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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인천'을 더(More) 알아가다. 지금 발 딛고 선 도시, 살아가는 동네, 그 안의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인천 곳곳에 깃든 인천 사람 저마다의 삶과 기억, 숨은 이야기를 찾아 기록한다.[기자말]
'살아가는 바다'는 바다, 물고기 그리고 바다를 마시고 바다에서 살다 바다로 돌아갈 인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살아가는 바다'는 바다, 물고기 그리고 바다를 마시고 바다에서 살다 바다로 돌아갈 인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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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는 168개 섬과 바다가 있다. 축복이다. 민어, 조기, 홍어, 숭어, 농어, 광어, 밴댕이 등 갯벌과 모래펄을 품은 서쪽 바다엔 예로부터 사시사철 자연의 산물이 모여들었다.

바다는 물기 어린 삶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난 사람도, 꿈을 찾아 뭍에서 온 사람도 기꺼이 품에 안았다. 뱃사람들이 비바람 맞고 파고를 넘으며 낚아 올린 싱싱한 날것들은 오랜 세월 우리네 밥상 한편을 지켜왔다. 허기진 배와 마음마저 든든히 채워주었다.

"어부와 그들이 잡은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 문명도 없었다."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Brian Fagan)은 '바다와 고기잡이가 인류의 삶을 지탱하고, 어부들이 오늘 이 시대에 이르게 했다'고 말한다.

서쪽 바다에 가을이 왔다. 장마가 걷히고 여름 금어기도 지났건만, 바다 건너 나라에서 전해온 뒤숭숭한 소식에 '애써 잡은 물고기를 사람들이 외면하면 어쩌나' 어민의 주름이 깊어간다. 돌아보면 바이러스가 일상을 뒤흔들며 밀려들던 시간도 이겨냈다. 바닷가에서 태어나 평생을 배 위에서 버텨온 세월이 아니던가.

살아가는 바다는 바다, 물고기 그리고 바다를 마시고 바다에서 살다 바다로 돌아갈 '인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황금 물결 일렁이던 만선의 기억
 
백령도 진촌 바닷가, 척박한 바다 위 삶의 치열
 백령도 진촌 바닷가, 척박한 바다 위 삶의 치열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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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도 북리항(北里港)에서 배를 기다린다. 아득한 수평선 너머로 펄럭이는 깃발이 보인다. 민어잡이 배가 만선으로 출렁이며 집으로 오고 있다. 섬에는 같은 날 제사 지내는 집이 많다. 섬 아낙은 이제야 한시름 놓는다.

덕적도, 소야도, 문갑도, 선갑도, 굴업도, 백아도, 울도 등 덕적군도 섬의 근해는 풍요로운 바다 곳간이다. 그중에서도 덕적도 바다는 민어, 조기, 도미, 가자미, 새우, 농어 등 온갖 물고기로 황금 물결을 이룬다.

굴업도 바다는 민어와 조기 밭이었다. 1920년대 5·6월에 조기가 그득히 차고 7·8월에 민어가 차오르면 전라도, 충청도 등 전국 각지와 중국, 일본에서 온 고기잡이배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그러다 1923년 8월 불어닥친 태풍이 섬을 무참히 휩쓸었다. 바다로 간 수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굴업도가 지고 덕적도 북리가 '어업 전진기지'로 새롭게 떠올랐다.
 
소라방 주꾸미잡이 배 ‘길정호’의 삶의 현장
 소라방 주꾸미잡이 배 ‘길정호’의 삶의 현장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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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어머니의 품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덕적도 북리는 민어 파시로 흥청거렸다. 섬에 극장, 다방, 목욕탕, 당구장이 생겨났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돈을 따라 육지 문명이 흘러들어 '작은 인천'을 이뤘다. 민어가 하도 많이 나서 귀한지도 몰랐다.

"날씨 좋으면 동네 아이들이 소풍 삼아 고기잡이배에 따라 올라타곤 했어. 뱃일을 마치면 아이들 품에 커다란 민어 두세 마리씩 척척 안겨줬지."

강명선(81) 어르신은 1950~1960년대 섬에서 목선을 만들던 조선공이었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그날의 기억,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깊어져 간다. 온 세상이 변해도 바다는 그대로일 줄 알았다. "당시엔 금어기도 없이 안강망(鮟鱇網)으로 어린 물고기까지 깡그리 긁어모았어. 평생 물고기가 날 줄 알았던 게야." 그렇게 파시는 자취를 감췄다.
 
