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