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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는 없다? 사랑 앞에 놓인 선생과 제자가 한 선택

[김성호의 씨네만세 724]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다시 보다: 25+50' <사랑니>

24.05.19 12:34최종업데이트24.05.19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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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입맛에 맞춘 영화를 쏟아내는 영화판이라지만, 영화계엔 여전히 작가라 부를 만한 인물이 존재한다. 제 색깔이 묻어난 저의 이야기를 하는 존재들, 그들을 우리는 작가라고 부른다.
 
흔하고 흔한 방식으로 이놈이나 저놈이나 만들 법한 영화를 양산하는 이를 작가라 하지는 않는다. 저만의 세계관이며 인생관, 예술관이 선 작품을 만들어야 작가라고 불린다. 다양한 목소리가 경합하는 활력 있는 무대를 구축하려는 문화계가 작가를 우대하는 이유다.
 
한국 영화산업 가운데 작가다운 작가가 꾸준히 배출되고 있느냐 묻는다면 부정적인 답을 내놓을 밖에 없다. 산업은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마련, 영화산업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은 실정이다. 소비자인 대중이 원하는 작품, 그들에게 팔릴 만한 영화, 그런 이야기를 만들려다 보니 수많은 작품이 익숙한 장르, 전형적 공식을 되풀이하게 된다. 그 사이 작가주의라 불릴 법한 영화는 상영관을 얼마 갖지 못한 채 차디찬 외면을 받을 뿐이다.
 

▲ 사랑니 스틸컷 ⓒ JIFF

 
전주영화제가 고르고 고른 4명의 작가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가 50주년을 맞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다시보다: 25+50' 특별전을 준비한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자리한다. 한국영화가 오늘의 영광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분투해온 지난 작가들을 기리기 위하여, 그들의 옛 작품을 선정해 상영하기로 한 것이다. 영자원과 전주국제영화제가 각 4편씩을 선정한 특별전에서, 영자원은 반세기 이상 지난 고전 영화 4편을, 전주국제영화제는 21세기 들어 만들어진 작품 4편을 선정해 눈길을 끌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오늘의 상영환경 가운데 다시 볼 만한 작품으로 꼽은 네 편은 오늘 한국영화계에서 입지를 다진 네 명의 작가의 작품이다. 봉준호, 류승완, 홍상수, 정지우가 그들로, 상영 작품은 '씨네만세' 앞선 편들에서 소개한 <플란다스의 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오! 수정>에 더하여, 오늘 소개할 <사랑니>가 되겠다.
 
<사랑니>는 정지우 감독의 2005년작 영화다. 함께 선정된 다른 세 편이 2000년에 나온 데 반해 5년 뒤 나온 영화를 선정했단 점에서 눈길을 끈다. 다른 작품과 같이 2000년에 제작된 여러 작품 가운데 하나를 꼽는 대신, 이 영화를 꼽아야 했을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았다.
 

▲ 사랑니 스틸컷 ⓒ JIFF

 
파격적 데뷔, 6년의 기다림
 
아마도 관계자들이 선정하려 했던 것은 <사랑니>가 아니라 정지우라는 작가였으리라고 나는 짐작한다. 또한 그의 영화 가운데 한 편을 이 섹션에 묶기 위하여 먼저 그의 장편 데뷔작인 <해피 엔드>를 고려하였으리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른 작품보다 1년 앞선 1999년 작으로, 영자원이 20세기, 전주국제영화제 측이 21세기 영화를 선정한다는 취지에 맞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그리하여 두 번째 작품이며 작가적 성향만큼은 찾아볼 수 있는 <사랑니>를 선정했다고 본다.
 
정지우는 지난 세기말, 최민식과 전도연, 주진모가 주연한 <해피 엔드>의 감독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신예였다. 흥행이 어렵다 여겨졌던 치정극임에도 훌륭한 연기력의 배우진과 파격적 설정으로 칸 영화제 국제 비평가 주간에까지 초청될 만큼 화제를 모았다. 흥행 성적 또한 좋아서 정지우에게 탄탄대로가 깔려 있다는 인상을 남겼을 정도였다.
 
