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스승의 날'을 폐하라

[주장] 존경하는 마음을 '날'이나 '캠페인'으로 묶어둘 수 있나?

등록 2007.05.14 16:28수정 2007.05.1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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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경북 울릉군 울릉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독도를 지켜온 우리 겨레,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일본 망언의 배경 등에 관한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존경하는 스승이 한 분 계신다. 그 분은 나의 결혼식 주례를 맡아 축복의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다.

대학 은사이신 그 분은 엄격하고 깐깐한 분이다. 한없이 인자해 보이지만 또한 매서울 만큼 원칙을 강조하는 분이다. 내가 그 분을 존경의 마음으로 대하게 된 것은 아주 작은 일이 계기가 되었다.

대학 때 학생운동 한답시고 수업을 자주 빼먹었던 나의 성적은 항상 밑바닥을 맴돌았다. 그러나 당시 사회 상황을 염두에 둔 교수님들은 대부분 관대한 편이었다. 특히 전공과목 교수님들은 더욱 그러해서, 웬만해서는 낮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낙제점이라도 몇 개 받는 날에는 졸업에도 문제가 생기고 그렇게 되면 제자의 장래에 차질이 생길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분에게 여지없이 낙제점을 받았다. 워낙 형편없게 공부를 한 탓이겠지만, 그 분의 '원칙대로의' 교육관이 '관대함'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를 낙제시켰던 은사님

그런 분이 나에게 5000원을 쥐어준 일이 있었다.

당시 '교직발전종합대책'이라는 문교부(당시 교육부)의 정책에 맞서 학내 학장실을 점거하여 농성을 벌인 적이 있다. 학장실을 점거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다른 교수님들은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셨다.

11월이라 난방이 되지 않는 학장실은 매우 추웠고 제 때 먹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사실상 방학으로 접어들면서 싸움은 매우 외롭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기상해서 아침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분이 학장실 앞에서 골똘하게 대자보를 읽고 계셨다. 인사를 드렸는데 답도 안 하시고 한참을 뚫어져라 대자보만 보시더니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시며, "추운데 밥이라도 챙겨 먹으며 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따뜻한 미소를 남기고 당신의 연구실로 올라가셨다.

고마웠다. 너무 고마웠다.

난 그 분이 우리의 '저항방식'에 동의했다고 보지 않는다. 내가 그 분의 철학과 인생관에 다 동의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추운 아침에 밥은 챙겨 먹으라는 그 분의 '사랑'이 고마웠을 따름이다. 그 분 또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가치와 이념을 떠나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보여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존경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승의 날을 두고 말들이 많다. 2월로 옮겨야 한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학기 중에 치러야 하는 스승의 날이 학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인 나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2월로 옮긴다고 이런 부담이 해결될까? 아니라고 본다. 난 스승의 날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승'이 아니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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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사학법 개정에 반발해서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는 사학재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장이 열린 한 학교 앞 모습. 한 학생이 교문밖에서 벌어지는 몸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사람들이 나의 직업을 물으면 난 '교사'라고 대답한다. '스승'이라고 하지 않는다.

'스승'은 제자가 부르는 용어이다. 어버이라는 말을 자식이 사용하는 것처럼, 스승은 '제자 중심성'의 말이다. 제자가 존경하는 스승을 찾아뵙고 그 고마움을 전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존경과 감사'는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고 그것은 누가 강요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존경하는 마음은, 어느 날만 '반짝'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또 그래서도 안된다.

어버이날을 만들어놓고 그날 하루만으로 모든 효도를 '몰아치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스승의 날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날 하루만이라도 '스승을 생각하고 존경과 감사를 표하자'는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나, 그럴 정도로 사제간의 관계를 '매어두기' 어렵다면 차라리 그 끈은 놓아버리는 것이 낫다.

거듭 말하거니와, 존경하는 마음은 '날을 지정하여' 생기는 것도 아니고, '캠페인'으로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스승이라는 말은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를 왜곡하고 자본주의 교육 모순을 은폐하는 것에도 이용된다. 교사와 학생은 대등한 인격체로서 상호 의존적 존재이자 동지이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교사와 학생은 교육 속에서 서로 돕고 상호 발전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되는' 스승'이라는 말은 너무 무겁다. 그림자도 밟지 않고서야 무슨 교학상장이 되겠는가?

교사를 소외시키는 스승의 날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가르치는 것은 현실을 창조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방안들을 학생들과 서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스승'이라는 말은 답답하다. 시민 학생들과는 뭔가 다른 '인격형' 속에 교사들을 가두고 이를 강요하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은 다른 '인격형'을 갖고 학생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교사들에게 제자의 방문은 큰 기쁨이다.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자가 '챙겨주어야만' 하는 스승의 날은 교사들에게는 또 하나의 소외다.

차라리 '교사의 날'이라면 어떨까?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정담도 나누고 동료 교사들끼리 한 판 잔치라도 편하게 벌일 수 있지 않을까? 노동자의 날을 통해 노동자 자신의 자긍심과 권리의식을 고양하듯, 교사의 날을 통해 교사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높여 좀 더 질높은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말없이 5000원을 쥐어주며 아침밥을 챙겨 먹으라던 그 분의 온기를 '하루'만 떠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루만이라도' 떠올려 보라면 너무 착잡한 일일 것이다. 스승의 날을 없애는 것은 진정한 사제간의 관계를 복원하는 '창조적 파괴'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스승의 날을 없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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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한국교총이 주최한 '스승의 날' 기념식 및 교육공로자 표창식. ⓒ 오마이뉴스 이종호

#스승의날 #교사 #교학상장 #사제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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