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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중 교수
 김봉중 교수
ⓒ 김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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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그간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불렀던 러시아는 지난 22일부로 '전쟁'이라고 명명했고, 같은 날 러시아 모스크바 총격 사건으로 6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실 이 전쟁의 배경을 살펴보면 그리 단순하지 않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2022년 2월 24일이었지만 그 갈등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54년 소련의 크림반도 양도를 그 시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선 두 민족 간의 길고 복잡한 서사를 알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원인과 배경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종교의 탈을 쓴 권력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또 어떤가. 이 전쟁의 씨앗을 찾으려면 기원전 3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인류는 끊임없이 갈등과 반목을 계속해왔다. 그래서 세계사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전쟁을 알아야만 한다.

최근 출간된 김봉중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의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전쟁사>는 인류의 삶을 바꾸고, 사회 시스템을 바꾼 18개의 전쟁을 다룬다. 기원전 499년에 벌어졌던 페르시아 전쟁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까지 그야말로 유구하고 방대한 전쟁의 서사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이 책에서 김봉중 교수는 "전쟁사는 인문학의 영역이고, 인문학은 인간의 이해에 치중하는 학문이므로 역사적 교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전쟁사>는 설득하지 않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세계사에 깊게 아로새겨진 전쟁의 원인과 과정과 상흔을 보여줄 뿐이다. 참혹한 전쟁의 현장으로 읽는 이를 붙잡아 끌고 들어가되, 그 속에서 무엇을 찾고, 느낄지는 오직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이런 서술을 통해 김봉중 교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전쟁, 인간 모습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프리즘"

지난 22일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전쟁사>의 저자 김봉중 교수를 만났다. 나는 이 인터뷰를 통해 그가 이 책에서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 여백을 채우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고 다만 역사의 소용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 우선 원론적인 얘기를 먼저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역사, 그중에서도 전쟁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사를 통해 인류의 과거 행적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명확한 사실 하나는 인간의 삶에 갈등과 싸움은 피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런 갈등과 싸움에는 인간의 욕망과 광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전쟁사입니다. 국가든 민족이든 큰 묶음으로 발생하고, 인류에도 너무나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비극이죠. 하지만 동시에 전쟁은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국민국가와 국제법이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과거의 먼 옛날얘기가 아니라 현재도 진행 중이며 여기에는 우리나라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결국 전쟁이 벌어지는 원인과 수습과 그 영향을 파헤치는 건 인간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프리즘이 될 수 있습니다."

- 최근 출간한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전쟁사>는 어떤 책인지 저자가 직접 소개해주신다면요?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부터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전쟁까지 세계사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18개 전쟁을 선별해 경제, 문명, 내전, 종교 네 영역으로 나누었습니다. 단순히 전쟁의 개요를 서술했다기보다 전쟁의 배경과 과정을 독자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풀어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제가 어떤 결론을 내기보다는 전쟁을 통한 메시지와 교훈을 독자들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쟁을 통해 지금 우리의 모습을 한 번쯤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류 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전쟁은...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전쟁사> 표지이미지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전쟁사> 표지이미지
ⓒ 빅피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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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서는 이 책을 역사학자라기보다는 인문학자로 썼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인문학의 종류에는 흔히 문-사-철 즉 문학, 역사, 철학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학과 철학과는 달리 역사는 논란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역사는 제대로만 보면 인간의 욕망과 야망 그리고 갈등이 담겨 있는 만큼 문학과 철학과도 공동 선율을 자아내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역사 또한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인문학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선 안 됩니다.

그런데 역사가 과거에 대한 정확한 답을 제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역사를 기록과 자료에 근거하는 과학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들먹이며 특정한 사람, 민족, 종교,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죠.

저는 역사를 통해 인간사의 해법이나 정답을 찾으려는 태도를 경계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역사를 멀리하게 만들고, 역사를 불편한 존재로 느끼게 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어떤 정답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인간의 커다란 욕망과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전쟁사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와 집단의 광기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변화를 동반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 이 책에는 기원전 499년의 페르시아 전쟁부터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방대한 스토리인데요. 그중에서 현재의 인류 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전쟁을 꼽는다면요?

"하나만 꼽는다는 게 어렵긴 합니다만, 그래도 꼭 꼽아야 한다면 역시 2차 세계대전이지 않겠나 싶습니다. 우선 우리나라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고, 세계 문명의 주도권이 유럽, 특히 영국 중심에서 미국 중심으로 바뀌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악마로 기억될 아돌프 히틀러라는 존재가 시사하는 바도 큽니다. 전쟁을 벌이는 것은 결국 사람인데 그중에서도 독재자, 즉 권력을 갖는 사람에 의해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결론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가 겪었던 재앙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모델이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벌어진 많은 재앙의 압축판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됩니다."

