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청와대는 밤 10시 이후가 중요하다"

연세대 특강으로 첫 공개활동... 참여정부에 '쓴소리'

등록 2007.06.12 09:30수정 2007.06.12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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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 12일 오후 2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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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김대중 전 대통령(DJ) 비서실장. ⓒ 오마이뉴스 강성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통하는 박지원 비서실장이 11일 국민의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 재임 경험을 토대로 노무현 정부의 참모진, 언론정책, 선거중립 위반 논란 등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박 실장은 이날 저녁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최평길 교수의 '대통령학' 과정을 듣는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비서실장론' 특강을 했다. 박 실장이 외부 공개활동에 나선 것은 2002년 2월 국민의 정부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지 4년여만에 처음이다. 그는 퇴임 직후 대북송금 특검 및 현대 비자금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으나 2년여 동안의 법정 투쟁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그 때문인지 박 실장은 스스로 '5년만의 외출'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부자유스러웠던 기간이 길어서인지 아직도 이런 외출이 합법적인지 불법적인지 모를 때도 있지만 설레이는 것만은 분명하다"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박 실장에게 자신의 강좌의 '종강 특강'을 요청한 최평길 교수도 "(대학에서) 복권이 안된 정치인을 특강에 초청한 것도 이례적이다"면서 의미를 부여했다.

"DJ 신문-보고서 탐독, YS 특정인 면담, 노 대통령 인터넷"

박 실장은 먼저 "대통령의 비서는 정치인이 아니고 비서일뿐으로, 정치적 입은 없다"고 전제하고 "비서실은 정책의 결정기관도 집행기관도 아니다, 비서실은 대통령님을 보좌하는 기관일 뿐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총리를 중심으로 한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네 곳으로 분할하여 토론하게 하고 최종적으로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비서실은 토론에 참여하여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고 각 부처의 업무를 조정하여 사전에 대통령께 보고함으로써 대통령이 국정을 파악하고 장악하도록 하는 대통령 참모기능으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박 실장은 이어 "대통령께 국민의 소리를 가감없이 보고하는 비서실의 기능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면서 국민의 정부 시절의 경험을 통해 우회적으로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비서실장 시절에) 흔히들 대통령께 신문도 방송도 보시지 않는 게 도움이 된다는 충고를 했다"면서 "그러나 국민정서와 국정운영에 대해서 언론만큼 정확하게 지적하는 기관도 현재로서는 없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박 실장은 특히 "대통령의 밤 10시 이후 일정관리가 (국정운영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관저에서 텔레비전 9시 뉴스를 시청하고 10시 경부터는 신문과 보고서를 탐독했다"면서 "반면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10시부터 알려진 대로 특정인과 대화를 하셨고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인터넷을 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꼬집어 말했다.

"대통령께서 취침 시간까지 무엇을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

그는 "청와대는 밤 10시부터는 절해의 고도처럼 느껴지고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면서 "이 때 대통령께서 밤 12시 취침시간까지 무엇을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옳지 않은 사람을 만나 좋지 않은 보고를 받으면 국정난맥이 초래될 수 있다"면서 "오히려 충고되는 언론과 국정보고서를 대하시면 바른 국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이) 만약 인터넷상에 '악플'이라도 읽게 되면 스스로 화나는 일도 발생하리라 생각된다"면서 "현 정부의 그럴만한 분들에게 대통령의 밤 10시부터 12시까지를 효과적으로 지내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라고 충고도 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국정운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언론의 비판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해선 안된다"고 전제하고 "그렇다고 해서 국민의 정부 5년간 언론으로부터 결코 후한 점수를 받은 것도 아니지만 어차피 국정은 국민에게 전달되어야 되고 전달매체는 언론이기에 참으로 열심히 했다"면서 '언론과의 꾸준한 접촉'을 강조했다.

그는 "때로는 언론의 가혹한 비판에 원망도 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고 넘어야 할 사항이었지 결코 무시하거나 회피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면서 인천국제공항 개항 및 2002년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언론의 '뭇매'를 맞은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언론의 비판을 감내하는) 경지를 넘어야 정치를 할 수 있고 국정을 이끌 수 있다"고 훈수했다.

박 실장은 비서실의 구성에 대해서는 "시민사회, 학계, 정·관 출신 등을 조화롭게 함으로써 다양한 국민의 소리를 담아낼 수 있으며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믿는다"면서도 "그러나 여기에 대통령님의 측근도 반드시 포함되는 것이 효율성 면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측근은 대통령의 입을 때로는 손으로 막고, 차앞에 드러눕는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수석이나 장관들이 말씀드리지 못하는 내용을 가감없이 보고하는 운명공동체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측근 참모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비서실의 조정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총리실과 협조하여 국무조정실에서의 국정조정업무는 국민의 정부의 자랑이라고 믿는다"면서 "사실 나쁜 정책보다도 일관성없는 정책이 더 나쁜 정책이며 혼선을 가져오는 것은 더 나쁜 결과로 귀착된다는 것을 경험하였다"고 소개했다.

