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사만화를 홀대한다고 했나?

[지역언론 별곡-201] 새로운 활로 고민하는 시사만화계

등록 2007.07.21 14:52수정 2007.07.2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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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신디케이트를 이루기로 한 것일까, 시각이 동일점에 이른 것일까.

20일 전국 각 지역 일간지들의 시사만화가 예사롭지 않다. 각 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의 1칸 만평에 담긴 주인공과 만평의 성격, 화백의 태도가 꼭 같다. 시사만화에 대한 논의와 연구의 필요성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중앙이든 지역이든 만화와 만평은 19일 오전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검증청문회를 주목했다. 청문회에 출석한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긍정적인 모습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대부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서울과 지역 만평소재가 모두 같다?

20일 경향신문 만평(좌)/서울신문 만평(우) ⓒ 경향신문/서울신문

풀리지 않은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관련기사를 심층적으로 싣지 않은 지역 일간지들조차 만평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명박, 박근혜 두 대선후보의 검증청문회를 주제로 다뤘다. 그것도 매우 강도 높은 비판적 견지였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랬을까.

경비절감을 이유로 4칸 만화를 줄이거나 화백이 신문사를 떠나도 채용을 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 때문일까. 지역 일간지 시사만화를 그리고 있는 화백들이 신디케이트를 구축해 새로운 권력을 견제하기로 작정한 느낌마저 준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중 1칸 만평을 게재하고 있는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국일보>, <한겨레신문>은 이날 두 후보의 청문회 발언내용과 표정을 한 컷의 만평에서 해학적으로 꼬집었다. 이 중 <경향>의 개그 프로그램에 비유한 ‘그림마당’은 한 편의 코디미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보수신문들은 이날도 달랐다. <조선일보>는 이날 만평에서 유학과 교육문제를 주제로 그렸다. <중앙일보>는 화백의 휴가로 만평을 게재하지 않았다. 또 <동아일보>는 1칸 만평 대신 4칸 만화에서 검증청문회를 주제로 다뤘으나, 노대통령의 쓴 소리(소감)에 오히려 무게를 실었다.

지역 일간지들의 만평이 오히려 돋보일 수 있는 빌미를 준 대목이다. 이날 1칸 만평을 게재하고 있는 대부분 지역 일간지들은 풍자와 희화가 다양했다. 발칙한 상상력도 드러냈지만 공통된 주제가 중앙의 정치무대란 점이 특이하다.

조중동보다 강한 지역일간지 만평 메시지

강원일보 20일자 만평(좌)/20일자 경기일보 만평(우) ⓒ 강원일보/경기일보


강원지역에서는 두 일간지가 만평을 매일 게재한다. <강원일보>와 <강원도민일보>는 이날 만평에서 다소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본게임은 이제부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강원일보> 만평의 의제는 기사와 해설, 사설 등의 논조보다 강렬하다. 두 후보가 ‘모든 의혹 해소’라는 푯말을 비춰 보이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임을 알리는 의미전달이 독창적이다.

경기지역에서 발행되는 <경기일보>와 <경인일보>도 만평에서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날 <경기> 만평의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를 건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검증청문회의 개운치 않은 여백을 드러낸다. <경인>도 만평에서 ‘혹시나?...역시나!!’의 제목처럼 해명성 청문회였다는 표정을 한 컷의 그림으로 꼬집었다. 주제는 같으나 표현과 전달방법이 다르다.

충청투데이 20일자 만평(좌)/국제신문 20일자 만평(우) ⓒ 충청투데이/국제신문


충청지역에서는 <충청투데이>의 만평이 제목부터가 압권이다. ‘무르팍 도사’란 제목을 붙인 이 만평은 한나라당 두 대선후보를 앉혀 놓고 해명과 면죄를 팍팍 불어 넣는 무르팍 도사를 그렸다. 가십과 기사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시사만평에서만 다룰 수 있는 유일한 풍자기법이다. <중도일보>도 만평 ‘중도카툰’에서 두 후보의 의혹을 풍선에 비유했다.

영남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국제신문>은 이날 만평에서 '검증청문회'란 칠판을 아무리 지워도 남는 건 ‘의혹’이라는 익살스런 그림을 실었다. <영남일보>도 만평에서 ‘검증위=호랑이, 해명위=고양이’를 표현한 그림에서 검증청문회를 꼬집었다.

<매일신문>과 <경북일보>는 1칸 만평 대신 이날 4칸 만화에서 이 문제를 주제로 다뤘다. <경북>은 특히 만화에서 ‘아니다’, ‘없다’로 끝난 청문회장 이면에서 ‘사각사각’ 칼을 닦고 있는 검찰의 모습을 그려 섬뜩한 느낌을 준다.

