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킹의 제국

등록 2007.06.17 10:44수정 2007.06.1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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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변두리의 나이트클럽에서 발견되었다. 본격적인 프로작가를 표방하며 늘 만나는 문우(文友)들과 소주를 나눈 다음 헤어졌던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생소하고 시끄러운 음악에 버무려진 젊은이들이 미친 것처럼 날뛰는 이곳은 소주와 삼겹살 취향의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나이트클럽에서 양주와 과일 안주를 즐길 돈이 있다면 호프집이나 포장마차에서 주갈(酒渴)을 해결하고 아이들 먹일 치킨을 들고 가는 게 정상이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그렇게 행동했었고 실직자가 된 이후에는 더욱 주의해서 처신했는데 그날은 늘 가던 길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탈의 원인은 친구였다. 충분히 취하지 못한 귀가 길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는 신용불량자가 복권에 맞은 것만큼이나 반가웠다. 다시 소주를 얻어먹은 다음 어쩌고저쩌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거의 10여년만에 들어간 나이트 - 나이트라고 해야 맛이 난다 - 는 내가 청년이었던 80년대와는 많이 달랐다.

즐길 장소가 그리 많지 않았던 80년대의 나이트는 정말이지 환상적인 곳이었다. 미드나이트와 올 나이트로 구분되는 그곳에서는 피끓는 젊은이들이 미친 듯 몸을 부비며 밤을 소비했다. 맥주도 기본만 시키면 그만이었고 어차피 비슷비슷한 처지여서 굳이 눈치 볼 것도 없었다.

절정기가 지난 가수들과 동남아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귀국했다는 생소한 명칭의 그룹사운드와 여성보컬 팀의 연주와 춤에 만족해야 했지만 거기서 흘리는 땀은 찰지고 건강했다. '나 어떡해', '그대로 그렇게' 등의 '명곡'이 나오면 모두가 함께 열창했다. 가슴 떨리던 블루스타임의 흥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90년대의 나이트 문화 가운데 특징적인 것은 아무래도 '러시아 무용수'일 것 같다. 성인용 잡지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몸매에 눈부시게 밝은 피부의 그녀들의 춤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거의 벗은 차림의 그녀들이 알맞게 풍만한 가슴과 히프를 흔들며 도발적인 춤을 선보일 때면 등신대의 바비 인형들이 비키니를 걸치고 춤추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저런 여자들을 가져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눈부신 몸매의 그녀들을 바라보며 마시는 술은 주로 양주였다. 그때는 간혹 양주를 마실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니까.

최근에 들어갔던 나이트는 80년대와는 많이 달랐지만 90년대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앉아 러시아 아가씨들의 춤을 안주삼아 양주를 비웠다. 아마 석잔쯤 비웠을 무렵 웨이터가 어떤 여자를 데리고 오더니 내 옆에 앉히는 것이 아닌가?

어느 틈에 친구 옆에도 여자가 앉아 있었다. 이게 소위 부킹이라는 것인가, 아무튼 그렇게 되었으니 상황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양주를 한잔 권한 다음 흘긋 바라보니 제법 얼굴과 몸매를 갖춘 아줌마였다. 여자가 자연스럽게 담배를 꺼내 물자 얼결에 불까지 붙여주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끔씩 나이트를 나온다고 말한 여자가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친구가 '아주 잘 나가는 작가 선생님'이라고 소개하자 못 믿겠다는 눈치가 역력 - 사실이 그렇지만 - 했다.

잠시 후 시작된 블루스타임에 친구는 여자를 데리고 플로어에 나갔다. 플로어는 교미하는 뱀처럼 비비꼬는 남녀들로 그득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합류하지 않았다.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밖으로 나가 쉽게 동침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결혼 이후 17년에 이르도록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와 동침하지 않았던 기록을 깰 수는 없었다. 내가 나에게 요구한 그 기록은 죽을 때까지 유지되어야만 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술만 마시자 여자는 왔을 때처럼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잠시 후 다른 여자를 데리고 온 웨이터에게 버럭 화를 낸 다음 밖으로 나갔다. 나이트에서 거래되는 것은 건강한 춤과 음악이 아니라 추잡한 섹스의 전단계일 뿐이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서 있는 동안에도 가관이 연출되었다. 비틀거리며 모텔로 들어가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아예 들쳐 업고 가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왜 저들은 섹스에 탐닉하는 것인가?

그 여자의 말대로 낮선 사람과 베드에서 질펀하게 나뒹굴면 스트레스가 후련하게 풀리게 될까? 그것은 가장 저급한 형태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 여자는 자식들에게 그런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라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 여자가 원하던 것을 남편이 알았다가는 이혼사유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나 같으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는커녕, 비밀을 유지하느라 머리카락이 빠질 것 같다. 게다가 거기에 소모되는 비용도 결코 적지 않다. 기본적으로 양주를 시키고 모텔비까지 계산해야 하는데, 그 돈은 누가 공짜로 집어주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배우자가 없는 남녀라고 해도 보편적 가치관에서 이탈하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특히 여자의 경우는 더욱 몸가축에 주의해야 하는데도 이미 부킹이 하나의 코드로 통하고 있으니 참으로 암담한 현실이다.

택시를 잡아타고 섹스에 함몰되는 거리를 빠르게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쓰게 웃었다. 처음 내 옆에 앉은 여자와 두 번째 데리고 온 여자가 적지 않게 나이를 먹었다는데 생각이 닿았던 때문이다. 그 바닥의 전문가인 웨이터가 알아서 맺어 주었을 것을 감안하면 나도 유통기한이 다 된 폐품에 가까운 신세라는 결론이다.

스스로는 그렇게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내가 그녀들을 퇴짜 놓은 것은 나이가 많았던 이유라고 애써 자위했다. 부킹이 만연하고 누구나 섹스를 구매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노무현 탓이라며 언성을 높이는 운전기사의 말에 다시 한 번 쓰게 웃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부킹 #나이트클럽 #아줌마 #스트레스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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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 출판을 목표로 하는 재야사학자 겸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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