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를 이틀 동안 20시간에 주파한 산행

[백두대간 덕유산 종주는 '마라톤'이다 ⑥] 월음령과 신풍령

등록 2008.02.19 10:32수정 2008.02.19 14:46
0
원고료로 응원

월음령에는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a

월음령 표지판 신풍령까지 4.7㎞ 남았다. ⓒ 이상기

▲ 월음령 표지판 신풍령까지 4.7㎞ 남았다. ⓒ 이상기

 

못봉에서 월음령으로 내려가면서 코스에 대한 이견이 있어 산행이 조금 지체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앞에 산행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 진행을 해왔다. 그런데 월음령 내려가는 길을 보니 지도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나침반과 지도를 놓고 확인해 보니 능선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을 택하지 않고 능선을 우회하는 편안한 길을 택한 것이었다. 그래도 길의 경사가 장난이 아니었다. 아이젠을 착용했음에도 미끄러지는 대원들이 있었다. 나도 역시 그런 대원들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못봉을 떠난 지 1시간, 우리는 드디어 월음령에 도착한다. 바람의 영향인지 월음령에는 눈이 더 두텁게 쌓여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조금 여유 있게 휴식을 취하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일부 대원은 빵도 꺼내고 과자도 꺼내 에너지를 충전한다. 꼼꼼한 대원은 우유까지 준비해왔다. 산행이라는 것이 배고프면 안 되니까 모두 철저히 준비한 것 같다.

  

월음령의 원래 이름은 달음재이다. 월음, 달음,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책에도 제대로 된 설명이 없고 무주군과 거창군 홈페이지를 찾아보아도 그 의미와 유래를 알 수가 없다. 지도를 보면서 생각해 보니 월이나 달을 넘는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고개에서 북쪽으로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구월담까지는 월음령 계곡이 이어진다. 그리고 남쪽으로 거창군 북상면 소정리 당산폭포를 지나 당산말까지도 역시 계곡이 이어진다. 월음령을 기점으로 북쪽은 금강 수계이고 남쪽은 낙동강 수계가 된다.

 

그렇다면 음을 '소리 음'(音)이나 '그늘 음'(陰) 정도로 해석하면 어떨까? 이 고개를 경계로 말투가 달라지고 볕과 그늘이 달라질 테니까. 그리고 아주 단순하게 달음이 다름의 변형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 고개를 경계로 남과 북이 여러 가지 면에서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름재가 되었고 그것이 달음재로 변했다고. 내가 너무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봉에서 먹은 점심과 반주 한 잔 

 

a

대봉 가는 길의 싸리나무 군락 ⓒ 이상기

대봉 가는 길의 싸리나무 군락 ⓒ 이상기

 

월음령에서 대봉(1263m)으로 이어지는 길은 다시 완만한 오르막이다. 월음령의 해발이 1100m쯤 되니 월음령에서 대봉까지는 그렇게 심한 경사는 아니다. 그리고 산행길에서 대봉이 계속 보이기 때문에 아주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봉에 이르는 길에는 싸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싸리나무는 과거 땔감으로 쓰이기도 했고 빗자루 재료로 쓰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플라스틱 재료로 만든 빗자루가 대부분이지만 옛날에는 싸리나무가 최고의 빗자루 재료였다. 월음령을 출발한 지 40분이 지나 우리 일행은 대봉에 도착했다.

 

a

대봉에서 바라 본 향적봉 주릉 ⓒ 이상기

대봉에서 바라 본 향적봉 주릉 ⓒ 이상기

 

대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서쪽을 바라보니 향적봉 주릉이 불끈 솟아 마치 웅크리고 앉아있는 짐승처럼 보인다. 보고 또 보아도 크고 넉넉한 모습이다. 덕유산이 그리워 온 나는 덕유산의 여러 모습을 사진기에 담아 넣는다. 예전에는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스케치를 해야 했지만 이제는 디카의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그림이 된다. 그리고 그림을 잘 담았는지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편리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덕유산 종주팀은 네 조로 나눠 각각 점심을 준비한다. 이번 산행의 마지막 식사인 셈이다. 그러나 산에서의 식사는 간단하고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대개 기본은 라면이다. 여기에 찬밥이나 주먹밥 또는 누룽지 등이 추가된다. 눈길에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서인지 대원들 모두 아주 맛있게 점심을 먹는다. 또 마지막이라고 여기저기서 술도 나온다. 소주·양주·전통주·과일주 등.

