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아이디어, 표절, 변주 혹은 재활용

예능 프로 아이템 재활용, 어떻게 볼까

등록 2008.05.09 15:01수정 2008.05.0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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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라는 방식은 영화나 가요에만 통용되는 기법이 아니다. 최근 예능물에서도 '리메이크' 전략이 보편화되고 있다. 예전에 큰 성공을 거두었던 아이템을 재활용하거나 새롭게 변형시키는 업그레이드 형태로 선보이는 코너들이 크게 늘고 있다.

 

물론 이런 코너들은 노골적으로 '후속작'이나 '아류'를 자처하지는 않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저마다 자연스럽게 전작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성공한 아이템의 아이디어를 적절하게 잘 살려서 변주하면 성공작이라는 찬사를 받지만, 아차하는 사이에 표절이나 재탕이라는 비난을 뒤집어쓰는 것도 순식간이다.

 

SBS <일요일이 좋다-기적의 승부사>는 초창기 시큰둥한 반응을 얻었던 아나운서-연예인간 대결구도를 폐지하고 최근 '사극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기승史>로 코너명을 변경하며 조금씩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과거 <엑스맨>에서 선보였던 인기코너 '당연하지'의 재활용이라고 할 수 있는  '풍류대담'이라는 코너가 있다. 두 명의 출연자가 서로 예정된 대답만을 하도록 미리 규정하고 곤란한 질문으로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다는 독설개그의 설정은 영락없이 '당연하지'의 판박이다.

 

어떤 질문에도 '당연하지'로만 답변이 한정되던 과거에 비해, '풍류대담'은 공격자가 상대방의 대답을 미리 지정할 수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예를 들어 아나운서 김주희에게 출연자들이 '황소'라는 답변을 지정해놓고 "마님의 본명은?", "이걸 한 손으로 때려 잡으신다면서요?" 하는 식으로 상대의 캐릭터를 희화화거나 약점을 잡아 몰아붙이는 식이다. 이것은 출연자들의 성향에 따라 고유의 캐릭터를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당연하지'나 '풍류대담'은 최근 방송가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독설개그-인신공격형 개그를 아예 일정한 룰을 갖춘 게임으로 응용화한 사례라고 할수 있다.  '풍류대담'의 인기가 자리잡으며 기승사 역시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여전히 <엑스맨>의 재탕이라는 한계와 '당연하지'시절부터 지적됐던 과도한 인신공격 성향이나 심지어 막말에 가까운 인격 모독 요소가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은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해피투게더-시즌3>의 상황극 '웃지마 사우나'는 그 뿌리를 찾자면 <무한도전>에서 <유머 일번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90년대 초반 최양락-김학래 콤비가 선보였던 '괜찮아유'에서 파생된 이 코너는 유재석-박명수에 의해 <무한도전>에서 처음 리메이크 됐고, 역시 콤비가 같이 출연하는 <해피투게더>에서 고정 코너로 자리 잡으며 부활했다.

 

'괜찮아유'가 사전 정해진 대본과 설정으로 짜인 콩트 형식이었다면, '웃지마 사우나'는 출연진들의 순발력과 애드리브에 의존하는 상황극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해피투게더>의 '사우나 노래방'이나 <상상플러스-시즌2>의 '풍덩 칠드런 송' 등은 모두 과거 <해피투게더-시즌1>의 '쟁반노래방'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출연자들은 음악에 맞추어 노래 가사를 완벽하게 소화해야 하며 틀리면 벌칙을 받는다.

 

그러나 두 코너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사우나로 무대를 옮기며 노래가사의 완벽한 재현 자체보다는 신명나는 '놀이판'의 분위기를 살리는 쪽으로 진화한 <해피투게더>에 비해, <상상플러스> '풍덩 칠드런 송'은 기존 쟁반노래방의 재탕이라는 '혐의'가 좀 더 짙다.

 

출연자들은 '쟁반노래방'처럼 나란히 앉아 우리 동요를 부르지만, 차이점이라면 한국어 가사를 영어로 소화한다는 것과, 쟁반 대신 밀가루 풍선이 벌칙으로 쓰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풍덩 칠드런 송'은 '사우나노래방'과 달리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다. '쟁반노래방' 시절에 비해 아이디어의 독창성은 물론, 재미와 의미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맥 빠진 리메이크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우리말'을 소재로 풍성한 웃음과 의미를 동시에 안겨준 <상상플러스>에서 갑작스럽게 영어를 내세운 것이 '변질'이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도 한몫했다.

 

방송가에선 완전히 새로운 것이 없다. 오늘날 대세로 불리는 예능가의 트렌드들도 숱한 시행착오와 변주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실패로 종영한 <라인업>은 <무한도전>의 '리얼 버라이어티'와 매주 포맷이 바뀌는 무형식성의 컨셉을 계승했지만, '생계형 버라이어티'라는 독자적인 개성으로 차별화를 이루지 못하여 아류작의 실패 사례에 그쳤다. <무한도전> 역시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대단한 도전>이나 <슈퍼선데이- 천하제일 외인구단>에 그 모태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한 전작의 리메이크는 위험부담을 줄이고 기존 시청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원작에 대한 재해석이나 창조적인 변주 없는 무분별한 재탕은 오히려 실망을 주기도 한다. '모방'과 '진화'를 결정짓는 차이는 종이 한 장인 셈이다.

2008.05.09 15:01 ⓒ 2008 OhmyNews
#예능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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