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지리산에서 내 별명은 '산신령'이었다

[시 더듬더듬 읽기 95]고정희 시 '지리산의 봄1'

등록 2008.05.01 14:10수정 2008.05.02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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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풍경.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천왕봉이다. ⓒ 안병기

지리산 풍경.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천왕봉이다. ⓒ 안병기

 

무전여행과 뱀사골산장의 추억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올해의 여행 계획을 짰다. '올해는 지리산만을 집중적으로 등산하리라'라고 다짐했다. 지난 2월 중순에 다녀왔던 삼정 능선 등반도 그렇게 해서 이뤄진 것이다. 5월이 되면 뱀사골에서부터 시작해서 지리산 자락 구석구석을 더듬어 가는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할 참이었다. 이제 그 5월이 시작되었다.

 

뱀사골은 내가 1980년대 초에 떠났던 무전여행의 여정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긴 곳이다. 당시 늦은 밤 화엄사에 도착한 나는 우여곡절 끝에 비구니 암자인 지장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노고단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오랜 걷기에서 생긴 물집과 고름이 터지면서 발바닥이 몹시 쓰라렸다. 그러나 내겐 쓰라린 발바닥보다 지리산 속에서의 숙식이 더 걱정이었다. 주로 절집에서 숙식을 해결한 터라 내겐 이렇다 할 장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허다 못해 코펠과 버너조차도 없었다. 그러니 숙식을 해결할 길이 도대체 난망했던 것이다.

 

그때 마침 무거운 취사 연료로 쓸 무거운 석유통을 들고 산을 오르는 청년 너덧 명이 눈에 띄었다. 연세대 산악반 학생들이라 했다. 그들이 들고 있던 석유통 가운데 하나를 들어주는 것으로 얼렁뚱땅 동행이 되었다. 과연 내 '빌붙기' 작전은 소정의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마침내 노고단 정상에 섰다. 지리산이 가진 장엄한 면목이 나를 두렵게 했다. 지리산에 비하면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하찮고 작은 것이냐. 점심을 먹고 나서 곧장 임걸령을 향했다. 임걸령에 올라서자 눈 아래로 구름바다가 펼쳐졌다. 마치 지리산 전체가 거대한 한 채의 솜이불 같았다.

 

산악반 학생들과 함께 텐트를 치고 나서 저녁밥을 먹었다. 주위엔 우리 일행과 조선대생이라는 남녀 한 쌍이 있을 뿐이었다. 사방이 아주 조용했다. 산에선 밤이 평지에서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온다. 어느새 사위가 어두컴컴해졌다. 그러자 뜬금없이 큰 비가 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난 일행에게 아무래도 큰 비가 올 것 같으니 뱀사골 산장으로 하산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은 지리산만 벌써 네 번째 산행이라면서 "결코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비가 오려면 산새들이 먼저 알고 울음을 그치는 법인데 지금은 새들이 울고 있지 않느냐?"라고 오히려 반문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나는 무조건 나의 예감을 믿어 달라고 졸랐다. 내 끈질기고 집요한 설득이 효과를 봤던지 마침내 우리 일행은 뱀사골 산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우리 옆에 텐트를 치고 있던 남녀에게도 함께 하산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들은 웃으면서 거절했다. 랜턴을 켜고 조심조심 하산을 시작했다. 아마 두어 시간쯤 걸려서 뱀사골 산장에 도착했을 것이다.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 산장 안으로 들어가서 자자"라고 얘기했지만, 그들은 듣는 시늉도 하지 않은 채 여기저기 텐트 칠 자리를 꾸역꾸역 찾아 다녔다. 그러나 산장 근처 어디에도 텐트를 칠만 한 빈자리가 없었다. 결국 일인당 500원씩을 내고 산장에 들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우리가 산장에 들어서서 배낭을 침상에 내려놓자 마자 후두둑,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산악반 학생들이 매점에서 소주 몇 병과 간단한 안주를 사왔다. 술을 마시면서 그들은 내게 "어떻게 비가 내릴 줄 알았느냐?"라고 연방 감탄한다. "다른 게 뭐 있겠어요? 그저, 그냥 느낌이었지." 살다 보면 종종 그럴 때가 있다. 느낌이 앎을 앞서는 경우가. 또 앎이 판단을 그르칠 때가 있다. 지식이 가진 맹점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산장에서 머물렀던 두 밤 동안 난 산장 안 사람들에게 '산신령'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튿날 오후가 되자, 남녀 한 쌍이 비를 쫄딱 맡은 후줄근한 꼴을 한 채 산장 안으로 들어섰다. 임걸령에서 함께 하산하자던 내 제안을 거부했던 옆 텐트의 남녀였다. 내게 하는 말이 걸작이다. "왜 자기들에게는 같이 하산하자고 권유하지 않았느냐?"는 거다.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다. 내가 얼마나 강력하게 권했는가 말이다.

