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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신천의 잉어. 어른 팔뚝만한 잉어들이 지천으로 널렸다.
 대구 신천의 잉어. 어른 팔뚝만한 잉어들이 지천으로 널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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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신천에는 많은 잉어들이 살고 있다. 도심 하천에서 어른 팔뚝만한 잉어들이 유유히 노니는 광경은 그 자체로 진기한 볼거리로서 대구 신천만의 독특한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잉어들이 이렇게 많이 불어난 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벌써 아주 오랜 세월 신천은 잉어들 세상이다.

물론 피라미나 돌고기, 꺽지, 수수미꾸리, 참붕어 같은 덩치가 작은 우리 고유종 물고기도 많이 있지만 잉어에 비할 바는 아니다. 가히 대구 신천은 잉어들의 영토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잉어들이 많이 산다. 그래서 봄만 되면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잉어들의 '산란춤'이 사라진 대구 신천 왜?

바로 그 덩치 큰 물고기인 잉어들의 '구애 행동' 즉 산란을 위한 몸부림을 보게 되는 시절이다. '산란춤'이라고 불리는 잉어들의 요란한 몸짓으로 시끄러운 것이 이맘때 신천의 진면목이다.
 
▲ 신천 잉어들의 요란한 산란 춤 ... 우리는 산란 중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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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24년 봄 지금의 신천에는 잉어들의 요란한 구애 행동은 온데간데없고 침묵만이 감돌았다. 아니 잉어들의 요란한 산란 춤사위가 뿜어내는 경쾌한 물장구 소리 대신에 중장비의 소음만이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봄철은 잉어와 오리 같은 조류의 산란철이라는 것은 신천을 자주 찾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상식이다. 이맘때 신천을 거닐다 보면 왕왕 목격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잉어들이 요란한 춤사위가 잦아들면 흰뺨검둥오리 같은 텃새들이 어느새 새끼들을 대동하고 신천을 산보하는 장면 또한 왕왕 목격된다.

산란의 몸부림으로 분주한 이맘때 대구시에서 하천 준설공사를 감행하는 모습을 26일 목격했다. 신천의 상류 가창교에서 하류 침산교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었고 공사 기간도 4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로 되어 있었다.
 
대구시가 대구 신천에서 물고기와 오리들 산란철인 이 봄에 용감하게도 하천 준설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대구시가 대구 신천에서 물고기와 오리들 산란철인 이 봄에 용감하게도 하천 준설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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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혹시 필자가 잘못 이해하고 있나 싶어 어류학자인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 채병수 박사에게 관련 사항을 물었다. 

그는 "지금이 딱 어류들의 산란철이다. 잉어들은 주로 물가 가장자리 수초 같은 곳에 산란하고 돌고기나 참붕어 같은 어종들은 물속 자갈에 산란한다"라며 "지금 하상 준설공사를 하는 건 상식에 어긋하는 행위다. 어류들을 산란을 못하게 막는 행위로서 비상식의 극치의 행정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즉시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리 같은 텃새 조류들의 처지도 걱정이 돼 서산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조류 전문가인 김신환 원장에게 문의했다. 그 역시 "지금이 오리 같은 텃새들의 산란철로서 하천 안의 습지 즉 풀밭 같은 곳에 알을 낳는 산란철이기에 이런 때 하천에 그나마 남아 있는 하중도나 작은 둔치 같은 곳을 준설해버리면 이들이 산란할 곳이 없다"라며 "이들의 생태에도 엄청난 교란 요소가 된다. 대구시는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용감한 행정을 하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서 준설공사?... 생명질서의 파괴
 
