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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은 뭐하는 사람이었지?"
"술집에서 술 따르고 노래하는 여자였죠."


기생(妓生)은 뭐 하는 사람이었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최근에 만난 한 20대 청년의 답변이다. 놀라운 것은 중장년층 지식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 그동안 만난 사람의 7~80%가 권번에서 어렵게 기예를 학습한 '생짜기생'을 요릿집(料亭) 종업원쯤으로 알고 있었다. 특히 성매매가 목적인 유곽(遊廓)과 기생들이 전통 가무를 연행했던 요정을 동일 선상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많았다.
 
전시장에 걸린 군산소화권번 예기들 단체사진(1939)
 전시장에 걸린 군산소화권번 예기들 단체사진(1939)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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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역사의 매듭은 오랜 시간 상처를 남긴다'는 말이 있다. 필자는 왜곡되고 굴절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래전부터 기생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후 군산의 마지막 기생 두 분(장금도, 김난주)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함께 여행도 하고, 구술집도 만드는 등 그들의 삶을 정리하였다.

왜곡과 편견 하나라도 바로잡겠다는 각오로, 기생들 삶을 추적하기 시작하였다.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취재에 들어갔던 것. 그 과정에서 군산의 권번과 기생들이 국내 최초로 노동연맹에 가입한 사실 등 귀한 콘텐츠를 다수 발굴했다. 이후 다큐 영화 <기생, 꽃의 고백>(2018)과 <기생은 기생이 아니다>(2023)에 주연으로 출연했으며, 책(<군산 해어화 100년>)도 출간했다.
  
필자가 출연했던 다큐영화 <기생은 기생이 아니다>의 궁중연회 장면
 필자가 출연했던 다큐영화 <기생은 기생이 아니다>의 궁중연회 장면
ⓒ 미디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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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기생(관기)은 왕조시대 궁중 진연이나 지방관청 행사 때 가·무·악을 담당했던 여악(女樂)을 일컫는다. 그들은 전통 예인(藝人)으로 관청의 기적(妓籍)에 등록되어 국가에 의해 체계적으로 관리되었다. 나라가 혼란스러웠던 조선 후기에도 기생들은 여악의 전통을 이어받은 예인으로 법적, 정책적으로 인정받는 존재였다.

일본 가고시마국제대학 이노우에 가즈에(井上和枝) 교수는 "조선 기생의 사회적 위치와 자기 변혁 등을 연구하면서 조선 기생은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였고,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나타내는 기생도 존재했음을 알았다"며 "그런 의미에서 조선의 기생은 신여성임과 동시에 근대 조선의 현대사를 말할 때 무시할 수 없는 존재"라고 평가했다(관련 기사: "기생 장금도 일생, 연극으로 만들고 싶어").

근거 없이 기록된 기생의 분류 
 
대한제국 시절 교방사 소속 관기들(출처 한겨레음악대사전)
 대한제국 시절 교방사 소속 관기들(출처 한겨레음악대사전)
ⓒ 한겨레음악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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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자 이능화는 1927년 자신이 쓴 <조선해어화사>에서 신라시대 원화(源花·화랑의 전신)가 기생 제도의 본류라고 정의한다. 이어 '제35장 갈보종류총괄(蝎甫種類總括)'에서는 '기생=갈보(매춘부): 기생(일패), 은근자·은군자(이패), 탑앙모리(삼패)'로 분류하였다. 이는 어디에 근거를 뒀는지 밝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조선 기생을 세 종류(일패·이패·삼패)로 나눠 매춘부에 포함시키고 있다.

또한 '김유신과 천관녀 일화'를 인용하며 '기생의 집(倡家)'을 매음녀 집인 '창가(娼家)'로, '아름다울 요(媱)'를 '음란할 음(淫)'로 바꿔 음방(淫房)이란 용어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이야기 주인공인 천관녀를 일제강점기 매소부(賣笑婦), 즉 창녀(娼女)로 왜곡시켜놓았다. 이는 이능화가 한반도 풍속은 물론 매춘사(賣春史)까지 왜곡, 변질시켰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이정남 일본 동경대학교 CBF연구소 소장은 지난 7일 통화에서 "이능화는 근대 사학자로 식민지시기 많은 연구와 저술을 남기는 등 한국 근대사 연구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라며 "그가 쓴 <조선해어화사>의 왜곡된 '기생의 정의와 분류법'은 어떠한 의심이나 반론, 구체적인 고찰·검증도 없이 모든 내용이 마치 정설인 듯 여과 없이 재인용, 재생산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대한제국 시절 관기(한국안내 스캔)
 대한제국 시절 관기(한국안내 스캔)
ⓒ 군산해어화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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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는 우리나라 기생 역사 왜곡의 시작이었죠. 다양한 왜곡 중 ▲ '화랑의 전신인 원화가 기생의 기원'이라는 설, ▲ '화랑은 동성연애자인 남색(게이)들이었고, 낭도들은 성을 밝히는 오입쟁이였다'는 설, ▲ '기생 종류의 일패, 이패, 삼패' 설 등이 대표적입니다. 현존하는 기생관련 최초 기록은 고려 중기(994년) 이며, 최초로 확인된 기생은 1100년대 진주 기생 '월정화(月精花)'로 나타나거든요.

