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소나무도 가슴이 있네, 이 젖꼭지 좀 봐"

[전국 100대 명산을 찾아서 8] 춘천 삼악산

등록 2007.08.27 16:33수정 2007.08.2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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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나무의 가슴 참 예쁘지요? ⓒ 이승철

"어이구 더워! 산에 올라가기도 전에 길에서 힘 다 빠지는구먼."

8월 22일 오전, 입구의 바위협곡 사이에 있는 등선폭포가 유명한 춘천 삼악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경춘선 철도 강촌역에서 내려 삼악산 입구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아니 이 길이 이렇게 멀었었나? 그땐 가까웠었는데 왜 이렇게 멀어졌지, 옛날에도 몇 번이나 이 길을 걸어서 등선폭포까지 갔었는데 말이야."

일행들 중에는 전에도 몇 번 이 길을 걸어서 삼악산에 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도로가 넓혀지긴 했지만 거리는 그대로인데,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길도 멀어져버렸구먼, 어쩌겠어? 이것도 나이 탓인걸."

맞는 말이다. 나도 30여 년 전에 몇 번인가 이 길을 걸어서 삼악산에 올랐었다. 그런데 정말 그때는 이렇게 멀다는 느낌이 안 들었던 것 같다.

무더운 날씨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모두들 땀을 뻘뻘 흘리며 삼악산 입구에 도착하니 바위협곡 입구는 오밀조밀한 가게들이 모두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등산객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폭포로 오르는 협곡사이에는 마치 작은 성문처럼 막아선 출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자 정말 하늘만 빠끔하게 올려다 보이는 좁은 바위절벽 사이로 층층이 폭포와 작은 웅덩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히야! 이 바위절벽과 폭포 좀 봐. 오랜만에 왔더니만 처음 보는 것처럼 멋있구먼."

전에도 몇 번 왔었다던 일행은 멋진 경치가 새삼스러운 모양이었다. 이 협곡은 수억 년 전의 빙하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어느 명산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멋진 풍경이었다. 비좁은 바위협곡이 높고 깊어서 마치 동굴 속에라도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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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폭포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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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탕 ⓒ 이승철

협곡 사이를 흘러내리는 6개의 폭포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높이 15m의 등선폭포를 비롯하여 비선, 승학, 백련, 비룡, 폭포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자 역시 작은 폭포아래 다른 것들 보다 조금 넓은 웅덩이가 나타났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전해내려 오는 선녀탕이었다.

"여기서 잠깐 쉬어가지."

일행 중 한명이 갑자기 쉬기를 청한다. 입구에서 잠깐 쉬며 간식까지 들고 왔는데 또 쉬자고 하는 걸 보니 몸의 상태가 안 좋은 모양이었다. 그는 8월초부터 보름동안 러시아 여행을 하느라고 그동안 세 번의 등산을 함께 하지 못한 친구였다.

"가슴이 뻐근하고 아픈데 어떡하지?"

역시 그랬다. 매주 한 번씩 하는 등산을 세 번을 빼먹고 3주 만에 하는 등산이 무리가 되었던 모양이다. 조금 고통스러운 표정이다. 더구나 가슴이 아프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신호가 아닌가.

다른 일행들은 그럼 그만 올라가고 잠깐 쉬었다가 내려가라고 권했다. 다행이 입구에는 가게들도 많아서 쉬고 있기엔 그다지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수긍했다. 당장 병원에 가야할 만큼 급박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혼자 기다리려면 몇 시간씩 시간 보내기가 지겨울 테니까 내가 같이 있어줄게."

다른 일행 한명이 동행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럼 두 사람은 오늘 등산을 포기하고 세 사람만 올라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작정하고 그곳에서 20여분 동안을 넉넉하게 쉬었다.