산란펄인 이 봄에 하천 준설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대구시. 도대체 상식이 없는 대구시가 아닐 수 없다.
 산란펄인 이 봄에 하천 준설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대구시. 도대체 상식이 없는 대구시가 아닐 수 없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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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들이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는 공간인 둔치도 모두 밀어버렸다.
 오리들이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는 공간인 둔치도 모두 밀어버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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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사의 주체인 대구시 도시관리본부 하천관리과에 전화를 해서 도대체 준설공사를 감행하는 이유를 물었다. 담당 주무관은 "준설을 하면 그동안 쌓인 퇴적토를 준설하기 때문에 하천이 깨끗해지고 유수의 흐름을 개선해주기 때문에 준설공사를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준설을 하면 홍수가 예방된다는 근거에 대해 물었더니 "지난여름 홍수기에 하천 둔치로 강물을 올라온 것들을 담은 보고서가 있다. 그것을 보여줄 수 있다" 면서 "이번 공사는 국가로부터 재난교부세를 받아서 하는 하천공사로 5년 동안 쌓인 퇴적토를 준설하는 공사인데 홍수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하는 공사"라 재차 해명했다.

이어 "산란철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공사를 하게 됐는데 앞으로는 조심하겠다. 그러니 지금 하는 공사는 공사 규모를 줄이고 신속하게 마무리해서 물고기 산란에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루속히 공사를 마무리하겠다" 대답했다.
  
신천에 살고 있는 자라. 둔치를 모두 밀어버리면 이들도 산란할 곳이 없어서 심각한 생태적 교란이 일어난다.
 신천에 살고 있는 자라. 둔치를 모두 밀어버리면 이들도 산란할 곳이 없어서 심각한 생태적 교란이 일어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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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미 하상을 긁을 대로 긁어버려 이미 상당한 교란 행위가 일어났는데 뒷수습이 가능할까? 수초들도 하루아침에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긁힌 바닥은 안정화가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결국 올해 물고기들은 산란을 못 하게 될 수 있고, 오리들 또한 새끼를 못 기르게 될 수도 있다. 거대한 자연의 질서가 깨어지는 것이다. 

하천은 특히 도심 하천은 물고기를 비롯해 새들과 그나마 남아 있는 야생동물들의 마지막 남은 서식처다. 그들의 집인 셈이다. 지금 대구시는 이들 야생동물들의 집을 심각하게 파괴해놓은 것이다. 대를 이어야 하는 그들의 가장 원초적 본능마저 거세시켜버리는 행위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채병수 박사는 "해결할 수 없다. 이미 수초들도 모두 사라졌을 것이라 잉어들이 알을 붙일 곳이 없다. 할 수 없이 다른 곳에 알을 낳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유실될 수밖에 없다. 결국 살아남은 개체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대가 끊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대구시가 내건 현수막에는 공사시간이 4월 1일부터 7월31일까지 명기돼 있다. 산란철이 정확히 들어 있다. 생태적 고려가 전혀 없는 무지의 행정이 아닐 수 없다.
 대구시가 내건 현수막에는 공사시간이 4월 1일부터 7월31일까지 명기돼 있다. 산란철이 정확히 들어 있다. 생태적 고려가 전혀 없는 무지의 행정이 아닐 수 없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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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매년 발생한다면 더 이상 신천에서 잉어를 볼 수 없게 될 가능성도 있다. 거대한 자연의 질서가 인간의 사려 깊지 못한 행위로 망가지는 셈이다.

이를 두고 김신환 원장이 말했다.

"치수사업 운운하면서 통수단면 넓힌다고 준설공사를 한다 하는데 통수단면 늘인다면서 둔치의 시설물들을 왜 그냥 두느냐? 그것들이 물 흐름을 더 방해하지 않나? 말이 안되는 논리로 하천공사를 하는데 그런 하천공사는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결국 하천을 직강화하는 것인데 이는 생명의 질서를 망치는 행위다. 강은 생긴대로 구불구불 흘러야 하고 그래야 그곳에 수생생물도 살고 물 흐름도 완화해줄 수 있다. 하천을 가급적 건드리지 않는 게 생명의 질서를 위해서나 근본적인 홍수피해도 줄이는 첩경이다. 그러니 하천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꼭 공사를 해야 한다면 산란철을 지나서 부분적으로만 허용돼야 한다"

 
▲ 신천의 물고기 .... 이렇게 많은 피라미가?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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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입니다.


태그:#대구신천, #잉어, #대구시, #준설공사,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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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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