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나리가 지나간 자리, 여수 '화태도'

등록 2007.09.17 19:28수정 2007.09.18 11:0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play

제11호 태풍 나리의 위력 영상제목에서 태풍 나비를 나리로 바로잡습니다. 자막 편집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 김치민




지난 일요일(16일) 제11호 태풍 나리가 지나갔다.

기상청은 소형 태풍이라고 했지만 엄청난 비와 강풍에, 지나는 길목에 위치한 섬들은 숨을 죽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태풍의 속도 때문에 이곳 전라남도 여수시 화태도에 태풍 나리가 도착하는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일요일이었지만, 태풍 때문에 집에 못 갔다. 토요일 3시 배를 끝으로 여객선 운항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을의 산들 바람과는 느낌이 다르다. 비도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교무실에서 나왔다. 도회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선술집 하나 없는 섬에서는 시간이 남아도 적당히 시간 보낼 장소가 없다. 오로지 관사와 교무실을 오갈 수밖에. 특히 이렇게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해안으로 나가는 것이 더욱 위험하다.

a

마족 항에 피항중인 작은 어선들 ⓒ 김치민


11시를 지나면서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거기에 비도 굵어졌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보인다. 좁은 집에서 갑갑했는지 아이들은 비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이 가득한 운동장에서 공을 찬다. 바람 부는 방향으로 공을 차면 바람이 공을 되돌려준다.


낮 12시를 지나면서 태풍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 앞 대나무가 바람 앞에 속절없이 흔들리고 운동장 주변 소나무가 정신없이 바람을 맞는다. 장대비가 바람에 날리고 꼭 닫아놓은 교무실 유리창 사이로 빗물이 샌다. 세찬 바람이 빗물을 창틀 사이로 밀어 넣는다.

오후 1시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태풍의 모습이다.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쏟아지는 비와 사람을 날려버릴 듯한 바람 때문에 문을 열 수도 없다.  섬 전체가 정전이다. 키폰을 사용하는 학교에서 정전이 되면 통신도 함께 불통이다. 오직 남은 것은 호주머니 속 휴대폰 뿐이다. 조금 지나자 휴대폰도 불통이다. 아마 기지국에 문제가 생긴 듯하다.

오후 4가 지나면서 바람이 잦아들기 시작한다. 빗줄기도 약해졌다. 교무실을 나와 관사로 갔다. 환기를 위해 열어두었던 창문 때문에 2층에 있는 내 관사가 침수되었다. 큰 양동이로 5번 퍼낼 정도의 물이 찼으니 비의 양을 알만하다. 이층 현관 문틈으로 비가 들어와 현관에 벗어둔 신발이 둥둥 떠다닌다. 마을 관사에 계시는 선생님은 관사가 침수되어 잠을 설치고 밤새 비설거지를 했다.

a

태풍을 즐기는 아이들 - 선생님들께 들켜 혼났다. ⓒ 김치민



오후 5시가 지나면서 태풍은 뒷모습을 보인다. 옥상 물탱크 보온용 알미늄 보호대가 바람에 날려 파손되었다. 돌산도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섬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다. 양초와 손전등으로 밤을 보냈다.

태풍이 지난 오늘(17일) 아침은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다. 제법 따갑게 느껴지는 가을 햇볕이다. 하지만 태풍의 흔적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마을 담장이 서너군데 무너졌다. 묘두 앞 가두리 양식장 일부가 파손되고, 가두리 양식장 관리사용 컨테이너 주택이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촌 계장님 전화는 피해를 신고하는 어민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맑던 하늘이 다시 검은 구름으로 가득하다. 기상청은 제12호 태풍 위파가 우리나라 서해안 쪽으로 접근 중이라고 발표했다. 제법 바람소리가 크다. 비도 온다. 제11호 태풍 나리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또 태풍이 온다. 이번에는 직접 영향권에서 비켜날 거라니 다행이다.

a

기상청에서 제공한 제12호 태풍 위파의 예상 진로 ⓒ 기상청

#태풍 나리 #비상근무 #화태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등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면서 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진 교사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종영 '수사반장 1958'... 청년층이 호평한 이유
  2. 2 '초보 노인'이 실버아파트에서 경험한 신세계
  3. 3 '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4. 4 "개발도상국 대통령 기념사인가"... 윤 대통령 5·18기념사, 쏟아지는 혹평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