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미국산 쇠고기에 숨겨진 더 큰 재앙

등록 2008.05.13 09:17수정 2008.05.1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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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쇠고기 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사태의 장본인인 이명박 정부와 여당인 한나라당은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습니다. 유치한 거짓말과 말 바꾸기로 국민들을 속이려는 그들을 발악을 보면서, 저렇게까지 해서라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려고 하는 이유가 새삼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국민들을 괴롭히려고’라거나 ‘이명박이 미쳐서’는 아니겠지요.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목숨 거는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바로 그것이 의미하는 진정한 위험성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바로 바로 한미자유무역협정, 한미FTA의 선결조건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틈날 때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한미FTA는 관련이 없다고 변명했지만, 그것은 이미 한미FTA 협상 초기부터 세상에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목숨 걸고 있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만이 아니라, 바로 한미FTA임이 틀림없습니다.

 

 한미FTA의 핵심은 한미 간의 자유무역 확대를 위해서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 장벽을 없애고 시장을 개방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주로 자동차나 전자, 반도체와 같은 제조업 부문에서, 우리나라는 농 ․ 축산업이나 공공, 금융, 교육, 서비스 부문 등에서 개방효과가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미FTA를 통해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이고, 손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한미FTA의 체결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미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의료보험 ․ 전기 ․ 수돗물 민영화 정책으로 촉발된 우려들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농업이나 공공부문의 붕괴를 통해 가장 큰 손해를 입는 사람은 바로 우리들과 같은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입니다.

 

  요즈음 국제 곡물가격의 상승 때문에 식당의 밥값뿐만 아니라 각종 물가까지 덩달아 오르고 있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OECD 국가들 중에서 식량자급률이 꼴찌인 우리나라가 농업시장을 마저 개방하고, 그 영향으로 우리 농업이 해체되어버린다면, 우리 국민들의 생활에 필수적인 식량공급에 대한 통제권을 다른 나라나 초국적 기업의 손에 헌납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너무 극단적인 가정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밀 농업이 사라지게 된 과정을 기억해본다면 그런 가정은 절대 억지스러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전기나 수도, 의료보험과 같은 공공부문이 개방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 모두가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로서 공공의 책임 아래에 두었던 것들을 민간의 기업들이 그 가격을 스스로 책정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다수의 국민들에게서 기본적인 삶의 권리들을 빼앗아 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 대다수가 손해를 보는 이 한미FTA를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미국의 초국적 기업들과 우리나라의 일부 재벌기업들입니다. 우리나라 시장을 개방하면 그곳으로 새롭게 진출할 미국의 곡물기업이나 민간보험회사 등은 당장 높은 이익을 얻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재벌기업들도 자동차나 전자, 반도체 등을 수출하는 데에서 다소나마 얻게 되는 관세절감 효과를 통해 미국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일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재벌기업이 대미 수출증가로 벌어들이는 이익이 우리나라가 식량산업과 공공서비스산업을 포기하며 치러야 할 손해와 우리나라의 일반 국민들이 감수해야 할 기본적 생활권의 박탈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아주 간단히 말해서 그 대답은 ‘노(No)’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수년째 수출은 늘고 경제의 절대량은 성장하지만 고용과 내수는 침몰하는 ‘고용 없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IMF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민영화, 해외매각, 금융시장개방 등으로 인해 우리 산업이 해외투기자본에 의해 잠식되고, 국내의 중소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몰락하면서 산업구조가 불균형해지는 바람에 더 이상 소수 재벌기업의 성장이 전체 국민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지지가 않는 것이지요.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 재벌기업이 아무리 돈을 벌어도 그 부가가치는 그것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해외투기자본의 몫이 될 뿐, 내수경제로 퍼져나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더욱이 한미FTA로 인해 손해를 감수해야 할 부분이 다수의 일반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의 권리와 아주 중요하게 연관된 부분이라면 그것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물론 어느 시대 어느 곳이나 돈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만약 의료보험 민영화 때문에 보험에 들지 못해서 감기 정도의 병으로 죽어야 하고, 곡물가격 인상 때문에 금반지보다 쌀밥이 더 귀해지고, 수도 민영화 때문에 수돗물로 목욕 한번 하기 위해 용돈을 아껴야 하는 날이 온다면, 그 참담함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그 안전성에 대한 문제만으로도 아주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걸리면 100% 죽는다는 광우병의 위협만큼이나 무시무시한 한미FTA라는 재앙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이면에 숨어있습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자동차로 병을 고칠 수도 없고, 반도체를 태워서 추위를 물리칠 수도 없습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과 한미FTA에 목숨을 걸고 밀어붙이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똑바로 볼 줄 알아야, 참혹한 미래로부터 우리의 삶의 권리들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를 되돌리는 것은 그것을 지키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5.13 09:1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한미FTA #재앙 #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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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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