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스타'와 진정한 '배우'는 다른 종족일까?

'배우'로서의 본업이 뭔지 생각해 보고 스스로 거품 빼야

08.02.01 11:09최종업데이트08.02.02 14:31
원고료로 응원

드러내놓고 말을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사실 배우로서 꽤 오랜 경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연기를 보면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발전이 없다고 느껴지는 배우들이 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하여 연기경력이 5년, 10년을 넘겼지만 한 가지 이미지만 고수하거나 연기력이 향상된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배우들을 화면에서 접할 때면 보는 관객도 답답한 게 사실이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폐셔널한 직업으로서 연기를 하는 이들에게 전문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당사자로서는 치욕이다. 그러나 연기를 못해도 이미지만으로 용서가 되는 것이 한국 연예계에서 '스타'라는 혜택받은 특별한 직업(?)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스타덤에 오른 배우들일 수록 두드러지는 과작(寡作) 현상은 유독 최근의 한국 연예계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10대나 20대초반의 나이에 스타의 지위에 오르고 몸값이 상승하면, 이미지 관리의 차원에서 다음 작품을 고르는데 제약이 많다. 그러나 정작 CF 활동은 끊이지 않는다는 것도 공통적인 특징이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일급 배우들도 블록버스터에서 소규모의 독립 영화, 상업영화에서 작가주의 영화까지 다양한 작품에 넘나들며 주-조연을 꺼리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브래드 피트나 로버트 드 니로같은 '특급 배우'들이 소규모 옴니버스 영화나 작은 배역에 연연하지 않고 출연하는 것은 할리우드 배우들을 단순히 거액의 몸값으로만 기억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편견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 아이돌 스타들이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 과도하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을 줄 정도로 다작 현상이 두드러진다. 아오이 유우나 나가사와 마사미, 아라가키 유이 같은 일본 소녀 아이돌의 경우, 지난 2년간 평균 출연작인 드라마와 영화를 합쳐 무려 9~10편에 육박할 정도였다.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이나 단역급으로 출연한 작품도 적지 않았다.

 

물론 우리나라보다 시장 규모가 훨씬 넓은 곳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한창 배우로서 연기의 기본과 경험을 다져야할 시점에 본업보다는 소속사의 이미지 관리에 따라 출연작이 제한되고 CF에만 치중하는 것에 비하면 생각해볼 부분이 적지않다.

 

스타 따로, 배우 따로? 이미지 게임의 허상

 

<싸움> 포스터. ⓒ 시네마서비스

그렇다면 '스타'와 '배우'를 구분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우리 나라에서는 스타로서의 연예인과 진정한 실력을 지닌 배우를 엄격히 구분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것은 많은 많은 검증되지 않은 이미지만 믿고 스타로 군림하려는 일부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정서의 반작용이다.

 

모름지기 모든 배우라면 송강호나 전도연, 최수종, 장동건 같은 배우들을 꿈꿀 것이다. 이들은 당대에 인정받는 톱스타인 동시에 연기력에서도 검증받은 걸출한 명배우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어느날 하루아침에 스타로 급부상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인내, 노력과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된 배우들이다.

 