오늘, 정적이 흐르는 덕적도 북리항
 오늘, 정적이 흐르는 덕적도 북리항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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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민어잡이배로 북적이던 북리항
 1960년대, 민어잡이배로 북적이던 북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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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실으러 가세, 돈 실으러 가세. 연평 바다로 돈 실으러 가세. 연평 바다에 널린 조기. 연평 장군님 모셔 싣고 연평 바다로 돈 실러 가세." - 노동요 연평도 배치기소리

꽃게 어장으로 알려진 연평도는 우리나라 최대의 조기잡이 어장이었다. 1930년대 연평도에는 주민 1000여 명이 살았는데, 4월부터 6월 조기잡이 철이면 뱃사람과 상인 2만여 명이 모여들었다. 연평도 파시는 1968년 5월을 마지막으로 더는 열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바다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어귀엔 갯벌과 모래밭이 쌓여 해양 생명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준다. 멀리 서해 5도에 이르기까지 168개 섬이 보석처럼 박힌 바다는 힘차게 넘실거린다. 강화도의 선두어장과 장봉도의 만도리어장, 덕적도의 뒷면어장, 울도의 방우리어장 등 예로부터 풍요로운 바다엔 철마다 어선들이 고기 떼를 따른다.

강화도의 외포리·황산포, 교동도의 남산포 등 섬 포구엔 비린내가 진동하고, 화수부두·만석부두·북성포구·소래포구는 바로 앞까지 도시가 침범했는데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인천 바다는 여전히 날것 그대로 생명력 넘치고 바닷가 사람들은 부단히 오늘을 살아낸다.

바다의 황금시대는 끝났지만, 역사는 오늘로 남았다.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어업, 살아가는 일

일흔을 훌쩍 넘긴 어머니는 오늘도 물속 깊숙이 뛰어든다. 차디찬 바다에서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삶과 죽음 사이를 자맥질한다. "휘이, 휘이." 어머니가 바닷속에서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죽으러 들어가서 살아 나온다"라고 했다. 해녀라고 해서 바다가 어찌 두렵지 않으랴. 그런데도 기어코 바다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건, 그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서해 최북단에 오롯이 핀 섬, 백령도. 6년 전, 그 섬에서 김호순(75) 어르신을 만났다. 그는 제주 바다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되던 해에 외지로 물질을 하러 나섰다. 백령도에는 35년 전 즈음 왔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바다로 뛰어든 백령도 해녀 김호순
 ‘어머니의 이름’으로 바다로 뛰어든 백령도 해녀 김호순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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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전복이며 해삼이 쫙 깔린 거야. 거기에 반해서 내 여태껏 살고 있어."

일본 어민들이 제주 어장을 빼앗으면서 1900년대 이후 해녀들은 고향 밖으로 물질을 갔다. 우리나라를 넘어 일본, 중국, 러시아까지 바다를 찾아 떠났다. '출향 해녀'다. 1927년 문예지 <습작시대>에 실린 김동환의 시 '월미도 해녀요(海女謠)'는 인천 앞바다에 해녀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한다.

"아무리 바람 불고 물속이 캄캄해도 난 하나도 무섭지 않아. 물속에선 누구도 나를 따라올 자가 없어."

가난을 탓하지도, 지켜만 보지도 않았다. 척박한 환경을 기꺼이 끌어안고 평생을 스스로 나아갔다. 어머니는 해녀다.

1만 년 전 인간은 작살을 들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어로(漁撈)는 인간 삶의 역사와 궤적을 함께한다. 어민은 어업이 생업,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인 사람들이다. 운명과 육체의 고통 따위는 잊은 채 거칠고 걷잡을 수 없는 세계에 정면으로 맞서 살아간다. 심연의 바다가 그들 삶의 최전선이다.
 
전통 어로 방식 ‘소라방잡이’로 주꾸미를 잡는 ‘길정호’ 사람들
 전통 어로 방식 ‘소라방잡이’로 주꾸미를 잡는 ‘길정호’ 사람들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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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파도에 휩싸일지라도

아버지가 파도가 시퍼렇게 달려드는 바다 한가운데 버티고 섰다. 펄럭이는 깃발에 만선을 꿈꾸며 그물을 끌어 올린다. 건지는 것이 어찌 꽃게뿐이랴. 뭍에 있는 아내와 자식 얼굴이 떠오른다. 그가 낚아 올리는 건 삶의 '희망'이다.

새벽 세 시, 소래포구에서 닻을 올린 꽃게잡이 배 '삼영호'가 굴업도 인근 바다에 닿았다. '때'가 왔다. 뱃사람들이 쉬지 않고 그물을 걷어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길고도 힘겨운 시간이 이어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 거센 파도, 쏟아지는 빗속에 출렁거리는 배. 바다 위 '극한 직업'이 누군가에겐 일상이다.
 
