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과 경희궁에서 연회를?

숭례문 소실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서울시, 국제회의장 및 연회장으로 개방 요청

등록 2008.02.16 10:42수정 2008.02.1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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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지난 14일 제171회 임시회 보고에서 "사적 제257호인 운현궁과 사적 제271호인 경희궁을 국제회의장 및 연회장으로 개방해 사용하겠다"고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이를 관리하는 서울역사박물관의 개방 기준에는 "국가나 시가 주관하는 국제행사, 특히 '연회동반 행사'의 경우 화기반입 및 취사행위 금지 등의 규정을 적용키 곤란하다"는 내용까지 명시돼 있다.

 

남대문 화마(火魔)도 모자라서...

 

전직(前職) 시장에 이어서 현진(現職) 시장이 또다른 문화재 방화예비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코 일부러 불을 질러서 문화재를 소실(燒失)하려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의 문화재급 건축물들이 거의가 목조건물이고 오랜 세월 풍상(風霜)을 겪으며 불에 약하디 약한 건축물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숭례문 소실(燒失)도 그런 문화재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전시행정의 표본으로 개방되고, 안전대책마저 극도로 부실하거나 아예 없는 상황에 놓여진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 국민들의 울화통이 폭발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의 뒤에는 반드시 그 화려함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숨은 노력이 필수적이다. 물론 애초에 문화재에 대한 테러성 만행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숭례문 소실은 그야말로 만행에 다름 아니었다. 겉으로는 화려한 조명에 빛나는 모습이었지만 속으로는 언제든지 훼손될 여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돼지가 비단옷을 걸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문화재는 선대에 빌리고 후대에 가불한 것

 

물론 이미 있었던 규정이겠지만 숭례문의 소실에 이어서 또다른 소실 가능성을 발견하는 마음은 더욱 안타깝다.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윗대가 물려준 문화재에 대해 이토록 미개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윗대에 미안한 마음을 가눌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재는 단순히 눈으로 감상이나 하면서 흥취를 누릴 대상은 아니다. 그 속에 알차게 들어 있는 윗대의 향기를 느끼고 체험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단지 보존만을 위해서 폐쇄하고 접근을 막는다면 문화재는 화석과 다를 것이 없는 죽은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동시대의 흔적은 후대가 느끼고 체험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선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일부 계층, 혹은 특정한 인사의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서 문화재를 무분별하게 다룬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목적을 가지고 개방하는 문화재는 반드시 부실한 관리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애초에 문화재에 대한 접근이 문화적인 측면이 아니라 개인적인 영달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속에 어떤 문화적인 인식이 있을 리 만무하고, 그것을 추진하는 실무진에게서 보다 나은 인식을 기대하기란 난망한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특별한 경우에 화기반입 및 취사행위 금지 등의 규정을 적용키 곤란한 행사까지 고려하고 있다니 아예 문화재를 말아먹을 작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

 

체험과 홍보의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의 문화재를 내외에 널리 알리고 체험하게 하는 행사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그 문화재들은 윗대가 단지 지금의 우리 시대에게만 물려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역시 후대에 대한 배려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반드시 화기와 취사를 동반한 행사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우리 문화를 체험하게 하고 느끼게 만들 방법은 많다. 국제행사나 연회행사에 문화재를 이용한다는 것이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지만, 문화재의 안전에 위해를 끼칠 여지가 있는 행사를 위해 개방 기준을 무모하게 만들 일은 아니다.

 

더이상 문화재에 테러를 가하지 말자. 숭례문의 소실과 불타버린 잔재들이 하릴없이 쓰레기 매립장에 뒹구는 모습을 참담하게 지켜본 국민 여러분들은 결코 이와같은 일이 재발하거나 그럴 소지가 있는 전시행정을 달갑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제발 더 이상 윗대와 후대에 죄를 짓는 문화재에 대한 만행을 멈추기 바란다.

2008.02.16 10:42 ⓒ 2008 OhmyNews
#숭례문 화재 #운현궁 #경희궁 #문화재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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