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프로야구 병풍' 선수들만의 책임인가

[주장] KBO와 구단은 병역비리에 책임있는 행동 보여야

04.09.17 11:35최종업데이트04.09.17 14:44
원고료로 응원
병풍. 프로야구를 휩쓸었던 병역 비리 파문이 조금은 잠잠해진 듯 보인다. 아마도 병역 비리가 야구 선수들을 넘어 연예계까지 확산되면서 야구 선수들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조금 사그러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도 간과하면 안되겠다. 프로야구가 인기를 끌었던 1990년 중반 정도만 됐어도 병역 문제는 더 크게 대두되었을 수도 있다. 프로야구 선수 관련 병풍 여론이 이렇게 빨리 잠잠해진 것을 보
면, 프로야구 인기가 그만큼 떨어졌고 프로야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예전만 못하다는 서글픈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오늘 17일자 <스포츠 투데이>를 보니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는 어제(16일) 한국프로축연맹과 한국농구연맹 등과 만나, 병역비리 근절 대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여기서 선수들의 병역면제 범위 확대와 육군, 해군, 공군 팀 창설 등을 건의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필자가 본 KBO의 노력은 이 정도였다. 병역비리가 터진 후 KBO는 지속적으로 "이 정도로 병역비리가 심한지 몰랐다"는 등 모르쇠로 일관했을 뿐 책임 있는 발언을 하는 모습은 보이지 못했다.

KBO 홈페이지(www.koreabaseball.or.kr)만 가도 병역비리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자유게시판에서는 연일 팬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데도 불구하고, KBO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마치 병역비리가 남의 나라 일인 듯 치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선수협이 KBO와 선수관계위원회를 개최하자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이는 이번 병역비리에 대하여 KBO가 자신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선수관계위원회를 개최하게 되면, 이번 사건의 책임이 선수들뿐 아니라 구단과 KBO에도 공동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YTN 보도에 따르면, 전체 야구선수들 중 21.6%가 병역비리에 연루되었다고 한다. 5명 중 1명이 이번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사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번 사건이 선수들에게만 책임이 있다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병역 비리는 사실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필자도 과거 취재를 다니면서 이렇게 많은 건강한(?) 선수들이 병역 면제 처분을 받았다는 것에 의구심을 가졌다. 한마디로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비밀은 언젠가는 터져 나올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 과연 이 문제를 KBO와 구단이 전혀 몰랐을까? 만약 알았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아는 데도 모른 척했다는 것은 방조죄에 속한다. KBO와 구단도 도덕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고, 이번 사건에 대하여 당연히 공동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KBO와 구단이 그들의 주장대로 이번 사건에 대하여 몰랐다고 해도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분명 그들은 위재영, 정민태, 서용빈 선수 등의 사건을 통해 병역 문제에 대해 사전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20%가 넘는 선수들이 병역 면제를 받았는데도 의구심 한번 갖지 않았다면, 그들의 능력을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KBO는 분명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단체이다. 그들이 프로야구의 얼굴이며 대표이다. 어떤 기업이든 단체이든 아무리 밑에 사람의 잘못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리더가 공동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분명 리더가 그 그룹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KBO와 구단은 프로야구의 성적지상주의가 이번 사건을 불러오지 않았나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프로야구를 보면, 눈앞의 성적만 따라가는 모습이었다. 과연 그들에게 팬들은 있는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경기 초반 보내기번트도 서슴지 않고, 승리를 위해서라면 선수 혹사도 감행하는 모습이 프로야구의 현실이었다. 이는 한 번의 승리라도 더해 언론 노출 빈도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는 구단들의 구단 운영에서 왔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이런 성적지상주의 앞에서, 선수들은 전성기 때 야구를 해서 조금이라도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았을까? 젊은 나이에 군대를 간다면 그만큼 선수생활도 짧아지기에 병역면제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는 않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성적지상주의가 만연하도록 내버려둔 KBO와 구단은 책임이 없는가?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스포츠는 중요한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다. 위성TV, 디지털 TV, DMB 등을 통해 다매체 다채널화를 맞이하여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라는 말도 나오고 있고, 오히려 콘텐츠의 부족을 미래 사회의 문제로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한한 소스를 제공할 수 있는 스포츠는 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디지털 콘텐츠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는 이미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중요한 산업으로 발전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국제 대회를 통해 스포츠 산업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프로야구도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중요한 콘텐츠로서의 모습을 가져갈 수 있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스포츠로서 스포츠 산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기초를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프로야구는 계속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이번 시즌 초 KBO 관계자는 "이번 시즌 흥행에 자신 있다"는 발언을 했지만, 그때도 필자는 과연 저들이 뭐가 바뀌었길래 인기를 자신할까 의구심을 가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시즌은 근래 보기 드문 구단들간의 순위경쟁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흥행 실적을 보이고 있다. 한 경기에 2000명도 채우기 힘들다니 참으로 한심할 수밖에 없다.

프로야구는 정말로 위기다. 그 위기를 직시해야 한다.

병풍. 물론, 1차적인 책임은 당사자인 선수들에게 있다. 하지만 그들을 잘 이끌지 못한 구단과 KBO에도 책임이 있다.

이번 사건은 프로야구가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느냐 아니면, 추락하느냐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한 단계 오르기 위해서는 이번 병역 비리 사건에 대한 KBO와 구단의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2004-09-17 14:44ⓒ 2007 OhmyNews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이성환 기자는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스포츠 저널리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