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 수급자한테 30만원짜리 보험 들라고?

[가정경제 119, 가계부를 구하라] 좋은 재무상담사를 찾는 방법

등록 2010.02.12 11:44수정 2010.02.1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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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비즈니스 약속을 잡는다고 가정해 보자. '언제쯤 시간이 가능하실까요?'라고 물을 수도 있고 '월요일 혹은 수요일 중 언제가 괜찮으십니까?'라고 물을 수도 있다. 약속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은 질문은 어떤 것일까?

답은 후자다. 이유는 구체적인 날을 지정해서 질문을 함으로써 선택의 폭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더 많을 때 오히려 선택을 잘 하지 못한다. 이것을 선택의 패러독스라고 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선택의 패러독스는 사람의 행복을 저하시킨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많아 애매모호함에 빠지는 상황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도 사람이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태에서 강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한 바가 있다. 선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애매모호한 것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고 따라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까지 있다.

막연한 부 증식에만 초점 맞춰져 있는 '요즘' 재무상담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돈과 관련된 모호한 상황, 즉 결정하기 어려운 재무사건에 자주 노출된다. 예를 들면 결혼과 이사, 내 집 마련이나 노후 준비, 질병 대비 혹은 부채 상환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재무적 사건에 직면하게 되면 주어진 여러 조건이나 미래에 대한 예측, 금융환경이나 경기 상황에 맞춰 합리적이고 지혜롭게 재무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갖고 있는 적은 돈으로 최대한 다양한 재무사건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버는 돈을 소비와 저축, 보험가입이나 투자로 재분배 한다. 여기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재분배를 위한 적절한 정보와 원칙 수립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된 다른 사례에서 힌트를 얻거나 때로 재무상담을 하는 사람을 통해서 조언을 구한다.

문제는 그런 과정을 통해 얻어진 정보들의 객관성과 공신력이다. 경제이론에 따르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정보는 공공재로 분류한다. 이러한 공공재는 공공영역에서 책임있게 제공되기보다는 민간부문에서 대부분 공급되고 있다. 또한 정보의 양이 지나치게 넘쳐나거나 왜곡된 형태의 정보와 뒤섞여 있어 재무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할 위험이 생긴다. 최근의 재무 정보들은 주로 막연한 부의 증식에만 초점을 맞추어 투자를 과도하게 부추기거나 빚을 권하기까지 한다.


당장 1년 내에 쓸 단기 여유자금도 없는 사람에게 펀드 가입을 권하거나 비상금도 없는 사람에게 장기 보험 상품에만 몰빵을 시키는 건 흔한 사례다. 간혹 저소득층을 상담하다 보면 기초생활 수급비 70만 원으로 생활하는 사람에게 질병에 대한 과한 공포심을 유발해 보장성 보험에만 30만 원 가량을 가입시킨 사례도 접한다. 재무상담 현장에는 이미 금융상품 판매와 연결되어 있는 내용이 주를 이루면서 객관적이기는커녕 소비자들로 하여금 재무관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까지 심어주고 있다.

포괄적 재무상담 받았다면, 서브프라임은 없었다

숫자만으로 상담하는 재무상담사들은 의심부터 해봐야 한다. 사진은 한 은행의 주택청약종합통장. ⓒ 남소연


본래 개인의 재무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적절한 정보 제공과 전문가에 의한 조언은 대단히 중요하다.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예일대 경제학 교수 로버트 쉴러는 전 국민을 위해 포괄적 재무상담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해법을 내놓고 있다. 그는 '서브프라임 위기가 발생하기 전 저소득자들이 주택을 구입할 때 포괄적인 양질의 재무상담을 받았더라면, 믿을 수 있는 재무 상담 전문가로부터 일대일 재무상담을 받았더라면 서브프라임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포괄적 재무상담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그는 포괄적 재무상담의 전제조건으로 금융상품 판매 커미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만큼 정부의 충분한 재정 보조를 강조한다. 판매 커미션에만 의존하는 재무상담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재무상담의 대부분이 금융사에서 이뤄지거나 금융상품 판매 커미션에만 의존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균형잡힌 재무상담 서비스는커녕 재무상담 받으려다 보험이나 펀드 상품에 과도하게 가입해버리고 마는 경우가 허다해지는 것이다.

한번은 모 은행에 가서 은행원을 대상으로 재무상담 전문가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여러 프로그램 중 일부를 맡아 진행하면서 그 은행의 재무상담 솔루션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자녀 교육비 마련은 장기 주택 마련저축으로 은퇴준비는 변액보험으로 그리고 내집마련은 레버리지(부채를 이용한 투자)를 이용하라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금융자산은 해당 은행의 장기 상품에 올인하고 집은 빚내서 사라는 해결안이다.

이 정도면 재무적 문제를 해결해주기는커녕 가정 경제를 더한 위험으로 내모는 것일 수밖에 없다. 판매를 위한 고육지책이라지만 금융 전문가라는 대중의 신뢰를 생각하면 속보이는 정도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다.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전문가의 조언에 대해 의심이나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결정내리는 것은 어렵고 믿을 만한 전문가는 없고 헷갈리는 정보들만 여기저기 난무하는 환경으로 인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커녕 재무적 무력감에 빠지는 것이다.

