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문제, 유럽은 부시 욕할 자격 있나

[해외리포트] '사다리 걷어차기' 대신 환경오염 역사부터 반성해야

등록 2007.10.02 17:38수정 2007.10.04 13:02
0
원고료로 응원
a

온실가스 강제 감축 방식을 반대한 부시의 발언을 유럽 국가의 대사들이 성토한다는 내용을 전한 의 보도. ⓒ BBC

온실가스 강제 감축 방식을 반대한 부시의 발언을 유럽 국가의 대사들이 성토한다는 내용을 전한 의 보도. ⓒ BBC

"이것은 완전히 속보이는 속임수다."
"부시는 자신이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해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국가들이 동의하는 일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 국무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에 관한 주요국 회의' 기조연설 직후, 연설을 들은 유럽 국가들의 대표단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국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강제적으로 부과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부시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는 유럽 국가 대표들이 이를 비난하고 일부 대표단들은 성질을 낼 정도였다고 영국 <BBC>는 보도했다.

 

기후 변화를 둘러싸고 유럽과 미국, 개발도상국가들 간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등 기후 변화 문제가 단순한 환경 사안에 그치지 않고,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이를 두고 서로 각축을 벌이는 국가 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지구 살리자는 대원칙엔 동의했으나... 유럽 vs. 미국-개도국 대립 구도

 

올해는 세계 환경의 역사에서 중요한 해로 기억될 것임이 분명하다. 지난 9월에는, 2001년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한 미국을 비롯한 무려 150개국의 정상과 장관 등이 참석한 '기후변화 고위급 회의'가 유엔 주재로 열렸다. 또 미국 국무부 주재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17개국이 한 자리에 모여서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에 관한 주요국 회의'를 열었다.

 

세계 정상 및 장관들은 이번 유엔회의에서 온실가스 등 오염물질로 신음하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 각국들이 공동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대원칙에는 동의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재앙을 막기 위해 지구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8년밖에 없다"는 유엔 기후변화위원회(IPCC)의 제4차 보고서가 보여주듯,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고위급회의가 끝난 후 "각국 지도자들이 기후변화와 관련한 단호한 결단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합의를 이뤘다"며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호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대원칙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지구 온난화 저지를 위해 가야 할 길은 험난해 보인다. 환경오염으로 신음하는 지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하는 방법을 놓고 각국이 큰 시각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유엔회의의 화두는 오는 2012년으로 시효가 끝나는 교토의정서를 대신할 '포스트 교토의정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각국은 주판알을 튕기며 자국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포스트 교토의정서가 만들어지도록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논의는 교토의정서를 제정하면서 겪었던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갈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인도 등 온실가스 대량 배출 국가들은 각국이 '자발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또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제시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환경 관련 기술을 개발하면 환경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도 "온실가스 감축 노력의 핵심은 청정에너지 기술의 발전"이라며 "청정에너지 상품과 서비스 산업의 발전을 위해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이 같은 부시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매우 안일한 자세'라며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영국의 유엔 환경 대사인 존 애쉬톤은 "자발적인 접근 방법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세는 국제적으로도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 국가들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을 기준으로 해 일정 수준으로 감축하고, 그 이후에는 더욱 급속하게 '강제적'으로 줄여야 급속한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선진국들은 교토의정서 준수 등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이 예상되지만 중국, 인도 등 신흥개도국은 확장되는 경제 등으로 인해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이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이를 줄이지 않으면 대안이 없다"고 주장한다.

