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몸으로 하늘에 그물을 던지다

김민 시집 <길에서 만난 나무늘보>

등록 2007.11.22 19:55수정 2007.11.22 20:01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2001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한 신인 김민의 첫 시집 <길에서 만난 나무늘보>는 자못 충격적이다. 등단한 지 6년 만에 펴내는 그의 첫 시집에 수록된 86편의 시가 모두 한 줄짜리 작품으로 되어있기 때문. 이런 시집은 우리 문학사에서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것이리라.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 형식인 일본의 하이쿠(俳句)를 연상시키는 1행에 김민 시인은 세계 속의 자신의 존재 의의를, 자아와 세계의 소통을 압축·집약시켜놓고 있다.

 

노을이 갈대 사이로 흘렀네 내 굽은 손으로는 뭘 뿌려야 하나 - '자화상1'

난수표를 풀어야 나를 읽을 수 있다니 - '자화상2'전문.

집어등 켜지는 시간 삐쩍 마른 오른손 탄불에 구워 들고 한 잔 - '자화상3'

죽음을 주우러 다니는 넝마주이 - '자화상4'

아유, 이거 손 좀 많이 봐야 되겠는데요 - '자화상5'

 

a

ⓒ 민음사

ⓒ 민음사

우리 현대 시문학사 속에서 서정주, 윤동주, 장석남 등이 그랬듯이 시인들은 자신의 시집 속에 한두 편의 ‘자화상’이라는 시편을 남기기도 한다. 그것은 시인이 세계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자기 존재의 의의를 스스로 그려놓은 그림이다.

 

김민 시인은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시편을 5편이나 시집 첫머리에 배치해 놓고 있다. 그는 세계 속 자신의 모습을 “내 굽은 손” “죽음을 주우러 다니는 넝마주이” “손 좀 많이 봐야”하는 존재로 그려놓고 있다. 그리고 도저히 풀어낼 방법이 없는 난수표, 이 “난수표를 풀어야 나를 읽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비극적 슬픔에 깊이 몸 베인 자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시 '거대한 뿌리', '풀'로 유명한 60년대 대표적 시인 고 김수영 시인의 친조카이기도 한 김민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아온 장애인이다.

 

굽은 손으로 한 자 한 자 그려낸 김민의 자화상은 그걸 들여다보는 독자의 가슴을 숙연케 하고 슬픔에 젖게 하며, 또 독자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성찰의 빛을 되쏘고 있다.

 

김민의 첫 시집 <길에서 만난 나무늘보>는 이 세상을 건너가는 존재의 아픔을 간결하면서도 직정적 언어로 그려냄으로써 삶의 본질에 직방으로 육박해가고 있다.

 

“새것으로 사고 싶었네 나를, 너를”('쇼핑'), “자아와의 접속 시도 중 비밀 번호 오류 무한 반복”('만취'), “내 발목도 이제 그만 놓아주시게”('마을 입구 상여 떠날 줄 모르고'), “이보시게, 자네는 정말이지 멋지게 뒤틀렸군 그래”('하회 삼신당 느티나무'), “나나 쟤나 날갯짓만 요란하다니까”('하루살이'), “어긋난 셔츠 단추 바로 꿰려면 또 한참”('길에서 만난 나무늘보'), “개나리 눈 터도 나만이 이 왁자지껄한 봄볕과 멀고 멀구나”('담장 밖') 등의 시편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듯 김민 시인은 간결하면서 직정적 언어로 자신의 가슴 속 한(恨) 토해내고 있다. 김민 시의 수사에는 화려한 수식이나 복잡한 기교가 없다. 아니 에둘러 말하기에 자기 존재의 아픔이 너무나도 크고 강렬한 것이 아니었을까.


시집 맨 마지막 시편에서 그는 “거미 한 마리조차 오지 않는 이 해질녘”('적막')이라고 적고 있다. 적막한 외로움의 그 깊고 캄캄한 감옥을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어쩌면 광대버섯이거나 며느리밑씻개쯤으로 돋아나고 있을지도”('이 취기마저 없었다면') 이나 “갈비뼈가 철창으로 질러지는 소리 겨울 산까치 터엉터엉 울렸습니다”라는 '마음의 감옥'이라는 시편을 소리 내어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젖어든다.

 

취기에 들끓는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사는 자 어찌 끓는 노을에 몸 던져 울지 않으리. “끓는 노을에 몸 던지는 까마귀 한 마리 울다”('이명')는 바로 김민 시인 자신이 소리내어 터텅터엉 우는 울음소리 바로 그것이다. 그것을 김민 시인은 다시 “심장에 어혈”('인디언식 이름 지어 보기')라고 한다. 김민의 짧은 시편이 이러한 강렬한 빛을 되쏘아내는 큰 힘은 자신의 육체적 심리적 고통의 체험을 그 밑바탕으로 삼고 있으면서 제목과 한 행(行)짜리 시의 긴밀한 결합 관계에서 비롯된다. 제목(題目)이 시(詩)를 또 시가 그 제목을 떠받치며 끌어안고 있다.


김민의 시가 자신의 아픔을 새기는 고통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자신의 아픔을 지켜보는 어머니를 위해서도 좌절과 절망의 노래만 부를 수 없는 일이다. “태양에 담그시는 손 있으니”('어머니') “하늘에 그물 던져 나를 건지다”('한편에는 꼬리 잘린 가오리연') 그리고 “이곳은 우주 귀퉁이 그리고 또 한복판”('냉이 꽃')이라고 냉이 꽃 하나에서 우주의 한복판을 발견한다. 또 하늘을 날아가는 제비갈매기를 보면서 “하늘 한끝 잡아 마음에 획을 긋다”('제비갈매기')라고 노래한다. 자신의 아픔과 장애를 넘어 이런 우주 자연의 광활한 공간을 걸어가는 김민 시인의 발걸음을 보면서 나와 같은 독자는 박수를 보내면서 스스로 감동과 삶의 힘을 얻기도 한다.


그렇다. 시인이여! “저어기 소실점 이르러 미륵 안 계신들 어떠리”('쌍계사 벚꽃길'), “당신은 이곳에 왜 서 있는 거요”('발자국')라는 존재의 본질적 질문을 잊지 말고, 내가 걸어온 이 세계와의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경북매일신문 '이종암의 책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민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2001년 《세계의문학》에 「자벌레」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2007.11.22 19:55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경북매일신문 '이종암의 책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민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2001년 《세계의문학》에 「자벌레」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길에서 만난 나무늘보

김민 지음,
민음사, 2007


#김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국인들만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소름 돋는 '어메이징 코리아'
  2. 2 그가 입을 열까 불안? 황당한 윤석열표 장성 인사
  3. 3 참전용사 선창에 후배해병들 화답 "윤석열 거부권? 사생결단낸다"
  4. 4 눈썹 문신한 사람들 보십시오... 이게 말이 됩니까
  5. 5 해병대 노병도 울었다... 채상병 특검법 국회 통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