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라니요? 섬세한 '남자'일 뿐입니다"

'남자 네일아티스트' 박준구씨의 직업세계

등록 2005.12.02 15:27수정 2005.12.0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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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하다 보면, 지하상가나 번화가 네일숍의 개방된 부스에서 손톱손질을 받는 여손님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솔직히 나는 그럴 때마다 '손톱까지 치장해야 하나'라는 심정적인 반대에서부터 '청소든 설거지든 집안일 한번 하면 몇 만원씩 들여 장식한 손톱이 금세 흠집 날 텐데 어떻게 유지한다는 거지?'라는 실용적인 부분에서의 반대까지, 곱지 않은 시선만 보냈을 뿐이다.

그러나 네일숍의 부스는 비어있을 때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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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구씨가 미용학원 수강생에게 직접 시범을 보이고 있다. ⓒ 이영주

1㎠ 예술, 섬세한 네일아트의 세계에 뛰어든 '남자'

그런 내가 네일아트를 만나게 됐다. 미용이라고 하면 몇 달에 한 번 미용실에 가서 머리모양 바꾸는 게 전부인 줄 알고 살던 내가 네일아트, 더 정확히는 네일아티스트를 만나게 된 것이다.

네일아티스트가 직접 네일아트 시범을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입이 떡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손톱의 지저분한 부분을 제거하고 매니큐어만 바르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네일아티스트의 붓끝이 지나간 자리에는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았다. 검은 하늘에 박힌 별이 찬란한 빛을 냈고, 수줍은 초승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왜 손톱 관리라고 하지 않고 네일 '아트'라고 하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1㎠ 남짓한 손톱에서 펼쳐지는 네일아트의 세계가 어느 미용분야보다도 섬세함을 요구할 거란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손톱 장식을 하면서 1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고객을 마주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직업적 특성상 이 일은 '섬세하고 친근한' 여자들에게 어울릴 일이라는 생각도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내가 만난 네일아티스트는 남자였다. 그것도 서른 두 살의 건장한 청년. 그는 섬세하고 친근한 자신만의 네일아트 향연을 펼침으로써 왜 네일아트가 여성들만의 전유물이어야 하는지 '섬세하고 친근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었다. 서울과 인천에서 네일아트 전문강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네일아티스트 박준구씨를 만나보자.


건설업에서 네일아티스트로, 180도 달라진 직업

준구씨는 경상도 사나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밥 묵었나?" "자자" "아는?" 이렇게 짧은 말을 툭툭 내뱉는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을 준구씨 역시 천성처럼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처음 하게 된 일은 건설업. 허우대 멀쩡하고 건강한 남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직업이었다. 남자로 태어나 남자로 자라면서 당연히 남자들이 많이 가는 길로 인생의 항로를 잡았던 것이다.

그랬던 준구씨의 인생을 바꾼 것은 군대와 여자친구였다. 군 입대를 하면서 건설업을 그만두게 됐고, 제대 후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미용의 세계를 접했기 때문이다. 7년 전 미용업계에 관심이 많던 여자친구의 권유로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네일숍을 찾은 것이 그의 인생 항로를 180도 바꾸어 놓았다.

"처음 네일숍에 갔을 때 무진장 쑥스럽고 불편했습니다. 여자들만 가는 곳으로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단순한 손톱 손질이 아니라 손톱 끝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드는 네일아트의 과정을 관찰하다 보니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그때부터 네일숍에서 일하면서 기초를 배우게 됐죠."

네일숍에서 실전으로 배우며 네일아트에 대한 준구씨의 호기심은 흥미로 변했다.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미용학원에 등록하고 정식수업을 받으며 네일아트의 세계로 더욱 깊숙이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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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구씨는 수강생들에게 '꼼꼼하고 친절한 선생님'으로 평가 받는다. ⓒ 이영주

"왜 그런 일을 하냐?" "당신 변태지?"

학원에서 기초부터 배우면서 그가 갖고 있던 네일아트에 대한 흥미는 차츰 열정으로 바뀌게 됐다. 단순히 손톱 장식이라고 생각했던 네일아트를 통해 사람들이 손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생겨났다.