 

젖은 옷가지들을 산장 난로 가에 널어두고 말리는 사이 그들은 올 누드가 되어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앉아 있었다. 옷이 어느 정도 마르자 옷을 주워 입은 사내가 매점에서 담배 2갑과 소주 3병을 사왔다. 내게도 담배 한 갑을 건넨다. 서로 수인사를 나눴다. 사내의 이름은 양○석이었으며 아가씨의 성은 나와 같은 안씨였다. 둘 다 광주 조선대 미대생이라고 했다. 한 번 시작한 비는 쉬 그칠 줄 몰랐다. 5월 중순이었는데도 마치 장맛비처럼 퍼부었다.

 

산장 밖엔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우리는 산장 안에 앉아 하릴없이 주거니 받거니 소주나 마실 뿐이었다. 광대 판소리에 추임새 집어넣듯 연거푸 담배를 피워대면서 말이다. 어느 한 순간, 내 눈이 아가씨의 입술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리는 것을 포착했다.

 

난 화장이 벗겨진 아가씨의 맨 입술을 쳐다보았다. 약간 자줏빛이 도는 입술이다. 입술색으로 미루어 난 이 여자가 담배 피운다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여자가 담배를 몹시 피우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남자 몰래 아가씨의 손에 담배 두 개비를 건네주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아가씨가 내게 두 눈을 찡긋했다. 담배 두 개비의 대가가 윙크로 돌아온 셈인가?

 

사흘째 되는 날 정오 무렵에야 비가 그쳤다. 그들은 남원으로 하산해서 광주로 갈 거라고 한다. 나 역시 이미 하산을 결심한 터라 그들과 동행하기로 했다. 산에서 내려가는 길에 아가씨가 가끔 내 손을 잡기도 하면서 장난을 친다. 나무담배보살….

 

남원에 도착하자 천변 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오모가리탕을 시켜놓고 셋이서 거의 10병가량의 소주를 나눠 마셨다. 이윽고 그들은 떠나가고,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난 무전여행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여관에 들 수밖에 없었다. 돈을 줬느냐고? 천만에 말씀이요, 만만의 콩떡이다. 돈을 준다는 건 내 무전여행의 일관성을 전복하는 쿠데타다. 여관 주인을 설득해서 무료로 잤다는 그런 얘기다. 그 일은 내가 무전여행에서 겪었던 가장 힘들고 난해한 일이었다. 

 

아니, 이 번호는 결번이라고?

 

1년 후, 광주에 볼 일이 있어 내려갔다. 내려간 김에 양○석씨에게 남원에서 진 신세도 갚고 싶었다. 그가 내게 적어줬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이 번호는 결번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어럽쇼. 이 사람이 내게 거짓으로 번호를 가르쳐주었단 말인가. 논리적으로 상황을 정리해 나갔다. 그가 전화번호를 틀리게 가르쳐 주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그 틈에 전화번호를 바꿨다면 아마도 한 자리 숫자 이상 바꾸진 못했을 것이다. 전화번호 끝자리에다 혐의점을 두었다.

 

그가 적어준 번호는 52-3740. 난 52-3741부터 차례로 전화를 걸어나갔다, 거기 양○석씨 댁이지요? 아닌데요. 52-3742, 52-3743를 거쳐 52-3744번을 걸었을 때였다. 전화 저편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임자는 바로 양○석씨였다.

 

"양○석씨, 나 지리산에서 만난 사람입니다. 전화번호를 틀리게 가르쳐 주셔서 찾느라 꽤 애먹었습니다. 어쨌든 만나시지요, 쌓인 회포나 풀게요."