 

'강제 감축 방식은 곤란'... 소극적인 미국과 개도국

 

미국과 중국, 인도 등 개도국들은 왜 그토록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일까. 바로 경제 문제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철강, 시멘트, 정유, 석유화학, 건설 등의 업종은 환경오염 물질을 대량 배출하는 분야로, 인위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여야 할 경우 이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는 오염물질 배출 감소를 위한 비용 상승을 초래해, 경제 성장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이들 국가는 우려하고 있다.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국 1위 미국이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하고 유럽 국가들의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인 이유도 경제 위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최근 눈부신 경제성장을 하면서 선진국을 무섭게 추격하는 중국과 인도로서는, 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끼치더라도 환경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을 것이다. 개도국들은 미국의 등 뒤에 숨어서 유럽 국가들의 눈치를 살피며, 미국이 유럽 국가들의 거센 공세를 막아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한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중화학공업이 즐비한 한국 경제 상황에서 온실가스 감축 문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유럽 국가들의 주장은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 논리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들이대며 미국과 개도국들의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전적으로 환경 문제만을 이유로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유럽 국가들의 주장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용어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로 보인다. 선진국들은 후진국이 따라 올라오는 것을 마치 사다리를 걷어차듯 방해한다는 의미다.

 

일부 예외는 있지만, 오염물질을 다량으로 배출하는 중화학공업 등은 더 이상 유럽 경제의 주류가 아니다. 영국의 경우를 살펴봐도 공장은 그 수가 크게 줄었고 상당수의 제품은 값싼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중국, 베트남, 인도에서 수입한 것을 사용하고 있다.

 

한때 영국 경제의 핵심이었던 석탄산업 단지에서 탄광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단적인 예로, 북부 요크셔의 대표적 도시인 셰필드(Sheffield)를 꼽을 수 있다. 19세기부터 세계적인 철강도시로 발전한 셰필드는, 1970년대에 영국 전역의 석탄 산업이 침체기로 접어들자 그곳의 공장들도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이제는 문화도시로 탈바꿈했다.

 

유럽 국가들이 개도국처럼 온실가스 다량 배출 산업의 비중이 높다면 자국 경제에서 손실을 입으면서까지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했을까. 유럽 국가들은 환경이라는 명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들을 맹렬히 추격하는 중국, 인도 등 개도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닐까.

 

사실 환경오염의 근원을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산업혁명 이후 본격화한 근대화야말로 세계 환경오염의 주범이 아닌가. 영국 같은 유럽 국가야말로 석탄을 개발하고 철도를 개발하면서 세계 환경에 끼친 과거의 악영향에 대해 책임질 부분이 적지 않다.

 

a

셰필드 시내에 있는 셰필드대학교와 그 주변 전경. ⓒ 셰필드대학교 홈페이지

셰필드 시내에 있는 셰필드대학교와 그 주변 전경. ⓒ 셰필드대학교 홈페이지

'남은 시간은 8년뿐'... 유엔보고서 명심해야

 

그렇지만 기후 온난화 문제는 이 같은 국가들 간의 정치학이라는 측면만으로 바라보기에는 너무도 심각하다.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는 없는 게 현실이다.

 

향후 포스트 교토의정서 논의에서, 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이 근대화 이후 세계 역사에서 지구 온난화에 혁혁히 기여한(?) 부분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환경오염의 역사를 반성해야 개도국을 설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논의과정에서 제기될 비용 부담 등 책임 분담 문제에서 유럽 국가들은 책임을 느끼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미국과 개도국들도 경제성장 논리만 고수하다가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미래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 온실가스를 방출할 경우 향후 8년 안에 돌이킬 수 없는 기후재앙과 엄청난 생태계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난 5월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는 경고했다. 8년 뒤인 2015년을 정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폭 감축해야 한다고 촉구한 IPCC의 지적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음을 미국과 개도국, 유럽 국가 모두 기억해야 할 때다.

2007.10.02 17:38 ⓒ 2007 OhmyNews
#지구온난화 #온실가스 #부시 #교토의정서 #사다리 걷어차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이 어휘력이 떨어져요"... 예상치 못한 교사의 말
  2. 2 그가 입을 열까 불안? 황당한 윤석열표 장성 인사
  3. 3 한국인들만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소름 돋는 '어메이징 코리아'
  4. 4 7세 아들이 김밥 앞에서 코 막은 사연
  5. 5 참전용사 선창에 후배해병들 화답 "윤석열 거부권? 사생결단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