 

a

우리가 지나 온 백두대간길 ⓒ 이상기

우리가 지나 온 백두대간길 ⓒ 이상기

 

대봉에서 우리의 최종 목적지 신풍령(720m)까지는 내려가는 코스이기 때문에 우리는 비교적 부담 없이 술을 한 잔씩 한다. 정상인 향적봉에서 해야 할 정상주를 이곳 대봉에서 하는 셈이다. 이름도 대봉이니 정상주 한 잔 정도는 할만도 하다. 대봉에서 우리 일행은 비교적 많은 시간을 보냈다. 또 이곳은 우리처럼 백암봉 쪽에서 출발한 대간꾼들과 신풍령 쪽에서 출발한 대간꾼들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앞으로 진행할 신풍령까지 이처럼 조망이 좋은 지점을 만날 수가 없다.     

 

마지막에는 작은 봉우리도 지겨워

 

대봉을 출발한 우리 대원들은 조금은 긴장이 풀린 듯 말도 많아지고 여유도 있어진다. 향적봉에서 대봉까지의 진행속도가 다소 빨랐기 때문에 신풍령에 계획보다 한두 시간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봉에서의 1차 목표지점은 갈미봉이다. 산을 한번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야하는 길이지만 표고차가 그리 크지 않아 별로 부담이 되지 않는다. 대봉에서 갈미봉까지는 30여분 정도에 도달할 수 있다.

 

a

갈미봉 가는 길에 돌아 본 대봉 ⓒ 이상기

갈미봉 가는 길에 돌아 본 대봉 ⓒ 이상기

 

갈미봉에도 1210.5m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갈미봉에서의 조망은 좋은 편이 아니다. 오히려 갈미봉으로 오르다가 돌아보는 대봉의 모습이 둥글둥글하고 포근하다. 산세를 통해 우리가 서서히 덕유산을 벗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신풍령까지 거리는 2.6㎞이다. 산길 2.6㎞라면 1시간 반 정도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또 이 길이 내리막길이니 그보다 적게 걸릴 수도 있다.

 

a

빼봉 가는 길에 만난 만지송 ⓒ 이상기

빼봉 가는 길에 만난 만지송 ⓒ 이상기

 

지도 상에는 갈미봉에서 신풍령까지 가는 길에 빼봉(1039.3m)이라는 봉우리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갈미봉에서 빼봉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경사가 급한 편이다. 내려가다 보니 잘 생긴 만지송을 하나 만난다. 덕유산에는 소나무가 별로 없어서인지 만지송이 상당히 반갑다. 옛날에 집안에 심어 자손의 번창을 기원했다고 한다.

 

갈미봉에서 사오십 분을 걸으니 빼봉이다. 빼봉은 표지석이나 표지판도 없는 아주 평범한 봉우리다. 이곳에 측량의 기준이 되는 삼각점이 있어 이곳이 빼봉임을 알 수 있다. 안내문에 따르면 전국에 1만 6000군데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들은 지도 제작·지적 측량·건설공사·각종 시설물의 설치 및 유지 관리 등의 기준점으로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빼봉 삼각점은 '무풍 438'호로 동경 127.4911, 북위 35.5146에 위치한다.

 

a

삼각점 안내문 ⓒ 이상기

삼각점 안내문 ⓒ 이상기

 

빼봉에 도착했으니 이제 신풍령까지는 금방이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여기서도 무명봉을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해야만 했다. 나중에는 1㎞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오는데도 신풍령이 어째 금방 나올 것 같지가 않다. 낮은 봉우리이지만 올라갔다 내려오는 일이 너무나 지루하다. 지루한 정도가 아니라 지겹기까지 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저 아래로 거창과 무주를 잇는 37번 국도가 보이고 차 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이다. 