"자! 그럼 두 사람은 내려가고 다른 사람들은 올라가도록 하지."
"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속도만 좀 천천히 여유 있게 올라가면,"

그러자 조금 전에 가슴이 아프다던 친구가 같이 올라가겠다고 나선다. 이십여 분 동안의 휴식으로 그의 얼굴표정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무리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그는 괜찮으니 천천히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내가 맨 뒤에서 그의 상태를 체크하며 다시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흥국사 입구를 지나치자 오른편으로 설치된 계단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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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악산 용화봉 정상 표지석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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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길에서 바라본 호수와 춘천시가지 풍경 ⓒ 이승철

계곡을 따라 올라오는 동안 반대편으로 올라온 몇 사람의 등산객들을 만났지만 이곳에서부터는 만나는 등산객들도 드물고 산과 계곡은 오롯한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고려태조 왕건에게 쫓겨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다는 궁예의 전설이 깃든 흥국사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이쿠! 힘들어, 난 등산길에서 만나는 이런 계단길이 제일 싫더라."
"그건 나도 그래. 그런데 이런 곳은 이렇게 철제와 나무로 계단을 안 만들어도 될 것 같은데 왜 돈들이고 환경파괴하면서 이런 걸 만들어 놓는지 모르겠어."

설마 계단 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더구나 무더운 날씨를 무릅쓰고 오르는 산길에서 만나는 계단을 누가 좋아할 것인가. 산길에서 만나는 계단, 특히 철제계단은 더욱 그랬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허위허위 계단을 올라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쉬었다.

"어때? 가슴은 괜찮아?"
"응, 숨이 조금 차긴 하지만 아프지는 않아. 이렇게 천천히 올라가면 괜찮을 것 같아."

다행이 조금 전에 가슴이 아프다고 했던 친구도 더 이상은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이 친구를 배려하여 등산 속도는 한결 더 느려졌다.

산 중턱에서 옛 우물터를 만났다. 이 삼악산은 강변에 우뚝 솟은 험준한 산세를 이용한 천혜의 요새로서 능선 여기저기에는 삼국시대 이전 맥국(貊國)의 성터라고도 하고, 후삼국의 궁예가 쌓은 것이라고도 전해지는 궁궐터 흔적이 470m 정도 남아 있기도 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수백 개의 돌계단도 있었다. 몇 번을 쉬어 드디어 정상인 용화봉에 올랐다. 해발 645m, 크고 작은 바위투성이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엉성하게 시멘트를 섞어 돌을 쌓은 기단 위에 용화봉 정상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삼악산은 주봉인 용화봉과 함께 청운봉(546m), 등선봉(632m)등 3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어서 삼악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산이다, 세 개의 봉우리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들은 대부분 뾰족뾰족하고 험한 바위능선을 이루고 있다. 산을 구성하고 있는 바위들은 대부분 규암의 일종으로서 약 5억 7000만 년 전에서 25억 년 전에 퇴적된 사암(砂岩)이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생성된 변성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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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절벽 아래로 줄기가 뻗어내린 기이한 모습의 소나무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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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바위틈에서 자란 늙은 소나무 ⓒ 이승철

정상에 올라서자 전망이 시원하게 툭 트인다. 특히 호수를 끼고 있는 춘천시가지와 함께 호수 안의 섬들이 그림 같은 모습이다. 바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붕어모양의 붕어섬과 중도의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그런데 호수는 멀리서 내려다보아도 온통 흙탕물이다. 극심한 수해를 입었다는 북한지역에서 흘러내려온 흙탕물인 것 같았다.

"이 삼악산은 이 멋진 전망이 정말 일품이라니까."

전에도 몇 번 오른 적이 있다는 일행이 감회가 새로운지 감탄을 금치 못한다. 모처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주변 경치를 바라보다가 내려가기로 했다. 하산은 호수 쪽의 상원사가 있는 곳으로 길을 잡았다. 그쪽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호수를 내려다보는 능선길을 타야한다.

그러나 그 능선길은 날카로운 바위들이 비스듬하게 칼날처럼 서있어서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바윗길 곳곳에 발판과 함께 철제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었다. 일행들은 그 바윗길을 조심조심 이동했다.