또한, '일패'라는 단어는 우리나라 기록에서 단 한 건도 발견된 바가 없고, 우리는 기생·관기라고 불렀는데, 일본인들만 1901년 쓰네야 세이후쿠에 의해 '일패'를 사용하기 시작했지요. 그때도 우리는 독도, 동해라고 했고 일본인들은 다케시마, 일본해라고 불렀는데요. 지금도 일패, 다케시마, 일본해 등의 역사 왜곡과 억지 주장이 반복되고 있어 우려를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 소장은 '기생의 정의'에서 다양한 학술적 오류가 발견되고 기생의 분류(일패 기생, 이패 은근자·은군자, 삼패 탑앙모리) 역시 조선 시대 기록에 없는 역사 왜곡이라며 <조선해어화사>, <조선개화사>, <조선풍속집> 등을 한국 기생 역사 및 기생 이미지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시킨 대표적인 3대 문헌으로 꼽았다.

논문에 따르면 이능화는 1993년 역사문제연구소 이이화 소장에 의해 친일행적 문제가 처음 제기된다. 이어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고 4년 후인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규명됐다. 또한, <조선개화사>(1901)를 쓴 쓰네야 세이후쿠는 '식민지 정치인'이었으며, <조선풍속집>(1914)을 쓴 이마무라 도모는 일제 경찰 관료였다. 두 일본인은 기생 연구자도 역사학자도 아니었다.
  
이능화의 친일 반민족 행적은 매우 다양하며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라는 게 이 소장 설명이다. 이능화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 통치 정책에 협력하여 포상 및 훈장을 받거나 식민사관에 입각한 왜곡된 <조선사> 편찬에 단순히 참여한 정도가 아니었으며, 다양한 루트와 활동을 통해 친일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식민지 시기 대표적인 반민족 행위자였다는 것이다.

"이능화의 '친일 반민족 행적'은 1939년(당시 71세) 자신이 지은 한시(漢詩) <황화만년지곡>에서 정점을 이룹니다. 그는 시에서 일제의 조선 침탈을 미화하고, 일본 천황들을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존재들로 부각하고 있지요. 또한 '메이지(明治) 대제는 중흥을 이루어 앞길을 밝히시네!'라며 무력으로 조선을 개국시킨 '메이지 천황(睦仁)'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황화만년지곡>은 가사에 곡을 붙여 작품으로 만들어진다. 1940년 2월 경성 부민관에서 열린 '황기 2600년 봉축의 밤' 행사에서 이왕직 아악부의 신작 '봉축곡(奉祝曲)'으로 처음 공연된다. 공연은 매회 라디오를 통해 한반도 전역과 일본 본토로 중계됐다. 이는 일제의 전쟁 선전에 긴요하게 활용되었고, 양국 국민 뇌리에 깊이 각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왜곡된 기생의 정의 및 분류법' 바로잡아야
 
정장 차림의 조선 동기들(출처: 한국안내 스캔)
 정장 차림의 조선 동기들(출처: 한국안내 스캔)
ⓒ 한국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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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발표된 기생 관련 논문과 서적 대부분은 이능화가 쓴 <조선해어화사> 내용을 인용, 기술하고 있다. 모 학자는 이능화의 '기생 분류법(일패·이패·삼패)'은 조선 후기 들어 더욱 세분화 된다고 적었다. 하지만 '기생 분류법'은 조선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통설이고, 이정남 소장 또한 그렇게 주장한다.

이 소장은 "조선시대, 대한제국기, 식민지시기를 통틀어 조선왕조실록, 조선인 개인 문헌, 근대신문, 근대잡지, 관보, 공문서, 경찰 문서 등 지금까지 공개된 모든 '한국의 기록 및 사료' 에서 '일패'라는 용어는 단 한 건도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1924년 잡지 <개벽>의 '경성의 화류계'와 1927년 <조선해어화사>에 '일패=기생'으로 등장한다"라며 한마디 덧붙였다.

"<한국사>, <한국근대사>, <한국여성사>, <한국음악사>, <한국무용사> 등 '기생 관련 학계'를 비롯해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등 국공립기관의 웹사이트, 언론매체, 사전류, 그리고 각종 포털사이트 등에서 오랫동안 방치·묵인해 온 '재한 일본인들'과 '친일파 이능화'에 의한 '기생에 관한 왜곡된 기술', '기생의 정의 및 분류법' 등을 바로잡고 청산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정남 소장은 "1868년부터 1901년까지 '일본의 기록 및 사료' 속에서 '일패(一牌)'라는 용어는 단 한건도 확인되지 않았다"며 "후속 연구나 연구자들에 의해 더 이른 시기 '일패(一牌)'라는 용어와 '왜곡된 기생의 정의와 분류법'이 발견된다면 본 논문은 상당 부분 정정돼야 할 것이며 그러한 발견이 이뤄지기를 반가운 마음으로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참고문헌
<군산 해어화 100년>(2018), 한겨레음악대사전
이정남 일본 동경대학교 CBF연구소 소장 논문 4편
논문 1)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의한 기생사(史) 및 기생상(像)의 왜곡에 관한 연구Ⅰ- 이능화의 친일 반민족 행적과 신라시대의 왜곡을 중심으로_(2020년 2월)
논문 2)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의한 기생사(史) 및 기생상(像)의 왜곡에 관한 연구Ⅱ- 삼패(三牌)의 사회적 속성 변천과정 및 갈보(蝎甫)_(2020년 12월)
논문 3)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의한 기생사(史) 및 기생상(像)의 왜곡에 관한 연구Ⅲ-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_(2021년 12월)
논문 4) 「기생 및 창기에 관한 서류철의 해제(解題)와 '일제통감부의 공창제도 이식 준비단계'에 관한 연구-1908년 6~7월에 작성된 '창기(娼妓) 관련 서류들' 중심으로」-(2022년 12월)

태그:#기생의유래, #조선해어화사, #이능화, #역사왜곡, #이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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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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