 

빼재, 수령(秀嶺) 그리고 신풍령 

 

봉우리를 넘고 또 넘어 신풍령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30분이다. 고갯마루 주차장에는 우리가 타고 갈 차가 벌서 대기하고 있고, 곤돌라를 타고 무주리조트로 내려갔던 대원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나는 아이젠을 풀고 배낭을 벗어 차에 넣은 다음 신풍령의 풍경을 한 바퀴 돌아본다.

 

a

수령 표지석 ⓒ 이상기

수령 표지석 ⓒ 이상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수령(秀嶺)’이라는 표지석이다. 말 그대로 하면 빼어난 고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빼재의 빼가 빼어난의 준말이 되는 셈이다. 빼재와 수령은 같은 뜻을 지닌 순 우리말과 한자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자료를 통해 확인해 보니 또 다른 이름이 사용되고 있고 그 이름에 대한 유래도 또 다르게 설명되어 있다.

 

신풍령이라는 이름이다.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라는 의미로 추풍령을 본떠 신풍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 상오정 고개가 있는데 이것은 고개 북쪽에 상오정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빼재라는 이름도 ‘빼어남’에서 온 것이 아니고 ‘뼈’에서 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옛날 이 고개 부근에 사냥꾼과 도적들이 많았으며, 그들이 잡아먹은 동물들의 뼈가 많아 뼈재라 불렀다는 것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이 뼈가 빼이며, 그 때문에 빼재라 부른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믿거나 말거나 수준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요즘 말하는 스토리텔링의 소재가 될 수 있으니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a

표지판·표지석·정자 경남 거창군 고제면을 알리고 있다. ⓒ 이상기

▲ 표지판·표지석·정자 경남 거창군 고제면을 알리고 있다. ⓒ 이상기

 

신풍령은 거창군 고제면과 무주군 설천면을 나누는 중요한 고개이다. 남쪽의 고제면은 거창군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면으로 전라북도, 경상북도와 경계를 이루는 3도의 접경지대에 있다. 고제면의 고제(高梯)는 높은 사다리라는 뜻이다. 북쪽의 설천면은 무주구천동을 품고 있는 최고의 관광지로 현재는 무주리조트를 통해 레저 스포츠의 명소로 그 이름을 날리고 있다.

 

신풍령에서 덕유산 종주를 마감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이틀 동안의 산행거리가 37㎞나 되니 42.195㎞의 마라톤에 비유해도 손색이 없겠다는 사실이다. 이 거리를 마라톤 선수들은 2시간대에 주파하지만 우리는 그 열배나 되는 20시간에 주파를 했다. 그리고 산행을 통해 함께 한 길벗들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수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이러한 계획을 세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a

덕유산 종주 구간 지도 ⓒ 이순욱

덕유산 종주 구간 지도 ⓒ 이순욱

 

더 나가 산행을 통해 얻은 즐거움과 성취감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걷고 또 걸으면서 온몸 운동을 했으니 건강에는 또 얼마나 좋을 건가. 차에 올라 산행을 결산하면서 대원들 모두 아주 만족스러워 한다. 차는 이제 구불구불한 신풍령 고개를 내려오면서 무주로 접어든다. 고속도로에 이를 때까지는 길이 이렇게 구불거릴 모양이다. 피곤한데도 영 잠이 오질 않는다. 밖으로는 무주의 겨울 풍경이 계속해서 스쳐 지나간다.

2008.02.19 10:32 ⓒ 2008 OhmyNews
#월음령 #대봉 #갈미봉 #빼봉 #신풍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금반지 찾아준 사람이 뽑힐 줄이야, 500분의 1 기적
  2. 2 검찰의 돌변... 특수활동비가 아킬레스건인 이유
  3. 3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4. 4 '윤석열 안방' 무너지나... 박근혜보다 안 좋은 징후
  5. 5 "미국·일본에게 '호구' 된 윤 정부... 3년 진짜 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