"어! 소나무도 가슴이 있네, 어이! 여기 이 소나무 좀 봐, 이건 젖꼭지잖아?"

일행 한사람이 가리키는 것은 바위능선 꼭대기에 서 있는 상당히 커다란 소나무였다. 그런데 이 소나무의 모습이 정말 그럴 듯했다.

"우와! 이건 정말 예쁜 처녀 젖가슴이네."

소나무의 몸통 줄기 가운데에는 정말 사람의 가슴처럼 생긴 돌기가 나와 있었다. 도톰하게 솟아오른 젖가슴 가운데는 정말 젖꼭지까지, 정말 신기하게도 아름다운 여성의 젖가슴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그것참, 자연의 신비라니, 상상을 초월한다니까."

모두들 웃음을 머금고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위능선길을 지나면 상당히 가파른 역시 바위투성이 급경사 길이었다. 한발만 삐끗 잘못 디디면 바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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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굳게 잠긴 상원사 대웅전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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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린 상원사 요사채 ⓒ 이승철

조심조심 바윗길을 내려가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은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흙탕물이지만 그 강을 건너 바라보이는 겹겹으로 줄기줄기 이어진 푸른 연봉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싱그럽고 멋진 풍경인가. 모두들 가끔씩 발길을 멈추고 그런 풍경에 도취되는 모습이었다.

바윗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는 곳곳에는 수백 년씩 자랐음직한 소나무들의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전혀 뿌리를 내릴 수 없어 보이는 커다란 바위 사이에서 자란 늙은 소나무, 그리고 바위 절벽 아래로 줄기가 뻗어 내려가 ㄴ자 모습으로 자란 소나무의 아주 기형적인 모습도 놀라웠다.

상원사는 대웅전과 요사채의 단 두 채로 이루어진 단출한 모습이었다. 물이 새기라도 하는지 지붕에 천막을 뒤집어쓴 대웅전은 문이 굳게 잠겨 있고 요사채만 문이 활짝 열려있는 모습도 이채롭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사람은 보이지 않아 무더위 속에 깊이 침잠한 산사의 고즈넉함이 매미소리 때문에 생경하다.

호숫가 도로에 내려서니 시간은 어느새 오후 다섯 시를 넘기고 있었다. 간식을 충분히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배가 출출하게 고파온다. 지친 다리를 끌며 부지런히 걸었다. 의암 댐 건너편에 음식점 간판이 바라보인다. 무작정 그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다리를 건너자마자 시내버스 한 대가 다가온다. 그런데 이 버스의 코스표시판에 강촌역이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버스에 올라탔다. 일단 강촌역으로 가서 식사를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연락을 하시지 그랬어요. 전화만 주시면 등선폭포까지 태워다 드리고, 또 다시 모셔오는데. 자 이쪽으로 오세요."

강촌역 근처에 있는 춘천막국수 집이었다. 식당 안에는 그렇게 이 식당에서 제공하는 차를 이용하여 편하게 삼악산을 등산하고 돌아온 몇 사람의 등산객들이 시끌벅적 음식을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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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 안주에 보드카 한 잔 크아! ⓒ 이승철

"에이! 오늘 우리 팀은 대장을 잘못 만나 고생만 된통 했구먼, 허허허."

가장 힘들어하던 일행이 내게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런 정보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일행들 누구에게도 없었는걸.

"자! 우선 시원한 맥주 좀 주십시오, 그리고 술은 우리들이 가지고 온 걸로 마시겠습니다. 괜찮겠죠?"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춘천 막국수에 닭갈비. 그리고 술은 러시아를 여행하고 돌아온 친구가 가져온 러시아산 보드카였다.

"크아! 술맛 정말 좋다. 역시 힘들게 한 산행이 밥맛도 술맛도 더 좋게 한다니까."

무엇보다도 등산초입에 가슴이 아프다고 하여 걱정했던 친구가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 모두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리고 모처럼 승용차가 아닌 열차를 타고 등산에 나선 것도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삼악산 #춘천 #강촌 #소나무 #등선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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