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우리에 불났다

등록 2008.02.10 17:05수정 2008.02.1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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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7형제 중 막내였다. 옛날 사람들 촌수를 따져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맨 위 자녀와 막내가 나이가 거의 비슷한 것이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맨 위 큰아버지 아들보다 아버지 나이가 더 아래였다.


큰아버지 손주와 나는 오촌 조카와 오촌 당숙 사이였지만 만날 같이 놀았다. 놀면 삼촌과 조카가 아니라 막연한 동무였다. 특히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보다는 아랫집 윗집이었기 때문에 날만 새면 둘은 하루종일 같이 놀았다.

당숙과 조카 사이에 서로 이름 불렀다. 옛 어른들은 아무리 나이 차이가 나도 친척 사이 호칭은 엄격했지만 이상하게도 조카와 내가 서로 이름을 불러도 꾸중을 하지 않았다. '동수'와 '주현'은 아직도 서로에게 남은 귀한 이름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35년 전 일었지만 지금도 생생하다. 한 번씩 어머니도 그날 일을 말씀하실 정도로 우리 집안에는 매우 큰 사건이었다. 지금은 다 밭과 마당으로 변했지만 그때는 논이었다. 매우 추웠던 날이었다. 논두렁과 논바닥에 불을 지피기로 했다.

"현아 안 춥나! 불 피우자. 가서 니 성냥 좀 가지고 오라모."

삼촌과 한 살 아래라는 이유만으로 조카에게 명령 아닌 명령을 내렸지만 조카는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동수야! 옴마가 불 피우면 자다가 오좀 싼다고 캤다."
"아이다. 옴마가 옆에 있을 때는 괜찮타. 진짜 춥다 아이가. 가서 빨리 가지고 오라."

마침 어머니께서 논두렁이 무언가를 심고 계셨다. 어머니를 쳐다본 후 내 말에 수긍했는지 성냥을 가지고 왔다. 불을 놓아 논두렁을 조금 태웠다. 조금씩 타들어가는 논두렁 때문에 추위는 한결 가셨다.

"니들 조심해라. 논뚜렁만 태우지, 다른 대는 가지 말아 알겄나."
"옴마 걱정 마이소. 논두렁만 태울낍니더."

그때였다. 조카 집 옆에 있는 돼지우리가 보였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을 했는지. 조카에게 말했다.

"우리 너거 돼지우리 안에 들어가서 불 노차."
"안 된다. 할매가 논두렁에만 있으라고 안했나."
"논두렁은 벌써 다 탔다. 아이가. 그리고 논두렁은 바람이 불어갔고, 불을 있어도 춥다. 아이가. 우리 돼지우리에 가서 불 지피자."
"바람 불면 어떻게 하노. 겁난다. 바람이 불면 불이 날 수 있다."
"돼지우리 안에는 바람이 불어도 불 안 난다 아이가."

조카는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이미 다 타버린 논두렁을 보자. 더 논두렁에 있어도 추위는 어쩔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돼지우리에 불을 놓자는 내 말에 호응했다. 마침 돼지우리에는 돼지가 없었다.

돼지우리 안에는 돼지가 아니라 볏짚이 가득했다. 그 볏짚이 조금 후 일을 벌어지게 할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우리 안은 따뜻했고, 조카와 나는 재미있게 놀았다. 대뜸 조카가 하는 말이.

"동수야! 볏짚에 불 부치라."
"뭐라꼬. 볏짚에 불을 부치라꼬? 안 된다. 큰 일난다. 불나모 우짤래?"
"괜찮다. 우리 안에는 바람도 안 분다 아이가. 불 붙으면 금방 끄면 된다."

돼지우리에 오자고 한 것은 나였고, 볏짚에 불을 놓고 싶은 것도 있었기에 볏짚에 불을 놓기로 결정했다. 볏짚은 잘 탔다. 마른 볏짚에 붙은 불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불은 돼지우리를 태울 기세였다.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불을 끌 엄두를 내지 못했다.

"현아 빨리 티라, 티(도망가라는 경사도 말)"
"삼촌! 빨리 나가라 나가."

조카는 어디로 도망간지 몰랐다. 나는 우리 집 뒷간, 굴뚝이 있는 곳에 숨었다. 굴뚝 옆에서 돼지우리가 활활 타오른 것을 보면서 정신은 반쯤 나갔다. 활활 타오르는 돼지우리를 본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동수야, 어디었노. 옴마냐 우리 동수가 돼지우리에 갇히삤다. 동네 사람들 우리 동수 돼지우리에 갇히삤다. 이 일을 우짜고."

방금까지 논두렁에서 불을 놓다가, 돼지우리에 간 것을 알고 있는 어머니였다. 그런데 돼지우리가 활활 타오르고 있으니. 어머니 정신이 온전할 수 없었다. 산등성 위에서 밭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돼지우리가 타는 것을 보고 바삐 내려오셨다.

"동수 아부지요. 동수가 돼지우리 안에 갇혔십니다. 이 일을 우짜밉니꺼."

돼지우리 불난 것만 알고 뛰어 오신 아버지도 내가 돼지우리 안에 있다는 말을 듣고 정신을 거의 놓으셨지만 어머니 보다는 정신을 차리셨다.

"당신은 우짠다꼬 아이들이 불장난하는 거를 하도록 했노. 빨리 물 가지고 오라. 불 꺼야 된다 아이가." 

굴뚝 뒤에 숨어 있었지만 너무 무서워 나는 여기 있으니 걱정 말라고 감히 나갈 수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이 와서 불을 껐지만 이미 돼지우리는 다 타버린 뒤였다. 재만 남은 돼지우리를 보면서 조카와 나를 찾았지만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안심을 한 것 같았다.

"아이들이 우리 안에 없었던 것 같다. 이놈들이 불내고 어디로 도망쳤노. 동수야! 주현아!"

부모님이 부러는 소리를 듣고 우리는 얼굴을 내밀었다.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우리는 잘못했다는 말조차도 하지 못했다. 우리가 너무 많이 겁을 먹은 것을 알았는지 부모님은 심하게 꾸중을 하지 않았다.

"오늘 밤에 오줌만 싸바라. 내일 소금 얻으로 보낼끼다. 가서 빨리 시라. 다음부터는 불내면 가만히 안둘끼다. 알 겄나."
"예 불장난 하지 않을낍니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였던 돼지우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조카와는 다시는 불장난을 하지 않았지만 중학교 입학 후 동무들과 함께 성냥으로 폭약을 만든다고 작은 산에서 실험하다가 작은 산 천여평을 태웠다.

산등성 위 밭에서 돼지우리에 불난 것을 보고 뛰어오셨던 아버지는 이미 육신을 놓으신, 우리 옆에 계시지 않는다. 3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그때 아버지가 그립다. 더 오래 사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활활 타오르던 불을 끄기 위해 물을 기었고, 부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돼지우리는 그때 흔적 없이 사라졌고, 그 터도 이제는 완전히 없어졌다. 하지만 시골에 갈 때마다 돼지우리에 불이 난 사건은 잊을 수 없는 일이다. 불조심을 왜 해야 하는지 나는 지금 돼지우리 사건으로 잘 알고 있다.
#불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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