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룡은 조선 최고의 재상이었다!

역사를 새롭게 보게 하는 책, 이덕일의 <유성룡>

등록 2007.06.14 11:01수정 2007.06.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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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 겉표지 ⓒ 역사의아침

<사도세자의 고백>, <조선왕 독살 사건>, <조선 선비 살해사건> 등으로 조선의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내는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줬던 이덕일이 이번에는 '유성룡'을 주목했다. 그가 유성룡을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에도 주목할 만한 설득과 통합의 리더로서의 자질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지도상'을 역사 속의 그가 보여줬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말을 쉽게 믿기는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유성룡에 대한 기억은 상당히 파편적이다. 이순신의 친구로서 끝까지 신의를 지켰다는 사실과 이이가 전쟁을 대비해 10만 군사를 모아야 한다고 했을 때 반대했다는 사실 정도가 그나마 유명한 일화다. 왜 그런 것일까? 전쟁이라는 상황 때문에 명장들이 영광을 차지한 탓도 있지만 이항복이나 광해군, 허준 등 유명인사들이 동시대 인물인 탓도 있다. 그런 탓에 이덕일의 평가가 과장된 칭찬으로 들릴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엄밀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근거 자료를 봐야 한다. 바로 이덕일이 그렇게 평가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면 되는 것이다. 이덕일은 어떤 것으로 그를 추켜세우는 것일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나라가 위기에 닥쳤을 때, 재상으로서 나라를 추스르는데 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도성을 허무하게 내준 선조는 아예 명나라로 도망치려고 했었다. 신하들도 그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패전의 분위기가 그만큼 팽배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를 반대한 이가 유성룡이다. 유성룡은 선조와 신하들을 설득해 남아 있도록 만들었다. 유성룡이 설득한 것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돕기 위해 왔지만, 사실상 나라를 갈기갈기 찢으려 했던 명나라 장수들과 명나라 조정을 설득한 것도 유성룡이었다. 뿐만 아니라, 후세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라가 어려울 때 노비들을 양민으로 만들려고 했고, 사대부들에게도 병역 의무를 주려고 했던 이가 유성룡이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조선은 철저하게 성리학을 추구했다. 또한 사대부의 나라였다. 그런 탓에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쑥밭이 됐음에도 노비를 내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가서 싸우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양반들이었고 또한 그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유성룡은 이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노비가 많아지면 양민이 줄어들기에 세금을 걷는 것도 어렵고 군력을 키우기도 어렵다는 것을, 지금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생각지 않았던 것을 깨달은 것이다.

유성룡은 깨달은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 했다. 사대부들의 반발이 거셌던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나라가 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들은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했다. 이에 유성룡은 강력하게 정책을 추진했다. 앞서 설득하는 부드러움을 지녔다면 소신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단호함까지 지녔던 것이다. 유성룡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전쟁을 준비했던 것은 어떨까? 지도자는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을 최소한의 피해로서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위기를 먼저 감지해서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 또한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인데 유성룡은 그것 또한 훌륭했다. 단적인 예가 바로 이순신을 세상에 내세운 것이다. 위기가 닥쳐올 것을 알고 인재를 등용해 그것에 대비한 모습은 누가 뭐라 해도 유성룡의 장점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면 이이가 주장한 10만 양병을 반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덕일은 이것 자체가 잘못된 사실이라고 못을 박는다. 오히려 이이가 10만 양병을 주장했던 것도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이의 상소문에 그것을 운운한 것이 없을뿐더러 다른 내용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덕일은 다른 이가 10만 양병을 주장했다면 '지금 백성 생활이 도탄에 빠졌는데 무슨 여력으로 10만 병사를 기르겠는가'라고 반대할 선비가 이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런 내용이 후세에 알려진 것일까? 이덕일은 조작을 이야기한다. 십만양병설의 근거를 제시한 김장생은 "반대 당파의 인물들에 대한 악의적 창작을 일삼았다"는 것이 이덕일의 말이다. 마땅히 김장생의 글을 검증해야 하는데 노론이 계속 집권하면서 그런 일조차 없었고 결국 사실처럼 굳어졌다는 말인 셈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되는데 근거 자료를 보건데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처럼 이덕일의 <유성룡>은 모르고 있던, 혹은 잘못 알고 있던 많은 것들을 짚어주고 있다. 유성룡이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겸비해 나라를 구했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늘날에도 주목할 만한 지도자상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내용으로 보건데 <유성룡>은 그 주인공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책으로 충분하다. 더불어 유성룡을 주목한 만큼 임진왜란 전후의 상황을 바라보게 해주기도 한다. 역사를 엿보게 해주는 책으로써 그 즐거움이 풍성하다.

유성룡 - 설득과 통합의 리더

이덕일 지음,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2007


#유성룡 #이덕일 #재상 #10만 양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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