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엔 달빛왕 정조임금, 프랑스엔 태양왕 루이14세

[서평] 김정의 <국사시간에 세계사 공부하기>

등록 2007.05.21 09:03수정 2007.05.2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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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시간에 세계사 공부하기” 책 표지 ⓒ 웅진

고려 무신정권 당시 유럽에는 봉건 영주가 있었고, 일본엔 무사들의 막부 정권이 있었다. 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서도 혁명이 있었다. 한반도 남북 분단은 세계의 동서 냉전이 그 배경이었다. 그동안 우리의 국사시간에는 이러한 내용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무신정권이고, 동학농민운동이고, 남북분단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우리만 있을 수도, 아무런 외부의 배경 없이 이루질 수도 없다. 우리 역사는 늘 세계와 함께 숨을 쉬며, 발전해왔다. 따라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 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가 나아갈 길도 더욱 뚜렷이 보일 것이라며, 국사와 세계사를 하나로 짚어보려는 책이 나왔다. 서울대학교에서 한국현대사를 강의하고 있는 김정이 쓰고, 강응천이 기획하여 웅진에서 펴낸 <국사시간에 세계사 공부하기>가 그것이다.

이 책은 웅진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만들어가는 '지식의 사슬' 시리즈다. '지식의 사슬'은 통합적인 사고를 하자는 것이란다.

책에선 먼저 우리 역사의 한 꼭지를 소개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그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던 경우를 보여준다. 혹은 그런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짚어준다. 그러면서 그런 역사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지 명쾌하게 분석해 보인다.

"조선은 근대화 과정에 간섭한 일본의 뜻에 따라 일본의 식민지가 된 반면, 프랑스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 발돋움했다. 아무리 좋은 개혁이나 혁명도 스스로 이루지 못하고 남의 힘을 빌리면 결국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제국주의란 자본주의의 발전된 형태였다. 그러므로 사회주의는 제국주의를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제국주의에 고통받고 있던 우리 민족은 사회주의 사상을 쉽게 받아들였다. 사회주의 사상이 독립운동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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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왕을 자처한 루이 14세와 모든 강을 비추는 달빛왕으로 자처한 정조”란 제목의 재미있는 그림 ⓒ 웅진

이렇게 조선이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의 식민지가 된 까닭이 무엇인지 얘기해주며, 사회주의가 제국주의를 반대할 수밖에 없었고, 또 우리 겨레가 쉽게 사회주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까닭을 손바닥에 올려놔 준다.

이 책의 좋은 점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책에서 처음 시도되는 새로운 편집이 돋보인다. '탕평군주 영·정조와 절대군주 루이 14세'를 보면 맨 처음 '태양왕을 자처한 루이 14세와 모든 강을 비추는 달빛왕으로 자처한 정조'란 제목의 재미있는 그림과 함께 홉스의 '리바이어던' 속표지를 배경으로 삼아 신선한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400여 장에 이르는 총천연색(올칼라)의 다양한 사진과 도표 그리고 한 눈에 들어오도록 그린 국사와 세계사를 비교해보인 연표 등도 이 책의 가치를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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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와 세계사를 비교해보인 연표의 하나 ⓒ 웅진

이 책의 장점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소재도 좋았고, 적절히 연결하여 청소년들에게 철학을 만들어 주려는 노력이 훌륭했다. 더구나 역사책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객관적인 그리고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려 애썼다는 점은 크게 손뼉을 쳐 칭찬해주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지은이는 "우리가 이 책에서 인류의 역사를 배웠듯 언젠가 먼 후세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가 만들어놓은 역사를 배울 것이다. 과연 우리는 후세에 어떤 역사를 남겨 줄 것인가? 이제 우리 모두 주인공이 되어 원하는 역사를 새로 만들어 낼 때다"라고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이 책에도 연표의 꼭지와 어울리는 것이 조금 어색해 보이는 내용이 들어 있는 등 약간의 옥에 티는 물론 있다. 하지만, 옥에 티를 억지로 잡아냈다는 느낌이 들만치 완벽한 책이다. 지금 우리는 꽃잎 흩날리는 봄을 마무리한다. 나는 이때 통합적인 지식과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가르쳐주는 이 책을 부모와 청소년이 함께 보는 책으로 추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세계 속에 우리 인식하는 열린 사고 하라"
[대담] 지은이 김정과 기획자 강응천

