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고추 만지고 자는 게 날 닮았다고?

오줌이 기저귀를 피해 자꾸만 옷과 이불 적시는 아들

등록 2005.11.11 19:42수정 2005.11.1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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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20개월)인 둘째 태민이. 어느 덧 기저귀 뗄 때가 거의 된 개월 수이니 '이제 다 키웠구나(?)'하는 흐뭇한 생각을 하고 있을 시점이었는데, 두 달 전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요즘 때 아닌 수면부족 상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새벽에 자다 말고 깨서는 우는 겁니다. 물론 갓난 아기였을 때야 더 말할 필요도 없었지요. 밤에 몇 번이고 깨서는 시시때때로 울어 아내와 제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습니다. 아마 아기 키워보신 분들은 모두 공감하는 그 힘듦의 과정일 겁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기특하리만치 밤사이 울지도 않고 잘 자더라고요. 그 때의 그 기쁨이란, 완전히 '심봤다!' 수준의 기쁨이었습니다. 물론 제일 좋아한 건 아내였지만. 그런데 이 녀석이 또 다시 엄마와 아빠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애기였을 때만큼은 시시때때로 우는 것은 아닌지라 처음에는 그럭저럭 별 스트레스 없이 넘어갔는데, 거의 매일 울어대니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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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요녀석이 밤에 자면서 고추를 만져, 고추 방향을 트는 바람에 기저귀에 갈 오줌이 자꾸 옷과 이불을 적시는 탓에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힘듦이 있습니다. 더구나 요 놈 때문에 제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습니다. ⓒ 장희용


'앙앙앙~'

여지없이 오늘도 둘째 태민이가 새벽녘에 울었습니다. 아내가 발로 저를 툭툭 찹니다. 아내가 차거나 말거나 잠든 척. 여기서 만약에 움직이면 제가 깼다는 것이 들통 나게 되고, 그러면 꼼짝 없이 제가 둘째를 달래야 하니 옴짝달싹 하지 않고 감고 있는 눈에 더 힘을 줍니다.

"안 자는 줄 알아. 오늘은 자기가 해."

아내의 짧고 굵은 목소리.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귀찮은지라 조금 더 버티면 아내가 해 줄 것으로 믿고는 끝까지 버티려 했지만 울고 있는 태민이가 불쌍해서 떠지지 않는 눈꺼풀 손으로 들어 올리고는 침대 밑으로 내려갑니다.

옆에 누워 품에 안고는 달래려고 등을 토닥거려 주려는데, 으~ 손끝에서 느껴지는 이 축축함. 일어나서는 이불을 만져 봅니다. 으~ 이불까지 적었네요. 아이 옷이 있는 방에 가서 내복을 다시 꺼내옵니다.

이불을 거두어 거실에 내 놓고는 작은 이불 하나를 다시 깔고 둘째를 눕힙니다. 옷을 벗기고 물수건으로 아이의 등하고 엉덩이를 닦아 주고는 옷을 다시 입힙니다. 그리고는 눈 동그랗게 뜨고는 아빠를 쳐다보는 태민이에게 한 마디 화풀이를 합니다.

"이 녀석이 또 고추 만졌네. 장태민 너 자꾸 자면서 고추 만질 거야? 아빠한테 혼난다!"

잠결에 한 마디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토닥거려 다시 재우고는 침대 위로 올라옵니다. 이불 끌어안고 옆으로 누워 있는 아내를 보니 괜히 심통이 납니다. 안 자면서도 끝까지 자는 척 하는 아내, 그래서 어깨를 손으로 툭 한번 치는 것으로 복수를 하고는 다시 잠이 듭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아내를 새우 눈으로 한 번 쳐다봅니다.

"가뜩이나 작은 눈, 왜 그렇게 더 작게 만들고 그래?"
"몰라서 물어. 엄마가 돼서 말이야 애기가 울면 가서 달래줘야지."

"애는 뭐 엄마만 키우나? 자기가 좀 하면 어때서."
"아, 그래도 애한테는 엄마 품이 더 중요한거야. 그리고 나는 낮에 일하고 오잖아."

"아휴, 그 핑계 갖지 않은 핑계 좀 대지 마셔. 그럼 나는 낮에 낮잠 자고 노는 줄 알아."
"(역시나 본전도 못 건진 나의 패배)그래 알았다 알았어."

다툰 건 아니지만 약간의 신경전, 왜냐면 새벽에 일어나는 횟수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서로의 기 싸움입니다. 아내하고 말다툼을 하고 있는데, 누나 방에서 놀고 있던 태민이가 밥 먹을 시간은 귀신 같이 아는지라, 떡하니 자기 의자에 낑낑대며 올라가더니 밥 달라고 소리를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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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훈계를 멀뚱 멀뚱 바라보는 둘째 태민이. "아들, 제발 자면서 고추 좀 만지지 마세요" ⓒ 장희용


불똥이 괜히 둘째로 튑니다.

"장태민, 너 왜 자꾸 고추 만지고 그래. 고추 만지니까 오줌이 자꾸 엉뚱한 곳으로 가서 옷 버리고 그러잖아! 너 자꾸 고추 만지고 그럴 거야?"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멍하니 쳐다보는 아들. 급기야 저는 둘째를 번쩍 안아서 방바닥에 세워 놓고는 고추를 가르키며, 고추를 만져서는 안 된다는 엄한 훈계를 합니다. 아내는 왜 애한테 화풀이 하냐면서, 그러니까 애기지 괜히 애기냐며 저를 나무랍니다. 그리고는 짧은 한마디를 날립니다.

"자기도 자면서 고추 만지잖아. 다 자기 닮아서 그래"
"뭔 소리여. 내가 무슨 고추를 만지고 자."

"아이구, 내가 사진 찍어 놀까?"
"그럼 얘가 나 닮아서 고추 만지고 자는 거라고? 그래서 오줌이 새서 옷 버리고 이불 적시는 거라고? 이보세요. 괜히 나한테 뒤 짚어 씌우려고 하지마세요."

"진짜라니까! 자기도 잘 때 고추 만지고 잔다니까. 그러니까 태민이가 저러는 것 다 자기 닮아서 그래. 피가 어디 가나? 다 부전자전이야!"

'쳇, 자기도 자기가 새벽에 일어난 다음날에는 태민이 혼내면서 나한테만 뭐라고 하고, 그리고 뭐 나 닮아서 잘 때 고추 만지고 잔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태민이는 아는지 모르는 지 손가락으로 자기가 먹고 싶은 반찬을 가리키면서 우걱우걱 밥 먹는 것에 열중입니다. 그런 아들을 보며 잠깐 든 웃긴 생각?

내가 진짜로 자면서 고추 만지고 자나? 아, 아닐 거야. 이건 나한테 책임을 전가시키고, 나한테 시켜 먹으려는 아내의 음모야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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