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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 대처하는 그 남자들의 도시

[리뷰] <상성>, <중경삼림>에 대한 이 시대의 '헌사'는 아닐까?

07.05.31 08:21최종업데이트07.05.31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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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 전성기, 최고조, 부활. 인간의 일생이든, 세상의 다양한 분야든, 한 번쯤은 맞이하는 순간일 것이다.

뭐든 꾸준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운'이라는 불가항력의 상황에 따라 일의 성패가 좌우될 때도 있으며, 주변의 상황이 그 꾸준한 노력을 빛낼 수도, 아니면 무너뜨릴 수도 있다.

달도 차면 기운다. 밤하늘 한가운데에 뾰족한 흔적만을 내비치며 뭔가 위기에 몰려있는 듯한 초승달이지만, 곧 다시 꽉 찰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반면에, 최고조에 다다르며 환한 빛을 내뿜는 보름달이지만, 이제 곧 기울어질 것이라는 정해진 운명과 아쉬움도 있다.

인간의 일생, 세상사의 이치도 그렇다. '부활'이라는 단어가 인간의 삶에 큰 의미를 갖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 '부활'이라는 단어가 제대로 어울리는 <무간도> 시리즈, 우리는 그 작품에 얼마나 환호했던가. <무간도>는, 타락한 제작시스템 탓에 무너져가던 홍콩영화의 '부활'을 이끌어낸 작품이었다.

철저할 정도로 절제된 분위기, 한 치의 오남용도 용납하지 않았던 컷, 그속에서 표현되는 유덕화와 양조위의 그윽한 눈빛과 연기, 황추생과 증지위의 날카로운 위압감.

몰락해가는 홍콩영화에 큰 실망을 느꼈기에, 두 배는 더 반가웠을 작품이었다. 유위강, 맥조휘라는 감독 콤비가 새삼 우리의 눈에 들어왔던 결정적인 계기였다.

결국 <무간도>는 '부활'의 의미가 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활'도 때로는 독이 된다. 인간의 욕심이란 원래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눈도 다르지 않다. 괜찮은 작품을 보면, 그 작품을 완성한 이에게 더 높은 기대를 걸게 되면서 어지간한 작품을 연출하면 '실망'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무간도>는 유위강, 맥조휘 콤비에게는 '영광'이었지만, '부담'이기도 했을 것이다. <무간도> 이후 섣부르게 영화화한 <이니셜 D>는, 원작만화 마니아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욕을 푸짐하게 먹었던가.

<상성>, <무간도>의 선입견을 극복할 수 있을까?

▲ <상성>, 2007년 홍콩금장상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했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상성>, '상처받은 도시'란다. 도시는 욕망의 낙원,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는 '홍콩'을 의미하는 제목일 것이다. 욕망의 낙원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수많은 상처를 주고 받는 곳, 그리고 그 상처를 지우지 못해 방황하며 쓸쓸히 죽어가는 곳.

특히나 그들에게는 '홍콩'이 갖는 정치적인 의미도 아픔으로 와닿는다. 왕년에 나온 홍콩영화 속의 '홍콩' 역시, 스스로의 의지와는 무관한 정치적인 격변이 젊은이들에게 은유적인 아픔으로 와닿는 곳이었다.

특히나 서극이 손댔던 <영웅본색3>이 그랬으며, 왕가위의 <타락천사> 등의 작품이 그랬다.

'홍콩'을 떠나야만 하기에 그려질 수 있는 비장함, '홍콩'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는 잃어버림과 아쉬움. 글쓴이 개인적으로는 <상성>에서도 그런 이미지를 느낀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지만, 그 정서는 쉽게 버리기 어려웠을 수도 있으니까.

<상성>은 두 경찰의 가슴 속에 있는 '상처'에 관한 이야기다. 애인을 잃고 방황하는 '아방(금성무)'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는 것 같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장인을 무참하게 죽이는 '류정희(양조위)', '류정희'에게도 상처는 있을 것이다.