▲ 대담을 하는 글쓴이 김정(왼쪽)과 기획자 강응천
ⓒ김영조

- '지식의 사슬' 시리즈는 무엇이고, 그 첫 번째로 국사·세계사 통합을 선택한 까닭은?
강응천 : "삶 자체가 '이건 수학이고, 저건 국어다'라고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통합적인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전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 나라를 다스렸다는 것도 생각한다. 조선의 선비들도 문사체를 겸비한 사람들이었으며, 서양의 르네상스도 그것을 지향했다. 전문 지식은 통합 교육 속에서 빛이 난다. 이러한 새로운 시각이 소장학자들 사이에 생기고 있어 이의 본보기를 보여주자는 뜻으로 '지식의 사슬' 시리즈를 기획했다.

통합 교육은 모든 분야에서 필요한 것이지만 역사 분야는 시급한 문제의 하나일 것이다. 어떤 이는 그동안의 국사교과서가 '자폐증 환자의 일기'처럼 보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 역사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란 생각에 국사·세계사 통합을 먼저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맞게 적절한 글을 쓸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작용했다."

- 이 책을 쓰면서 중점에 둔 생각은 무엇이며, 청소년들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어떤 철학을 갖기 바라나?
김정 : "혼자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 자아도취에 빠지면 안 된다. 특히 세계화 시대엔 큰 흐름 속에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썼다. 우리는 '왜 우리가 선진문물을 전해주었다고 하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나?'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들이 이 책을 통해 세계 속에 우리를 인식하는 열린 사고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강응천 : "많은 이들이 우리 역사가 잿빛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역사는 우울할 때도 있었지만 당당하고 정의편에 서 있었음을 얘기해 주고 싶었으며, 자랑스러운 역사였음을 보여주고, 우울증에서 벗어나라고 주문하려는 것이다,"

- '반공기지가 된 남한과 제3세계의 성장'에서 미국이 잉여농산물을 한국에 준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 미국의 잉여농산물은 밀, 목화 등 토종 농산물의 멸종을 불러왔다. 이것도 중요한 것이 아닐까?
김정 : "미국이 잉여농산물을 한국에 준 것이 토종 농산물의 멸종을 불러왔다는 생각으로 초고에 썼는데 수정과정에서 빠진 것 같다. 우리의 체질에 맞는 밀이 현재는 1% 정도만 생산된다고 하여 겨우 목숨만 부지한 상태인데 이것은 식량주권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개정판에서는 이를 분명히 반영하겠다."

- '삼국의 불교, 인도의 불교'도 좋았다. 그런데 세계 역사엔 종교 사이 갈등이 중요한 지렛대 구실을 했다고 본다. 이 책에서 그것을 다뤘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김정 : "물론 종교 사이의 갈등은 세계 역사의 흐름 속에 중요한 요인이다. 다만,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종교 사이 갈등이 벌어진 사례를 찾기가 어려웠다. 조선시대 서양학이 처음 들어왔을 때 탄압받았던 적이 있지만 이것이 십자군 전쟁이나 다른 역사적 사실들과 인과관계를 찾아내기 어렵다. 만일 그런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즉시 덧붙일 것이다."

- '지식의 사슬' 시리즈를 교과서만 바탕으로 하지 말고 '전통문화와 세계문화' 같은 주제는 어떨까?
강응천 : "교과서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쉬는 시간에 책읽기'도 기획되어 있는데 '전통문화와 세계문화'도 괜찮은 생각이다. 전통문화를 단순한 자부심만 가지고 접근해서는 안 되고, 세계문화와 어떻게 접촉하고 변해왔으며,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지 분석해본다면 전통문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에 따라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대담 자리에는 기획자와 지은이만이 아닌 책임편집자 오윤성씨도 함께 했는데 전례가 없는 새로운 편집을 시도한 탓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었다는 뒷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은이와 기획자는 편집팀이 성탄절과 해를 넘기는 12월 말일 밤늦게까지도 편집을 손에 놓지 않은 것이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바탕이라고 고마워했다. / 김영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자보, 다음, 문화저널21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자보, 다음, 문화저널21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국사 시간에 세계사 공부하기

김정 지음,
웅진주니어, 2007


#국사 #세계사 #김정 #강응천 #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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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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