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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세월호 참사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월호 생존자 중 한 명인 김동수 씨(파란바지의 의인이라고도 불리는)와 함께 세월호 참사 10년을 기억하며, 416챌린지를 펼칩니다. 4.16km이상을 걷거나 뛰고난 뒤 sns 등에 #416챌린지 등의 태그와 함께 인증사진을 올려주셔서 함께 힘을 실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기자말]
나름 소박하게 준비한 우리만의 작은 위로의 행사가 끝났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거나 수많은 인파가 북적이거나 화려한 조명은 없었지만 우리만의 작은 행사가 끝났다.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도, 행사를 준비했던 사람도 행사가 끝난 뒤 밀려오는 허탈감이나 막막함 같은 것이 밀려올 수 있다.

'이제부터 뭘 해야 하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한 주간의 행사가 끝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에게는 새로운 하루가 아닌 어제와 다르지 않은 또 하루가 시작된 것뿐이다.

여전히 그는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생존 피해자다. 그가 사회의 돌봄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런 그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앞에서 보여줬던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은 침몰해 가는 세월호 속에서 적어도 우리가 삶이라는 희망을 볼 수 있게 해줬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그의 외침으로 인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침묵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동수씨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의 기억하고 있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가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말주변이 좋은 것도, 글을 잘 쓰는 것도, 사람과의 관계를 잘 풀어가는 것도, 돈과 권력이 많은 것도 아닌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달리는 것을 통해 함께 달리는 사람들에게 세월호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사실 긴 거리를 달리는 동안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달리는 동안 함께 달리는 사람들에게 힘을 돋우기 위해 '파이팅'을 외치거나 격려의 말을 건네는 일은 있지만, 혼자 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고,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리는 동안은 긴 침묵 속에 앞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달리는 경우가 많다. 앞선 사람의 속도가 조금 늦다면 내가 앞서 가기 위해 앞으로 뛰어 나가기도 하고, 앞 사람의 속도가 나와 맞는다면 그의 속도에 맞춰 달린다. 나의 경우가 후자인데 나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사람을 찾아 그의 뒤를 따라 뛰면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달린다.
 
김홍모 작가가 디자인 한 기억의 길 티셔츠. 동백꽃, 주먹밥, 노란 리본과 아스팔트에 비친 검은 리본이 우리 사회의 참사를 말해준다.
 김홍모 작가가 디자인 한 기억의 길 티셔츠. 동백꽃, 주먹밥, 노란 리본과 아스팔트에 비친 검은 리본이 우리 사회의 참사를 말해준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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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김동수씨와 나는 티셔츠 하나를 만들어 뛰면 어떨까 생각했다.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달리는 사람들.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 달리는 길.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달리는 길을 '기억의 길'이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다. 그리고 기억의 길이라는 이름의 티셔츠를 맞춰 입고 달리기로 했다. 김동수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홀-어느 세월호 생존자의 이야기'라는 웹툰으로 그려낸 작가 김홍모 작가에게 '기억의 길' 이미지를 부탁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억의 길'에 꼭 들어갔으면 하는 이미지로 4.3사건, 5.18광주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 그리고 이태원 참사를 부탁했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대표적 국가폭력과 학살, 참사가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채 이어져오고 있고, 그 이어짐에는 역사라는 거대한 길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바람을 김홍모 작가는 오롯이 그림에 담아 표현해줬다. 

티셔츠가 제작돼 받았을 때, 처음으로 김동수씨의 바람을 담은 디자인이 담긴 티셔츠를 받았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티셔츠를 받은 김동수씨는 곧바로 티셔츠 사진을 올렸다.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이거 입고 뛰어봐야지."

그는 5월 6일 열리는 마라톤 행사 링크를 보내왔다.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이미지로 담은 그리고 그 이미지를 담은 티셔츠를 입고 사람들 앞에 서고 싶은 김동수 씨의 마음을 알 수 있기에, 주저하지 않고 대회 참가 신청을 했다. 참가한 마라톤 거리는 10km. 속도경신이 아니라면 무리하지 않고 뛸 수 있는 거리였기에 마음 또한 한결 가벼웠다. 
 
여의나루역사 안에서 달리기 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김동수 씨
 여의나루역사 안에서 달리기 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김동수 씨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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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당일이었던 5월 6일 아침, 여의나루역에서 김동수씨를 만났다. 대회가 열리는 때는 5월이었지만, 새벽부터 굵은 비가 내리고 있어, 기온이 섭씨 10도 아래로 매우 쌀쌀한 날씨였다. 김동수 씨와 나는 역사 안에서 복장을 갈아입고, 준비운동을 했다. 비가 오는 날씨임에도 젊은 참가자들이 엄청났다. '버닝런'이라는 대회 명칭만큼이나 열정적인 참가자들의 모습에 우리도 덩달아 기운이 났다.

대회시간이 가까워져 준비한 우의를 입고 역사를 빠져나와 출발지점으로 이동했다.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졌고, 체온은 급격히 떨어졌다. 출발 소리와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갔다. 좁은 한강도로로 인해 많은 인파가 출발지점을 빠져나갈 때 적지 않은 혼잡이 발생했다. 가능한 다른 참가자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좁은 도로와 더불어 또 하나의 복병은 도로바닥이었다.

이미 밤새 내린 비로 인해 도로는 그야말로 물바다였다. 도로를 달린다기 보다는 얕은 천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마라톤 운동화는 일반 운동화에 비해 천이 얇고, 통풍을 위해 촘촘하지 않는 재질을 사용한다. 그래서 빗길을 달릴 때면 일반 운동화에 비해 더 빨리 물에 젖는다. 젖은 운동화를 신고 뛰는 것은 달리는데 조금 더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우의를 입고 달리다보니 습기로 인해 결국 3km 지점에서 벗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옷도 모두 젖어버렸다.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빗길의 대회는 다른 어떤 대회보다도 힘든 조건의 마라톤 대회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김동수씨와 나는 너무도 즐거웠다.

중간 중간 들려오는 '길' 파이팅이라는 응원소리가 무엇보다 힘이 났다. 결국 우리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지켜봐 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가 달리기 위해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우리의 달리는 모습을 통해 그 너머의 이야기를 기억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을 달리는 동안 그 이야기를 보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그 응원에 김동수 씨와 나는 더욱 힘차게 발을 맞춰 앞으로 나아갔다.
 
강풍과 굵은 빗줄기에도 우리는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결승점을 사이좋게 통과했다.
 강풍과 굵은 빗줄기에도 우리는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결승점을 사이좋게 통과했다.
ⓒ 박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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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점을 통과한 후 비에 흠뻑 젖은 우리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10km를 달릴 때는 추위를 몰랐으나 결승점 통과 후 달리기를 멈추자 젖은 몸에 낮은 기온으로 급격히 추위가 몰려왔던 것이다.

서둘러 근처 사우나를 검색해 이동했다. 바람까지 몹시 불어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사우나에 도착하니 이미 그곳에는 먼저 온 참가자들이 가득했다. 서둘러 젖은 옷을 벗고 따뜻한 온탕에 몸을 담갔다. 사실 김동수씨는 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목욕탕 물에 몸을 담그지 못했다고 한다. 차가운 바다에 두고 온 아이들이 떠올라 한동안 물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그 세월호를 기억하는 길을 하나 만들어 달렸다고 생각하니 온탕 속에 담근 몸이 따뜻해져 왔다. 그리고 다음에 만들어갈 또 다른 '기억의 길'을 어디로 할지 온탕 속의 즐거운 수다는 오랫동안 계속 됐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소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그룹입니다.


태그:#파이팅챈스, #FIGHTINGCH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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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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