두 사내가 같이 한 영화에 같이 출연한 작품으로는 역시 <중경삼림>이 눈에 선한데, 글쓴이의 판단으로 봤을 때, <상성>은 <중경삼림>에 보내는 유위강·맥조휘 콤비의 헌사로 보인다.

<중경삼림>에서는 두 사내가 이별을 겪은 경찰이었다. <상성>의 소재도 자세히 뜯어보면 그와 비슷하다. 단지, 양조위가 모처럼 악역을 맡으면서, 캐릭터까지 변주됐을 뿐이다.

<상성>에는 <무간도>와 같은 감각적인 자극은 없다. 줄거리 역시 "헐거워졌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간결하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추구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언제나 마이클 만의 영상을 주목하는 듯하던 유위강 특유의 화면구도는 여전히 돋보이지만, 양조위의 악역 변신과 함께 우직하게 구성된다.

감독 콤비가 선택한 것은 '우직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무간도>로부터 벗어나고픈 무의식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영화감독도 결국 인간이다. '무언가'로부터 부담을 느낀다면, 그와는 반대로 나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그럼에도 여전히 <무간도>와의 공통분모를 찾아 비교하는 관객과 평론가는 여전히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 <무간도>와 비교한다면, <상성>에서는 그 당시로부터 느껴졌던 놀라움은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기대수치가 높아졌다는 심리적인 요인도 있지만, '의도적인 선택'일 수도 있는 다른 방향이 낯설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유위강. 맥조휘와 함께 <무간도>를 연출하며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무간도>는 다른 의미에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상처'에 대처하는 그 남자들의 자세

한 가지 전제만 알고 있으면 된다. '류정희'의 사연은 결말에 이르러서야 공개되지만, 제목에서부터 눈치챌 수 있는 일이다. 이유야 어쨌든 두 남자는 '상처'를 받았다.

'아방'은 진실을 깨닫고 난 뒤, 미련없이 '상처'를 극복하고자 새로운 햇살을 추구하지만, '류정희'는 일관적이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지만, 도망가지 않는다. 또다른 상처가 생겼고, 아픔을 느끼지만 그 책임을 그대로 떠안을 뿐이다.

남자의 상처는 쉽게 표현되지 않지만, 그런만큼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알고 보면 여린 것이 사나이의 가슴이라 하지 않던가.

상처의 경중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 무게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쉽게 표현되지는 않지만 쉽게 잊혀질 수도 없는 상처, <상성>은 두 남자의 '상처'를 담아내며 남자가 선택할 수 있는 서로 다른 길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어쩌면, 그 '상처'에는 <중경삼림>처럼 '홍콩'의 정치적인 과거가 담겨있을 수도 있겠다. 결말에 이르러 공개되는 '류정희'의 과거사에서 희미하게 느껴진 흔적이다. 평소에는 충실한 생활인이지만, '순간'에는 과거를 잊지 않고 놀라울 정도로 냉혹해지는 그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과거.

'과거'의 추억과 그 연결고리가 더욱 간절해지는 경우는, 대개 '악'의 개입으로 그 소중함을 한 순간에 잃었을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추억은 상처받은 개인의 가슴 속에서 절대화되면서, 평생 지켜내고 달래야만 하는 가치가 되곤 한다.

▲ '상처받은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상처'에 대한 두 남자의 서로 다른 자세. <중경삼림>과 '홍콩'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상성>에서 느껴지는 두 남자의 다른 선택은, 그렇듯 극단적인 나뉨이었던 것이다. <상성>은 상대적으로 상처를 절대화하고 인생의 목적으로 삼은 '류정희'에게 더 많은 시선을 보낸다.

'상처받은 도시'에 대한 쓴웃음이었을까, 아니면 내면에 잠자고 있을 상처에 대한 복잡한 심리를 드러낸 것이었을까. 물론 둘 다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도, 그리고 우리도 이 도시를 살면서 상처를 받고 다양한 아픔을 느끼며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술은 원래 소독제였다더군. 그런데 세상에 소독할 게 그렇게 많았나. 5년인가 뒀다 마셔보니 맛이 기가 막혔다는 거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05-31 08:21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상성 무간도 양조위 금성무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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