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과 야성...추리소설로 증명하다

[리뷰] 모리무라 세이이치 <인간의 증명>, <야성의 증명>

등록 2012.11.29 09:21수정 2012.11.29 09:21
0
원고료로 응원

증명 시리즈 3부작 1편 <인간의 증명> ⓒ 검은숲

"작가로서 증명이 되는 작품을 써보자."

오래 전에 일본의 한 출판사에서 추리작가 모리무라 세이이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이 제안은 결국 '증명 시리즈 3부작'인 <인간의 증명>, <야성의 증명>, <청춘의 증명>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증명 시리즈가 출간된 것은 70년대 중반이었다. 이 시리즈 발표 전에도 작가는 에도가와 란포 상,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등을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미 검증되고 증명된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셈이다. 그런데 작가로서 무엇을 얼마나 더 증명하고 싶어서 증명 시리즈를 집필하게 되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작가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본격추리가 가진 메커니즘에 더는 만족할 수 없어서 인간성을 중시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본격추리의 전형적인 메커니즘이라면, 사건이 발생하고 뛰어난 형사가 범인이 장치한 트릭이나 알리바이를 꿰뚫어서 사건을 해결하는 형식일 것이다. 이런 작품들에서는 인물보다 사건이나 트릭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살인사건과 인물들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이렇게 사건과 트릭 위주의 작품들에 만족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인간은 어떤 동기로 범죄를 저지르는지, 궁지에 몰리고 절망한 인간은 어떤 심정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그리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 어떻게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등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의 증명>, <야성이 증명>의 범인들은 모두 지능범과는 거리가 멀다. 아주 단순한 동기로 사람을 죽이고, 그 이후에 수사관의 눈을 흐리게 할 만한 트릭을 심어둔 것도 아니다. 알리바이를 조작하지도 않았다. 사건 자체는 기이하고 잔인해 보이지만 그를 추적하는 형사들도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단서 하나하나를 따라간다.

<인간의 증명>에서는 한 흑인이 일본 도쿄의 고급 호텔에서 살해당한다. 아니 다른 어떤 곳에서 칼에 찔린 후에 자신의 발로 호텔까지 걸어와서 죽은 것처럼 보인다. 경찰들은 즉시 수사에 나서고, 살해당한 흑인이 미국여권을 가지고 얼마 전에 일본에 입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부 목격자들에 따르면 흑인은 서툰 일본어를 구사했지만 일본에는 처음 방문한 것이 틀림없다. 난해한 사건을 맡게된 담당 수사관들은 미국으로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야성의 증명>에서는 좀더 잔인한 대량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다섯 가구로 이루어진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마을 주민 모두가 한꺼번에 살해당한 것이다. 마을에서는 총 13구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모두 얼굴이나 머리에 육중한 흉기로 얻어맞은 흔적이 있다. 범인은 어린아이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범행을 저지른 흉악한 인물이다. 지역 경찰은 수사에 들어가지만 별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학살을 피해서 살아남은 유일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인간에게 남아있는 본성

작품 속의 사건 자체는 일반적인 범죄소설과 비교해서 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 대신 작가는 다양한 인물들을 작품 속에 등장시키고 있다. 인간을 믿지 않는 고독한 형사,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아내의 흔적을 쫓는 남자, 가정과 부모에게 불만을 품은 채 어두운 범죄의 그늘로 접어드는 젊은이들, 목숨을 걸고 도시의 비리를 고발하려고 노력하는 여기자 등.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연도 모두 제각각이다. 살인사건과 직접 연관되어 있을 것 같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 조금씩 맞물려 가면서 사건해결을 향해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의 어두운 과거가 드러난다. 작가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사건보다도 그것을 둘러싼 인물들의 내면일 것이다.

이 시리즈가 발표된 시기는 일본이 패전의 혼란을 딛고 고도 경제성장을 향해 달려가던 때다.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지만 사람들의 도덕의식과 가치관은 그를 따라가지 못한다. 당시에 작가도 그런 사회상을 바라보면서 이 시리즈를 구상했을지 모른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지켜야할 가치가 있을테니까.

그렇게 본다면 '증명'이란 제목을 붙이게 된 것도 납득이 간다. 아무리 세상이 차갑고 각박하게 흘러가더라도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따뜻한 인간의 면모가 남아있다. 아무리 조직과 사회에 순응하면서 살더라도 사람들에게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의 본능도 남아있다.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마음만은 청춘인 사람들도 많다.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작품을 통해서 그런 것들을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인간의 증명>, <야성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이치 지음 / 최고은 옮김. 검은숲 펴냄.

인간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최고은 옮김,
검은숲, 2012


#인간의 증명 #야성의 증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3. 3 나의 60대에는 그 무엇보다 이걸 원한다
  4. 4 이성계가 심었다는 나무, 어머어마하구나
  5. 5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