 

그가 약속장소로 나왔다. 우린 어색하게 악수를 하고 나서 광주공원 옆 삼겹살집으로 들어갔다. 삼겹살을 시켜놓고 소주 두 병을  마셨다. 지난번 신세진 것도 있고 해서 내가 계산을 치르려 했지만 그는 한사코 자신이 내겠다고 우겼다. 전화번호를 속인 게 미안했던 모양이다. 저만치 멀어져 가는 그를 지켜보았다. 그에게도 미안했고 나 스스로에게도 미안했다. 삶에는 뜻하지 않게 짊어져야 하는 외상값이 얼마나 많은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열어주는 오월의 햇빛

 

내 첫 번째 지리산 등반은 그렇게 등반이랄 수도 없는 아주 시시한 것이었다. 작년이었던가. 유서깊은 뱀사골산장이 폐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뭔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쯤 뱀사골의 봄은 얼마나 무르익었을까. 오월의 화사한 햇빛은 여전히 "슬픈 깃털을 일으켜세우며/ 신록 사이로 길게 내려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열어(고정희 시 '지리산의 봄')" 주고 있을까. 산장이 없어지건 말건 철 따라 오가는 봄이야 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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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표지 ⓒ 문학과지성사

시집 표지 ⓒ 문학과지성사

남원에서 섬진강 허리를 지나며

갈대밭에 엎드린 남서풍 너머로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 한 자락이 따라와

나의 갈비뼈 사이에 흐르는

축축한 외로움을 들추고

산목련 한 송이 터뜨려놓습니다

온몸을 싸고도는 이 서늘한 향기,

뱀사골 산정에 푸르게 걸린 뒤

오월의 찬란한 햇빛이

슬픈 깃털을 일으켜세우며

신록 사이로 길게 내려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아득한 능선에 서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레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앞서가는 그대 따라 협곡을 오르면

삼십 년 벗지 못한 끈끈한 어둠이

거대한 여울에 파랗게 씻겨내리고

육천 매듭 풀려나간 모세혈관에서

철철 샘물이 흐르고

더웁게 달궈진 살과 뼈 사이

확 만개한 오랑캐꽃 웃음 소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

- 고정희 시 '지리산의 봄1-뱀사골에서 쓴 편지' 전문  

 

이 시를 쓴 고정희 시인은 1948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1975년 <현대시학>의 추천을 받아 시단에 데뷔했으며 <목요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교사·잡지사·기자 등을 거쳐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역임한 그는 1991년 6월 지리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시를 읽노라니 지리산의 봄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모르긴 해도 지금 이 시각에도 누군가는 오월의 햇살이 신록 사이로 열어준 길을 터덕터덕 오르고 있을 것이다. "우르르우르르 우레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삶이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그런데 시에서 말하는 '그대'는 누구를 말하는가. 그는 서정적 자아인가, 서사적 자아인가. 난 특별히 "삼십 년 벗지 못한 끈끈한 어둠이/  거대한 여울에 파랗게 씻겨내리고"라는 구절에 주목한다. 시집 <지리산의 봄>이 나온 것은 1987년이었으니 시인이 말하는 '그대'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책 표지에 실린 시인의 글을 읽으면 그 대상은 좀 더 명확해진다.

 

"아무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둡고 고통스럽고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가 하루를 마감하는 밤하늘에는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별빛처럼 아름답게 떠 있고, 날이 밝으면 우리가 다시 걸어가야 할 길들이 가지런히 뻗어 있습니다. 우리는 저 길에 등을 돌릴 수도, 등을 돌려서도 안 되며 우리가 그리워하는 이름들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 생각을 하게 되면 내가 꼭 울게 됩니다. 내게는 눈물이 절망이거나 패배가 아니라 이 세계와 손잡는 순결한 표징이며 용기의 샘입니다."

 

지리산은 피흘리는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산이다. 그리고 시 '지리산의 봄1'은 비극적인 오월의 봄에 서 있지만, 그 절망을 뜨거운 열망으로 타고 넘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각인된 작품이다.

 

우리 나이로 마흔 넷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뜬 고정희 시인은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실락원 기행> <초혼제> <이 시대의 아벨> <눈물꽃>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광주의 눈물비> <여성 해방 출사표> <아름다운 사람하나> 등의 시집과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라는 유고 시집을 남겼다.

 

오늘은 5월의 첫날이다. 지리산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결가부좌를 튼 채 묵언수행을 계속하고 있을까, 아니면 심심한 표정을 지으며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고 있을까. 혹 자신의 품  안에서 죽어갔던 사람들의 후예가 멀고 먼 여정 끝에 당도한 노동절을 자축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은 그만큼 영험한 산이 아니던가.

 

지리산이여, 조금만 기다려라. 더 그윽한 월광에 물들어 있으라. 더 아득한 전설에 잠겨 있으라. 내가 너를 다시 찾을 때까지.

2008.05.01 14:10 ⓒ 2008 OhmyNews
#지리산 #봄 #고정희 #뱀사골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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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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