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점의 교육정책, 뻔한 논리에 반대한다

[주장] 서울시 교육청 자율화 정책에 대한 논란과 관련하여

등록 2008.04.25 20:51수정 2008.04.2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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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열반, 0교시 수업은 금지하되 수준별 이동수업은 확대하며 동시에 방과후 학교에 영리단체의 참여를 허용한다.

 

다시 한번 달궈지고 있다. 얼마 전엔 영어 몰입 교육이 이슈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학교 자율화’를 둘러싼 논쟁이다. 어차피 이번 정권이 ‘자율과 선진’을 모토로 교육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기 때문에 다양한 부문에서 여러 논쟁들이 일어날 것은 뻔한 현실.

 

하지만 흘러가는 논쟁 자체가 너무 뻔하다. 주장하는 측은 ‘학교자율화’를 실천하되 ‘양극화’라던지 ‘입시지옥’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을 피해가려 안간심을 쓰고 있으며, 반대편은 결국 어떠한 형태든지 지금의 교육청이 내놓는 정책이 ‘입시지옥’과 ‘양극화’현상을 부추긴다는 논지다.

 

한쪽은 ‘자율’을 이야기하며 기존의 틀지어진 시스템을 보다 유동성있게 조절하여 효율성을 도모하려고 한다. 다른 한쪽은 교육이 가진 본원적 가치와 입시지옥의 현실을 연결하여 어떤 형태로든 현정부의 교육 정책이 실천되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한다.

 

결국 논쟁의 방식이 매번 똑같다. 정치 논쟁을 재연하는 것도 아니고 어쩜 이렇게 뻔한 논지로 주고 받기를 되풀이하는지 모르겠다. 효율을 주장하면 양극화로 맞받아치고, 선진을 주장하면 교육의 본원적 가치를 되풀이해서 반복한다. 결국 한나라당이나 통합민주당 식의 자유주의 대 평등주의 노선 같이 매우 인위적이고 형식화된 주장과 반대가 반복되고 있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양자의 거창한 주장에 비해 제안하는 측의 정책도 반대하는 측의 논리도 현실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우열반과 0교시 수업’ 혹은 그 이상의 ‘자율적인 수업’이라던지 국가가 지정하지 않은 다양한 부교재와 참고서를 활용하는 것이 아주 ‘일부 학교’에서만 있는 부차적인 현실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래서 지금의 공교육이 아무런 문제가 없고 다만 부추기는 사교육 때문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제 지금 이 상태에서 수준별 이동 수업을 하고 영리단체를 공교육에 참여시키면 공교육은 공교육으로써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 아주 주요한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까?

 

반대로 지금의 서울시교육청 기획안을 철회시키고 더 많은 양질의 교사 및 재원을 투자해서 선진국 수준의 학급으로 학교 구성을 바꾸어 놓는다면, 그렇다면 공교육은 정상화가 될 수 있는가?

 

뻔하지만 매우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서 과연 공교육의 정상화는 무엇인가? 좋은 대학을 들여 보내는 것 이상의 아무런 비전이나 내용을 제시할 수 없는 학교가, 나날이 점증되어가는 자본주의의 압력과 취업난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야 그것을 정상화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

 

무작정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어떻게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또한 엉거주춤 마치 새로운 것을 혼자 이루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의지해서 정책 한두 개로 끝장을 보려는 태도가 어떻게 한국 교육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차라리 현실위에서 문제를 섹터화 시키고 부분화 시킨 후에 그에 적합한 방식과 대안들을 찾아는 것이 적합한 논의의 태도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양갈래로 갈려진 뻔하디 뻔한 논쟁이 보다 생산적인 귀결점을 맺어낼 수 있다고 본다.

 

입시지옥 및 취업난, 그리고 그것에 조응하는 학교의 공공연한 현실적 태도를 인정해보자. 그렇다면 사교육까지 아우를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강자에 대한 공공서비스와 양쪽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공서비스의 태도는 훨씬 구체화되서 논의되고 적용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사교육에 대한 국민적인 태도, 그리고 발전된 사교육 시장의 공공연한 현실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활용 가능하고 이용 가능하다면 그것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 및 공공서비스와의 결합은 새로운 형태의 교육적인 결론을 맺을 수도 있다.

 

막연히 유럽 어느 나라의 얘기를 끌어 들이기보단 한국 사회의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활용하는 것도 좋지 않냐는 말이다.

 

백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입에 풀칠하며 사는 현실적인 취업공간 혹은 공교육 교사보다 훨씬 뛰어난 교육적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엘리트 집단 혹은 공교육을 보조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집단을 너무나 쉽게 정죄하고 원죄의 딱지를 붙여놓는다는 건 정말 눈가리고 아웅하는 자기기만적인 태도일 것이다.

 

결국 변화를 받아들이자는 주장이 아니냐고? 중요한 사실은 현실이 이미 멀찌감치 떠났다는데 있다.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하는 현정부의 교육적 태도 역시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다. 이미 흘러가버리고 저만치 나가버린 현실에 걸맞는 논의와 그로 인한 파생적인 문제들에 대한 치밀한 도전들, 그것만큼 시급한 태도가 어디에 있을까?

 

우리 정부는 지난 20년 동안 학교 시설을 고쳐왔으며 교사의 급여 조건을 개선해 오면서 동시에 기본적인 교육 시스템을 수정해왔다.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현실적으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목의 양은 상당부분 감소되기도 했다. 그런데 현실은 왜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자살하는 학생 수는 늘어만 가는가?

 

교육 문제가 사회 현실에 끌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현실이 보란듯이 교육의 본연적인 이상 따위와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변태하고 있으며, 우리 모두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것을 따라 살고 있기 때문에 입시지옥은 어떠한 형태로든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냥 막연하게 입시지옥 입시지옥 외치기만 했지 그 지옥의 원인과 행태가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한 솔직하고 깊은 성찰이 교육자들 사이에 있었던 것일까?

 

교육이 평등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평등과 양극화에 대안이 되는 사회적 순환현상을 이루어내려면,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교육가들이 품는 고고한 이상이 기어코 실현되려면 그에 준하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것도 없으면서 막연히 상대를 기괴하게 몰거나, 정죄하는 듯한 태도는 집단의 양심적인 자기 속죄 이상의 의미가 전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제발, 좀 더 생산적인 논의가 현장에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8.04.25 20:51 ⓒ 2008 OhmyNews
#교육 #서울시교육청 #자율화 #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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