풍자와 해학의 눈으로 보는 진실은 뭘까?

새전북신문 20일자 만평(좌)/20일 전라일보 만평(우). ⓒ 새전북신문/전라일보


호남지역 일간지들도 이날 만평에서 전날 한나라당의 검증청문회를 풍자적으로 비판했다. <광주일보>가 두 후보 청문회를 주제로 한 이날 만평에서 큰 수박을 놓고 혀로 핥기만 하는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려 시선을 끌었다.

<새전북신문>은 무의미한 청문회를 주제로 한 만평에서 두 후보가 나란히 마이크 앞에 서서 ‘하나마나 송’을 부르는 모습을 코믹하게 풍자했다. 전북지역에서 유일하게 1칸 만평과 4칸 만화를 모두 다루고 있는 <전라일보>도 빠지지 않았다. 이날 ‘전라만평’은 해명청문회란 매트리스를 깔아 놓은 자리에서 두 후보가 “실컷 놀아보자”며 뛰는 모습은 해학과 비판이 어우러졌다.

이처럼 어느 시사만화든 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유전자가 흐르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특이한 현상은 풍자나 희화화를 통해 새로운 권력들을 조롱하고 견제하고 비판하는 시사만화들이 중앙보다 지역에서, 기사와 사설에 앞서고 있다.

전 기자협회보 편집국장을 지낸 김진수씨(코카뉴스 이사)는 최근 <신문과 방송> 7월호에서 시사만화의 과거를 이렇게 진단했다. “한국의 역대 독재자들은 자신들을 풍자하고, 가끔은 조롱도 하는 시사만화를 예외 없이 싫어했다. 그 결과 시사만화와 화백에 대한 정치권력의 탄압과 회유도 극심했다”면서 그는 한국형 시사만화 신디케이트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들어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신문의 필수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인 시사만화가 없는 비정상적인 신문이 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사만화 홀대현상을 사회의 민주화와 경비절감을 이유로 내세웠다. 민주화가 시사만화를 재미없게 만든다든지, 일부 지역 일간지들은 화백이 떠나가도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채용을 하지 않거나 줄인다는 얘기다.

"시사만화 홀대, 대책은 한국형 신디케이트 구축"

실제로 그러한 현상은 지역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회사 측과의 갈등은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홀대요인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서울의 11개 일간지 가운데 1칸과 4칸 만화를 모두 게재하는 곳은 <경향신문>과 <서울신문> 뿐인 이유는 이와 무관치 않다. 수십 년 이어져 오던 만평과 만화들이 지면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형국이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지역을 보자. 1칸 만평과 4칸 만화를 모두 게재하는 일간지는 <강원도민일보>, <강원일보>, <광주매일>, <광주일보>, <대한일보>, <무등일보>, <경북일보>, <경북도민일보>, <대구신문>, <매일신문>, <영남일보>, <대전일보>, <중도일보>, <경남신문>, <경인일보>, <전라일보> 등 18개 사에 달한다. 전체 지역일간지(69개, 2007월 6월 기준)에 비하면 26%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지역의 시사만화 환경이 중앙에 비해 좋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중앙과는 차원이 다른 경영악화와 경비절감이 항상 주변을 맴돌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지역의 많은 화백들은 짐을 쌀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제든지 회사와 불편한 관계에 놓이면 그들은 말없이 떠나곤 한다.

화백, 만평기자, 삽화가, 작가...

이름은 하나지만 그들의 호칭은 다양하다. 신문사 내에서조차 부르는 사람 마음대로다. 오래된 화백들은 부장 또는 그 이상의 호칭도 더러 있다. 엄밀히 부르자면 ‘화백’ 또는 ‘만평기자’가 옳은 표현이다. ‘삽화가’라는 표현은 가급적 면전에선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남의 주장을 표현하거나 소속사에 따라 논조가 밥 먹듯 달라지는 이들을 업계에서는 ‘삽화가’로 지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만큼 머릿속에 고뇌를 가득 짊어지고 사는 이들도 드물다. 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에 육필 등의 수동적 작업을 통해 경험을 자기의 것으로 육화하여 작품 하나하나를 매일 데드라인 안에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메시지를 가로 세로 각각 10센티 가량의 조그만 공간에 함축해 담아내는 시사만화. 홀대만 있고 대책은 없어서 일까. 그들은 어느새 자신들조차 모르게 신디케이트를 구성하고 있었다. 20일자 조간에서 묻어난다.
#시사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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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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