"치열이 고르지 못해서 마음 놓고 웃지 못하던 사람이 치아교정을 하면 자신감이 생기잖아요. 네일아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손이 못 생긴 사람은 대화할 때 손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늘 탁자 아래로 감추게 됩니다. 네일아트로 손톱 모양을 바꾸면 손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져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에 대인관계에서도 자신감을 얻게 되더라고요."

그러길 4년. 네일아트의 매력을 깨달을수록 고객들에게 네일아트를 시술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됐다. 그는 본격적으로 네일아트 전문강사로 변신했다.

그러나 여자들만의 분야로만 여겨지던 네일아트에 뛰어든 그를 주위에서는 곱게만 보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온 친구들도 "왜 그런 일을 하냐?"며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고, 주위 사람들 역시 고객의 손톱을 조물락거리며 '쪼잔하기 그지없는' 동작으로 그림을 그려넣고 부조물을 만드는 그의 모습을 신기한 듯 힐끔거렸다.

"네일아트를 처음 배울 당시엔 내 손톱에 여러 가지 문양을 그려 넣거나 화려한 색의 매니큐어를 바르고 길을 나설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때 길을 나서면 사람들이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당신 변태지?'라고 비웃는 게 느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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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구씨의 네일아트 시범. 박씨는 손톱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보다 아름답게 변화한 손톱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네일아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 이영주

섬세함은 여성만의 전유물? 편견을 버리세요!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은 그가 네일아티스트가 된 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선을 마주하는 준구씨는 많이 변했다.

"처음엔 이상한 놈 취급하는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저도 처음 네일숍 들어갈 때는 낯설고 쑥스러웠으니까요. 네일아트를 하면서 저 역시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틀을 많이 깰 수 있었습니다. 내가 남자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가, 그 분야에서 얼마나 능력을 발휘하는가가 중요한 것이죠. 직업이 성별로 구분될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준구씨와 같은 남자 네일아티스트는 전체 네일아티스트의 5%도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섬세함은 여느 여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때문에 준구씨는 "섬세함이 여자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안에 숨어있는 기질을 발견하지 못해 생기는 편견이고 고정관념일 뿐"이라고 잘라말한다.

더구나 남자들이 소수인 분야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이점도 많단다. 여자들이 대부분인 미용업계에서 남자라는 이유로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것도 즐거움이고, 남자강사이기 때문에 수강생들이 더 관심을 갖고 친근하게 수업을 듣는 것도 이점이었다고.

실제 준구씨가 강의를 하고 있는 MBC뷰티아카데미(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 소재)의 수강생들은 그를 마치 친오빠 대하듯 친근하게 따랐다. "너무 숙제를 많이 낸다"고 엄살 섞인 투정을 하면서도 "교수방법이 꼼꼼하고 수강생들이 요구하면 아무리 귀찮고 힘들어도 시범을 보여주는 '섬세하고 친근한' 선생님"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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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일아티스트 박준구씨. ⓒ 이영주

언젠간 '박준구 네일숍' 열 것

"네일아트로 손을 예쁘게 관리하는 것은 어쩌면 부수적인 것입니다. 네일아트의 진짜 매력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죠."

준구씨가 말하는 네일아트란 '사람의 지친 마음을 다독이는 한풀이'이고 네일아티스트는 '심리치료사'이다. 많은 여자들이 기분이 우울할 때 머리 모양을 바꿔 기분 전환을 하듯, 네일아트 역시 마음을 달래는 심리적 치유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어두운 표정으로 네일숍에 들어섰던 고객이 자신과 대화를 하면서, 그리고 달라진 손톱을 보면서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모습을 볼 때가 네일아티스트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는 앞으로 손끝 1㎠의 작은 공간에 펼치는 예술, 네일아트로 더 많은 이들을 안내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제가 가르친 수강생들이 운영하는, 제 이름을 건 네일숍을 만들고 싶습니다. 욕심을 갖기 시작하면 끝도 없겠지만 제 꿈을 위해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할 것입니다."

보통 남자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지만, 그는 자신이 가진 직업의 매력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준구씨의 다부진 희망이 결코 허황된 꿈으로만 남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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