- 선생님께서는 히틀러에 대해 "히틀러라는 개인보다 민주주의라는 허울 속에서 히틀러를 선택한 독일 민족 전체의 악마성에 주목한다"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지 좀 구체적으로 풀어 주신다면요?

"히틀러가 벌인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은 모든 역사를 통틀어서도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재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왜 이런 비극을 일어나게 했을까요? 이 질문은 희생 당사자인 유대인은 물론 인류 전체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히틀러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역사는 운명론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런 악마가 또 등장한다면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지요. 결국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히틀러라는 악마를 탄생시킨, 적어도 악마의 등장을 막지 못했던 독일 민족 전체에 주목해야만 합니다.

비극적이게도 현재라고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도 그렇고, 유럽 곳곳에도 극우 세력이 준동하고 있죠. 우리 사회, 우리 일상에서도 작은 독재자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전쟁사>를 통해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지를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꼭 국가와 민족 간에 벌어진 전쟁이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전쟁 이야기로 치환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늘 희망과 절망을 왔다 갔다 한 인간의 역사"

-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2000만 명이 사망하는 원시적인 대재앙이 벌어졌는데, 그로부터 불과 25년 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러·우 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개인적으로 제가 미래학자나 정치학자가 아니라 역사학자라서 이런 질문을 좀 피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왔는데(웃음) 이번에는 피하지 못하겠군요.(웃음) 사실 미래를 전망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일단 역사학자답게 역사적으로 좀 살펴보겠습니다. 러·우 전쟁을 제1차, 2차 세계대전과 비교해서 보면 같은 점과 다른 점이 각각 있는데 이를 통해 어느 정도는 미래에 대해 조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보면 민족주의 정서가 팽배한 가운데 위험하게 엮인 동맹 관계가 주요한 배경이었습니다. 이런 배경 아래에서 아주 단순한 사건 하나가 벌어졌는데, 그게 결국 세계적인 전쟁으로 확산되고 말았죠. 러·우 전쟁 또한 근 본적으로는 이런 민족주의적인 정서가 분명히 있습니다. 오랜 민족 간의 묵은 감정이 중요한 배경이 되는 만큼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또 제2차 세계대전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역시 제1차 세계대전의 연장선으로서 제국주의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제국주의를 정치·경제·외교·문화 등에서 힘이 강한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러·우 전쟁 또한 제국주의로 설명이 가능하죠. 다시 말해 이 전쟁이 제1차, 2차 세계대전처럼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습니다. 이 전쟁은 집단 대 집단, 동맹국 대 동맹국의 구도가 아니라 러시아라는 하나의 국가와 나토라는 동맹 체제와의 군사적 대결인 셈인데 역사적으로 이런 경우가 흔치 않았습니다. 만약 러시아가 나토를 압도하거나, 적어도 대등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시 무시하지 못할 변수는 독재자 푸틴이라는 개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전쟁은 유럽, 나아가 세계 전체의 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필요한 건 전망이 아니라 하루빨리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모든 인류와 국가가 지혜를 모으고,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1월 8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에 재차 공습을 가해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지역의 즈미이브 마을이 파괴되었다.
 지난 1월 8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에 재차 공습을 가해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지역의 즈미이브 마을이 파괴되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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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들 역사에서 희망을 찾는다, 역사에 답이 있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전쟁사>를 보면 인류에 희망 따위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웃음). 선생님은 어떠신지요? 역사 속에 인류는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진다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의 역사를 보면 늘 희망과 절망을 왔다 갔다 합니다. 결국 인간이 변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는데, 안타깝게도 인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쟁은 반복되지요. 다만 저는 그럼에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보는데, 대표적으로 교육을 들 수 있습니다. 인종이든 민족이든 종교든 이데올로기든 다름과 다양성에 관한 이해를 조금씩 높여가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니까요.

역사라는 관점으로 보자면 저는 역사가 인류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고, 절망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를테면 절망적인 전쟁사를 공부하면서 좀 더 많은 이들이 '인간이 지향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 역사는 희망이 될 것이고, '내가 보는 역사는 맞고 당신이 보는 역사는 틀렸다'라는 관점으로 역사를 대하면 절망이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역사에 희망이 있다기보다 역사가 인문학의 본류에 들어올 때 비로소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전쟁사 - 수천 년 세계사의 흐름이 통째로 이해되는

김봉중 (지은이), 빅피시(2024)


태그:#요즘어른을위한최소한의전쟁사, #전쟁, #전쟁사, #역사, #김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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