재무적 무력증, 투기적 유혹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저축을 위한 가장 좋은 이자율이나 가장 저렴한 대출, 가장 적절한 금융상품 등을 찾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을 재무적 무력증이라고 한다. 과도한 채무를 지고 있거나 미래에 대한 극단적인 불안을 갖다 보면 이런 재무적 무력증에 빠질 위험이 있다. 재무적 무력증은 말 그대로 당장의 재정적 개선을 포기하는 것이다. 과도한 채무와 미래 불안은 반대로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어 큰 돈을 벌어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을 만들어 투기적 유혹에 노출시키기도 한다.

이런 재무적 무력증과 투기적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재정상황에 맞는 객관적인 조언을 지속적으로 해줄 전문가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대로 좋은 전문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재무상황이 개선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저런 상품만 가입한 것 같아 찜찜한 것이다.

과도한 상품 판매를 부추기는 상담이 아니라고 해도 문제가 전혀 없지 않다. 많은 재무상담사들이 상담시에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이나 현재의 재무상황에 대한 고려없이 필요자금만을 부각해서 상담을 한다. 더 나은 삶의 기준을 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많은 돈을 쓰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상담을 받고 나면 앞으로 수억이 필요하다는 말에 재무적무력감이나 투기적 속성을 통제하기는커녕 그것들을 더 키워버리기 쉽다. 이쯤 되면 상담을 아예 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 역시 현실의 재정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이다.

그것보다는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좋은 재무 전문가를 찾는 것이 더 현명하다. 여전히 균형잡힌 재무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정작 자신은 적은 소득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가난하지만 양심적인 재무상담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재정적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렇게 양심적인 재무상담사를 찾아 적절한 조언을 구할 수만 있고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면서 해당 가정의 주치의와 같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가정 경제 안정에 커다란 기여를 할 것임은 분명하다.

좋은 재무상담사임을 알려주는 몇 가지 기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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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전>의 한 장면. ⓒ (주)영화사 비단길


좋은 상담사를 찾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담내용이 펀드나 보험 등의 금융상품 설명에 치우쳐 있다면 좋은 재무상담사가 아니다. 필요한 금융상품을 권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재무상담의 시급한 과제는 재무구조 개선에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선택해야 할 신규 금융상품 가입권유가 상담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할 이유가 없다. 이자비용을 낮추는 개선안, 소득 감소에 대비한 비상자금 마련의 대책, 소비구조 개선 등의 내용이 충분히 다뤄져야 한다.

특히 주의할 것은 투자와 관련된 설명을 장황하고 어렵게 하는 전문가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재무상담은 어려운 금융지식을 공부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일반적인 가정경제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상품을 가입할 필요 또한 거의 없는데 굳이 투자 상담사와 같은 설명이 길어진다면 믿을만한 전문가는 아니다. 이런 저런 자격증을 과하게 늘어놓는 것도 좀 의심해볼 만한 모습이다. 본질적인 자신감이 부족할 경우 자격증으로 보충하려는 인간의 나약한 속성 때문이다.

둘째, 가정의 예산수립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저축여력을 늘려주어야 한다. 이 때 단순히 생활비를 많이 쓰니 줄이라는 상담사는 피해야한다. 식비, 외식비, 통신비 등 각 지출 내역별로 그 가정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원칙을 세워주며 효율적인 재정적 의사결정 기준을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알아서 소비 줄여라'가 아니라 소득의 재분배를 효과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가정이 소비를 무조건 줄이기만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다. 줄일 것과 더욱 적극적으로 예산을 배정해야 할 항목 또한 적지 않다. 같은 돈으로 더욱 행복하게 쓸 소비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전문가의 몫이다. 그 과정에서 가족의 구체적인 필요와 욕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상담 전문성 또한 고려해야 한다. 한마디로 상담 과정에서 전문용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에 얼떨결에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과 전문성을 전제로 한 소통능력에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숫자만으로 상담하는 이들은 의심부터 해보자

셋째, 부채상환에 있어서도 상환방식이나 기간 등을 조절해서 저축여력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무조건 부채부터 갚으라거나 반대로 빚도 자산이니 잘 활용하라는 상담은 재무적인 위험을 더 크게 만든다. 부채상환의 우선순위를 정해주고 부채상환 중에도 저축을 가능하게 해서 또 다른 부채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상담사를 만나야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과 관련된 자신의 속 이야기를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다면 그 상담사는 좋은 상담사일 가능성이 높다. 재무 상담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소비자의 경제적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고 경제적 갈등을 줄여주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이 만들어 내는 문제란 관계를 왜곡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만들며, 그 때문에 재무관리를 실패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재무상담사와의 상담 내용이 주로 숫자로 이뤄졌다면 그 상담사를 한 번 의심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재무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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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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