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정말 방송이 걱정되는 걸까?

'성기노출'사건과 '시어머니 뺨 때린 며느리' 보도에 대해

등록 2005.08.01 05:35수정 2005.08.0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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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1일 1면 머릿기사를 통해 < KBS >와 < MBC >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 동아일보 PDF

MBC-TV 음악프로에서 일어난 방송사고 이후 방송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사고가 우발적이라 할지라도 이는 방송계의 경각심이 그만큼 느슨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둥, 시청률 높이느라 선정적으로 가다보니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고였다는 둥….

나 역시 그 방송사고 장면을 아홉시 뉴스에서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서 성기노출은 인디밴드의 표현의 자유라는 의미로 해석될 리가 만무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과 남성의 몸이 다르게 해석되는 사회일수록 남성의 성기노출은 폭력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그 방송의 주요 관객층은 나이 어린 여학생들이었고 그들은 남자 출연자의 성기 노출을 보며 '놀라움' 이전에 '공포'와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자의 노출은 쾌락의 도구가 되지만, 남자의 노출은 폭력과 협박의 도구가 된다. 하기에 그 방송사고에 대해서는 해당 방송사가 책임 있는 사과와 대응이 따라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MBC는 사과에 이어 아예 방송폐지라는 특단의 조치까지 취했다.

그런데 내 심기는 왜 이렇게 불편한가.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에게 그에 걸맞는 조치가 취해졌는데 이렇게 찜찜한 이유는 무엇인가.

언론의 기능을 상실한 언론사'들'의 여론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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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장면 30일 오후 MBC <음악캠프> 생방송 중 백댄서 2명이 바지를 내린채 춤을 추고 있다. ⓒ MBC 화면 캡처

나는 MBC가 방송폐지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음악프로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서 사실 그 방송의 폐지 여부는 관심밖의 일이었지만, 이번 사건을 이유로 문제의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잘못 읽혀질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음악성과는 아무 상관 없는 기획사의 기획 놀음에 의한 방송순위와 출연자 선정 때문에 방송 폐지를 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 여론 폭풍에 휩쓸려 이 방송을 폐지한 것은 현재 모든 언론(신문, 인터넷매체 할 것 없이)의 여론몰이의 위험성에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못하고 그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기에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 거의 모든(이것이 중요하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사회에서 이렇게 획일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언론이 방송의 위기를 논하며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들이 개탄하는 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공적인(!)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방송매체가 시청률에 목매면서 좀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다 보니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

그들의 지적은 옳다. 방송매체의 선정성 문제는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추적60분>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사회고발 프로그램부터 오락프로그램까지 선정성이 문제가 됐던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나 역시 방송매체가 선정성으로 시청률을 올리는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그들의 지적은 옳지 못하다. MBC 음악프로의 방송사고가 단순히 시청률을 위한 자극적 소재찾기로 인한 것으로만 해석하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빚어낸 불행한 사고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됐어야 옳다. 과연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지, 한국사회에서 남성 성기노출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러나 이런 논의는 어느 언론에서도 허용되지 않았다.

언론(言論)이란 말 그대로 뜻풀이를 하자면 '말과 말들의 논의'라는 뜻이다. 따라서 언론이 이번 사건에 대해서 뜻풀이 그대로 제 역할을 하려면 성급히 한 프로그램과 방송매체 전체에 대해서 싸잡아 비난하는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이 사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공론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끄집어내야 했다.

그래서 인디밴드가 이야기했다는 '표현의 자유'와 '폭력성'의 경계에 대해서 가해자든 피해자든, 혹은 방관자든 누구나 자기 생각을 끄집어내고 그 안에서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들은, 심지어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언론이라는 곳조차도 그러지 않았다. 언론들이 이번 사건 뒤에 한 일이라고는 대중의 말초적 감정을 건드리는 어휘 사용과 마치 자신이 모든 일의 심판자인 양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방송매체 전체를 싸잡아 매도하는, 손쉽고 선정적인 (이는 그들이 방송매체를 비판할 때 쓰인 논리와 꼭 닮았다) 비평뿐이었다.

ㅎ신문에서 '프로그램 폐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발 방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언급했던 것이 그나마 논의의 본질에 다가가는 논평이었지 않나 싶다. 그러나 그 논평 역시 '표현의 자유'와 '폭력'의 경계에 범주에 대한 논의는 뒤로 한 채 방송매체의 도덕성만을 손쉽게 건드렸다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효와 동방예의지국을 부르짖는 언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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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한 장면. ⓒ KBS 화면 캡처

언론들이 방송 음악프로의 방송사고를 이야기할 때 꼭 함께 언급되는 것이 KBS 시트콤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 따귀를 때리는 장면 방송분이다. 그들은 이 두 방송을 나란히 놓고 '효'와 '인륜'이 땅에 떨어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라며 사회 정화운동을 해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다.

앞서 MBC 음악프로에 대해서는 이야기했으므로 후자에 대해서만 언급하자면, KBS의 시트콤은 지금껏 어느 방송에서도 시도한 적 없는 노인문제, 그것도 언제나 돌보고 거둬야 하는 시혜적 입장이 아닌 노인 당사자 입장에서 노인문제를 꾸준히 다뤄온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문제의 그 장면 역시 그 시트콤의 노인 주인공 세 사람(최미자의 할머니들)의 눈을 통해 시청자에게 보여지기 때문에, 장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지점이 매우 교훈적으로 시청자에게 전달된다.

오히려 육아문제로 인한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갈등이 노인의 시선만으로 읽혀져,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는 며느리들의 고충이나 육아문제가 왜 여성들에게만 지워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제기는 할 수 없게 만드는 취약함마저 안고 있는, 부모 자식 간의 상호관계에서 한 쪽인 '효'로만 치우쳐 있다는 혐의를 받기에 충분한 에피소드였다.

실제 방송 당시 시청자 게시판에는 "그 며느리가 너무 심하긴 했지만, 육아문제에서 며느리의 고충은 아예 외면한 것 같다"는 의견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들'은 이 부분에 대해 철저히 외면한다. 단지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그 장면 하나만을 끄집어내어 방송매체의 선정성과 부도덕성에 대해 비분강개한다.

이는 교묘한 방송 편집으로 시청자를 호도했던 '그때 그 시절'의 '눈 가리고 아웅'과 다를 것이 없다. 아마도 시어머니의 따귀를 때린 아내의 머리끄댕이를 잡아 내팽개치지 못한, 그래서 가장(남자)의 권위를 떨어뜨린 것에 대한 분노 역시 한몫 했을 것이다.

언론들이 전혀 다른 두 방송 프로그램의 문제를 하나의 선상에 올려둔 것은 이미 내린 결론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다른' 목소리들이 '공적인' 영역으로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서열화된 질서로서의 '효'로 '균형'을 이룬 '동방예의지국'으로 돌아가 고분고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 이것이 그들이 진정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 모 야당이 일개 시트콤에 대해 부대변인의 입을 빌어 '땅에 떨어진 효'에 대해 개탄하는 발언을 한 것을 보면 이 해석이 아무래도 옳다는 확신이 든다. 또한 이는 자신이 곧 여론이라고 확신하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언론들(특히 신문들)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방송사에게 내리는 경고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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