현재 스타배우를 만드는 연예계의 구조는 어떨까. 스타덤에 오르는 것도 어렵지만,  많은 배우들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두 작품으로 어설프게 스타덤에 오른 이후도 문제다. 이미지 관리를 앞세워 작품 선택에 까다로운 것은 물론, 연기력에 대한 발전 없이 주연이나 비중 있는 역할만을 고집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배우라기보다는 스타로서의 지위에만 집착하며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90년대 고소영은 당대 최고 인기스타이자 트렌드 세터로 꼽혔다. 도도하고 세련된 미모와 화려한 스타일, 할 말은 하는 솔직한 이미지를 앞세워 '신세대의 아이콘'으로까지 부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소영은 높은 지명도에 비해 '배우'로서는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10여년이 넘는 기나긴 연기경력 중에 정작 주연을 맡아서 성공한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최근 몇 년간 출연한 영화로는 <아파트>와 <언니가 간다> 드라마 <푸른 물고기> 등이며 모두 참담한 실패와 함께 '고소영 스타 파워'에 의문부호가 붙기도 했다. 특히 30대를 넘어선 오랜 연기경력에도 불구하고 연기력이 전혀 늘지 않는다는 비판의 시선이 끊이지 않았다. 고소영은 언제부터인가 배우이기 보다는 CF 스타로서의 이미지에 갇힌 반쪽짜리 연기자로서 소비되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이것은 고소영 이후 많은 미녀스타들에게 있어서 공통된 딜레마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미녀스타들이 CF용 스타와 배우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특히 본업인 연기는 1년에 한 작품을 고르는 것도 인색하면서 CF에는 매년 여러 편에 얼굴을 내비치는 '광고 전문 스타'들을 보는 세간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일부에서는 CF와 연기활동을 분리해서 평가하는 것에 불만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CF도 엄연히 전문적인 연기활동이지만, 엄격히 말하면 CF는 배우로서의 본업이 우선한 다음에 따라오는 부가수익일 뿐, 아예 배우로서의 본업을 외면한 채 기존 이미지에 안주하면서 적은 노력으로 거액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CF를 우선순위로 놓고 활동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결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CF스타들의 자아찾기, 거품을 빼는 과정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CF스타들이 관객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짧은 시간의 광고에서 철저히 포장된 이미지와 매력에 비해, 정작 자신의 출연작에선 빈약한 연기력 밑천을 드러내기 때문. 어쩌다 모처럼 고른 작품에서 CF 이미지와 조금 다른 캐릭터를 소화했다고 대단한 연기변신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에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김태희와 전지현은 최근 뒤늦게 CF라는 이미지의 벽을 깨고 배우로서의 자아를 찾기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경우다. 김태희는 <싸움>에서, 전지현은 최근 개봉한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를 통해 전작의 청순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벗고 털털하고 터프한 캐릭터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홍보과정에서 보여준 '연기변신'이라는 거창한 표현에 비해 정작 캐릭터를 받쳐주어야 할 여배우들의 연기력은 여전히 엇갈린 반응을 피하지 못했다. 오히려 잘못된 홍보 전략과 영화 속 간접 광고의 범람은, 결국 그녀들을 주인공으로 한 또 다른 CF·영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이미지 위주로 굳어진 배우들에게 새로운 도전은 곧 거품을 빼야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당장의 성패를 떠나 변화의 필요성에 눈을 뜨고 노력했다는 과정 자체는 높게 평가할만 하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으로 2년만의 복귀를 노리고 있는 문근영은 '국민여동생'과 성인연기자 사이의 과도기에 놓여있다. 아역시절 <명성황후> <아내> <장화 홍련> 등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하며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으나, <어린 신부>의 흥행이후 '국민여동생'이라는 틀에 갇혀 성인연기자로서의 변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학 진학 문제 등이 겹쳐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나마 선택했던 <댄서의 순정> <사랑따윈 필요없어>같은 후속작들이 대부분 문근영의 스타성을 우려먹는 1인 기획 영화였다는 한계도 배우로서의 문근영에게는 독으로 작용했다.

 

배우로서의 본업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 먼저 스스로의 거품을 빼고 자신에게 맞는 배역과 영화를 편견 없이 선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또한 무엇보다 '한철 장사'인 CF 스타로 연명하려 들지 말고 다양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연기력을 업그레이드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근영이나 전지현같은 몇몇 스타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인지도에 비하여 연기력에서 인정받지 못한 젊은 배우들이 극복해야할 딜레마이기도 하다.

2008.02.01 11:09 ⓒ 2008 OhmyNews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싸움 바람의 화원 김태희 전지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