박 실장은 때로는 참여정부를 변호하면서 참여정부가 처한 어려움의 상당 부분이 언론이라는 창을 통한 국민과의 소통 부재에 있음을 충고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 (참여정부를) 좌파 정권이라고 비판하지만 좌파정권이 나쁜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고 "미국 민주당 정강 정책과 참여정부 정강정책을 비교하면 민주당이 참여정부보다 훨씬 더 좌파다"면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국정이 아무리 효과적으로 집행됐다 하더라도 국민에게 알리고 충고도 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 덕목으로는 '철학적 사고와 종합적 판단력' 중요"

박 실장은 이어 "대통령 임기말은 대선의 해"임을 강조하며 "저는 김대중 대통령의 명을 받아 정치적 중립 입장을 수차례 천명했으며 우리 스스로 '정치적 식물인간'을 자처하면서 '정치 뚝, 경제 올인'의 자세로 청와대 비서실의 대선 개입 문제를 차단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대통령의 덕목을 묻는 질문에는 '철학적 사고와 종합적 판단력'을 강조했다. 그리고 단임제 대통령의 레임덕 방지책을 묻는 학생들의 질문에는 "레임덕은 4년 중임제 하면 없어질 것 같지만 어차피 있다"면서 '재벌은 형제가 원수이고 권력은 측근이 원수'라는 세간의 말을 소개하며 "대통령이 확고한 리더십을 갖고 권한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국정 중심에 서야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면 난맥이 온다"고 훈수했다.

박 실장은 "비서실은 대선 후 차기정부와의 인수인계를 위해서도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언론이 '박지원 실장의 마지막 잎새론'이라고 명명한 2003년 2월초 청와대비서실 마지막 조회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강연을 마쳤다.

"나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풍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단풍은 아름다움으로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행복을 줍니다. 이제 단풍은 낙엽으로 떨어져 차기 노무현 정부의 밑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남은 마지막 잎새, 21일간 단풍의 역할에서 낙엽의 역할로 최선을 다합시다.

우리는 승자입니다. 승자는 눈이 오면 눈을 치우면서 앞으로 가고 패자는 눈이 녹기만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남은 21일 동안 우리 국민의 정부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눈을 치우면서 앞으로 나아갑시다.

5년 동안 우리는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도 성공한다는 신념 속에서 열심히 일해왔습니다. 그 결과 IMF 경제파탄을 극복하고 신용등급 F학점에서 A학점으로, 외환보유고 39억불에서 1230억불을 만들었고, 한반도 전쟁위험이 사라지고 남북화해와 민주인권국가, 생산적 복지국가 그리고 세계적 IT강국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우리는 성공한 정권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잘 마무리해서 노무현 당선자와 인수위에 인계해줍시다. 이제 마지막 잎새는 21일 남았습니다."


박지원의 '마지막 잎새론'과 참여정부의 '유종의 미'

자신의 '마지막 잎새론'은 '유종의 미'를 거워야 하는 참여정부에도 유용하다는 메시지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쓴소리'뿐만 아니라 '덕담'도 했다.

"(참여정부에) 남은 9개월은 엄청 긴 세월이다. 감옥에 가서 9개월만 살아봐라. 얼마나 긴지 알 수 있다. (참여정부는) 남은 기간에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그는 지난 2월 사면되었으나 복권은 안 되었다. 그 때문인지 그는 "지금도 저는 어떤 의미에서 반쪽짜리 국민이다"고 표현했다. 그는 "정치인의 사면복권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게 관행이고 같은 대북송금특검 관계자들의 경우, 지난 2004년 8·15때 이미 사면복권이 모두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납득하기 어렵지만 오직 저만 사면만 되고 복권이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실상 식물정치인으로 조용히 지내고 있다"면서 "'노무현 정권 4년반이 박지원 징역 4년반'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해 '미복권'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이날 특강에는 부인 이선자씨와 미국 유학 후 최근 귀국한 딸 혜연씨도 참석해 강연을 지켜봤다.

덧붙이는 글 |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 제목의 박지원 비서실장 강연원고 전문은 최근 개설된 김대중평화센터 홈페이지(www.kdjpeace.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 제목의 박지원 비서실장 강연원고 전문은 최근 개설된 김대중평화센터 홈페이지(www.kdjpeace.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박지원 #대통령학 #비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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