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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도시, 홍콩에 관한 핏빛 은유

[리뷰] 유위강· 맥조휘 감독의 <상성:상처받은 도시>

07.05.31 12:23최종업데이트07.05.3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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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어떤 도시일까. 프루스트 챈 감독은 1997년작 <메이드 인 홍콩>에서 중국에 반환되기 이전의 홍콩을, 거대한 마천루 사이에서 살아가는 희망없는 청춘들의 눈으로 보여줬다.

높은 빌딩숲은 아득하기만 했고 그것은 어쩐지 오르지 못할 나무처럼 느껴졌다. 스무살의 차우(이찬삼)와 아롱이 돌아다닌 것은 홍콩의 구석진 골목이었다. 그 속에 방황과 가난함의 미학이 있었다.

1997년 중국 반환 이후, 홍콩에는 본토인들이 늘어갔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그것은 영화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2003년 이 도시를 휩쓸은 전염병은 도시 자체를 혼란 속에 빠뜨렸다. 유위강, 맥조휘 감독이 보기에 그것은 무간지옥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았다.

홍콩, 슬픔에 잠긴 사람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상성>은 <무간도> 시리즈를 마친후 <이니셜D>와 <데이지>를 돌아 다시 돌아온 유위강, 맥조휘 감독이 보는 홍콩이다. 그들은 더 이상 뒷골목이 아니라 마천루 위에서, 혹은 공중에서 홍콩을 내려다본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바삐 오가는 사람들. 그 속에 흐르는 하나의 기류, 혹은 어떤 고독을 본다.

<상성>은 홍콩에 관한 영화다. 마치 마이클 만의 영화처럼 프레임마다 도시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은 대리석의 차가운 질감이 아니다. 홍콩을 오가는 인물들은 훨씬 감상적이며 감성이 풍부하고 깊다. 양조위가 연기하는 유정희와 금성무의 아방 역시 홍콩의 화려하고도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어느 새해 맞이 파티. 연인에 대한 고민에 빠진 젊은 형사 아방은 유정희 반장에게 고민을 털어 놓는다. 둘은 동료 형사의 관계 이상의 친밀감을 갖고 있다. 지적이면서도 차가워 보이는 유정희는 아방에게 위스키의 쓴맛에 관해 말해준다.

그의 얼굴은 아무런 상처도 없는 사람처럼 평온하기만 하다. 그런데 여자를 잔인하게 폭행한 범인의 검거 현장에서 유정희는 무섭게 돌변한다. 그리고 법의 심판보다 먼저 자신이 폭력으로 범인을 심판한다.

아방은 여자친구의 자살을 계기로 경찰을 떠난다. 3년 후 술꾼이 된 아방은 탐정으로 직업을 바꾸고,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유정희와 그의 아내인 숙진(서정뢰)을 자주 만난다. 그러던 어느날 숙진의 아버지가 살해되고, 경찰은 막대한 재산을 노린 강도의 짓으로 결론을 짓지만 어쩐지 석연치 않다.

경찰의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는 숙진은 아방에게 재조사 해줄 것을 의뢰한다. 그리고 사건을 더듬던 아방은 사건의 중심에 유정희가 있음을 알고 갈등한다.

증거보다 감정을 따르는 스릴러

▲ 양조위가 연기한 유정희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범인이 유정희인 것은 스포일러가 아니다. 유위강, 맥조휘 감독은 초반 유정희 장인의 살해장면에서 유정희의 얼굴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중요한 것은 '누가'가 아니라 '왜'이다. 스릴러로서의 긴장보다는 가해자와 그를 쫓는 자의 감정선을 우선시한다. 중견 경찰 간부인 유정희가 왜 장인을 죽였을까. 아니, 왜 그래야만 했을까.

처음으로 악역을 맡은 양조위는 그런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혹은, 이 사람은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영화의 긴장은 유정희와 절친한 아방이 사건을 거슬러 오르면서 유정희의 과거와 마주치는 순간에 최고조에 오른다.

아방은 숙진에게, 그리고 유정희에게 이제 어떤 말을 할 것인가. 누구보다도 큰 상처를 입은 아방은 유정희의 숨겨진 상처 앞에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비밀을 숨겨야 하는 유졍희와 비밀을 캐려는 아방. 친구이면서 동시에 적인 이들의 위태로운 관계는 홍콩의 밤거리가 주는 혼란스러움과 맞닿아 있다. 이제 홍콩영화는 더 이상 '의리'를 강조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은 슬픔에 잠겨 있을 뿐이다.

술집에서 만난 펑(서기)만이 아방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지만 이들의 앞날이 행복하기만 할 거라는 예감이 들지 않는 것은 상처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상성>은 <무간도>로 홍콩 영화의 부활을 알린 유위강, 맥조휘 감독의 작품이지만, 그 연장 선상에 놓여 있는 작품은 아니다. <무간도>의 시간이 꽉 짜인 구조와 긴장으로 점철되었다면, <상성>은 맥이 풀린 시간 속에 상처를 응시하는 어떤 나른함과 고요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것이 <상성>의 단점으로 부각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성>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기도 하다.
2007-05-31 12:23 ⓒ 2007 OhmyNews
양조위 금성무 상성 유위강 맥조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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