<사랑니>는 정지우가 무려 6년 만에 발표한 차기작이다. 흥행에 성공하고 예술성까지 인정받은 감독의 차기작이 이토록 오래 걸렸단 점이 이례적이어서 주목받았다.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과 편집까지 담당할 만큼 공을 들인 작품으로, 정지우의 작가적 색채가 고스란히 녹아들었단 평이다.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자리하는 <은교>의 여자교사 버전이라 해도 좋을 이야기가 그의 일관된 관심을 얼마간 보여주는 듯도 하다.
 

▲ 사랑니 스틸컷 ⓒ JIFF

 
제자를 사랑한 여교사... 금기 넘는 연애
 
주인공은 입시학원 수학강사 조인영(김정은 분)이다. 수려한 외모에 씩씩한 성격의 인영 앞에 어느 날 한 학생이 나타난다. 17살 고교생 이석(이태성 분)이 바로 그다. 인영은 이석에게 한 눈에 반한다. 이석이 제 첫사랑과 놀랍도록 닮았음을 느낀 뒤부터다. 심지어 이름마저 첫사랑인 이석과 같다. 이석은 인영에게, 또 인영은 이석에게 주체할 수 없는 끌림을 느낀다. 둘은 그들 사이 놓인 선이 보이지 않는 양 모조리 넘어버린다.
 
인영의 동창이자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정우(김영재 분)와 미국에서 돌아온 옛 이석(김준성 분)이 이들 사이에 개입하며 이야기는 그야말로 좌충우돌로 흘러간다. 상당한 나이차가 있는 남녀, 또 학생과 제자라는 신분, 미성년자라는 사회적 금기까지 이들의 관계를 제약하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이 도리어 흥분의 요소이기라도 한 듯 서로를 향한 둘의 마음은 불 타 오른다. 정우와 옛 이석이 보이는 태도 또한 충분히 있을 법한 것이어서, 남과 여의 미묘한 감정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면모를 관객 앞에 끌어낸다.
 
<사랑니>를 선정한 전주국제영화제 관계자는 "<은교>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그런 작품일 텐데, <사랑니> 같은 경우 <은교>와는 좀 반대되는 입장"이라며 "여선생과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의 사랑이야기, 그런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는 점에 있어서 굉장히 주목할 만한 영화라고 본다"며 추천의 이유를 밝혔다.
 

▲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JIFF

 
오늘의 영화를 더 애정하는 방법
 
필름으로 촬영한 작품을 디지털화해 4K로 화질을 올려 공개하는 리마스터링 작업이 진행된 것도 인상적이다. 이미 리마스터링이 이뤄진 바 있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제외하고 남은 세 작품 모두 처음으로 4K 디지털화 작업이 진행된 것이다. 영자원의 이 같은 작업은 시간이 흘러 옛 것이란 인상이 남은 작품을 조금이라도 친숙하게 오늘의 관객 앞에 선보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는 또한 영화제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일과 마주 닿아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25년 전만 해도 홍상수, 봉준호, 류승완, 정지우 등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이들이 오늘과 같은 지위에 있지 않았다. 팬들은 이로부터 그들이 아직 날 것 그대로의 가능성을 움켜쥐고 있던 시절의 작품을 새로이 만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이는 자연히 오늘의 전주국제영화제에 공개된 작품들, 또 그를 만든 작가들을 돌아보게끔 한다. 이들 중 누구는 훗날 한국영화계, 나아가 세계영화계에서 주목받는 거장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오늘의 네 감독처럼 그들을 기리는 특별전이 진행될 수도 있다.
 
이러한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영화제가 한층 풍요로워질 수 있으리라고 여긴다. 분명 오늘의 한국 영화계에도 새로이 얼굴을 들이미는 주목할 만한 작가가 있을 것이란 믿음을 나는 아직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JIFF 사랑니 정지우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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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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