거친 파도와 바람이 몰아쳐도 기어코 배를 타야 하는 것이 바닷사람들의 운명이다.
 거친 파도와 바람이 몰아쳐도 기어코 배를 타야 하는 것이 바닷사람들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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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 인근 바다에서 삶의 희망을 낚아 올리는 ‘삼영호’ 사람들
 굴업도 인근 바다에서 삶의 희망을 낚아 올리는 ‘삼영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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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석모도와 장봉도 사이에 있는 만도리어장. 아버지는 벌써 두 달째 집으로 가지 못했다. 새우잡이배는 뱃일을 한번 나가면 몇 달씩 바다에 머문다. 잡은 새우를 뭍으로 나르는 운반선이 세상을 잇는 유일한 통로다.

"격강천리(隔江千里)야. 육지가 가까이 있어도 닿을 수 없어. 새우 다 잡을 때까지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거지."

김칠성(68) 유신호 선장은 국민학교만 겨우 나와 먹고살기 위해 어부가 됐다. 살아온 삶에 후회는 없다. "몸뚱이 말고는 가진 것 없이 시작해 어엿이 내 배를 부리고 있어." 검게 그을린 얼굴에 희로애락으로 엮어온 세월이 순간 드리운다.

인천, 그 바다. 191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안강망 어업으로 황금 물결이 일렁였다. 생태 환경이 변하고 마구잡이로 그물을 던지면서 풍요롭던 바다는 메말라 갔다. 1970년대 이후엔 산업화의 거센 물결에 자리를 내어주고 검게 물들어 갔다.

배는 먼 바다로 바다로 나아갔다. 그 순간순간 바닷사람들은 바다의 들숨과 날숨에 호흡을 맞추며 함께해 왔다. 어장과 포구는 오늘도 삶의 터전이다. 엄마 몸에서 나던 비릿한 냄새, 지워지지 않을 삶의 향기가 그 안에 머문다.

바다와 맞닿은, 삶의 이면
 
신포시장 민어 골목 ‘경남횟집’의 제형남 대표. 숙성시킨 민어를 손에 들고 있다.
 신포시장 민어 골목 ‘경남횟집’의 제형남 대표. 숙성시킨 민어를 손에 들고 있다.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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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잡아 올린 싱싱한 날것으로 풍성하게 채운 밥상. 그 안엔 바다와 맞닿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한 그릇 뚝딱 맛있게 비우고 말기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서쪽 바다로부터 온 밥상에서, 땅이 아닌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삶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깊고 푸른 바다는 지구의 70%를 이룬다. 그 속을 유영하는 생명들은 자연이 선사하는 귀한 식재료다. 인류 문명을 시작할 때부터 인간에게 양질의 단백질을 아낌없이 내어 주었다.

그렇다면 수산물을 가장 즐겨 먹는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우리나라다. OECD 2020년 보고서에 의하면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한국이 58.4kg으로 세계 1위다. 인천은 더구나 바다의 도시가 아니던가. 바다와 갯벌에서 펄떡이는 생명들이 정성스러운 손길을 거쳐 오랜 세월 밥상 한편을 지켜왔다.
 
신포시장 민어 골목 ‘경남횟집’의 민어회
 신포시장 민어 골목 ‘경남횟집’의 민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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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는 귀한 생선이다. '백성 민(民)' 자가 들어가는 이름과 달리 조선 시대 임금과 사대부의 상에만 올릴 수 있었다. 덕적군도 바다에서는 1960년대까지 그물이 터질 만큼 많이 잡혔다. 하지만 자연환경이 달라지면서 그 많던 민어는 신안과 목포 남쪽 바다로 떠났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맛의 역사는 오늘, 신포시장 오래된 골목에서 이어지고 있다.

민어는 탕으로 끓여도, 회로 먹어도 그 맛이 일품이다. '민어의 꽃' 부레는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우며, 껍질은 또 그대로 쫄깃하고 고소하다. 뱃살은 담담하면서도 달짝지근 구수하다. 두툼한 민어 살이 묵직하게 입안으로 파고든다. 그 옛날 풍요로운 덕적 바다가 밀려든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주꾸미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주꾸미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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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위, 찬란한 행복

박대는 '민(民)'의 생선이다. 가자미목 참서댓과 생선으로, 몸이 납작하며 머리가 작고 눈이 한쪽으로 몰려 있어 '어머니에게 눈 흘기면 박대 눈 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못생겼다. 그렇다고 박대를 박대(薄待)할 수만은 없다. 섬사람들은 조기나 민어처럼 돈이 되는 생선은 육지로 내다 팔고, 흔하디흔한 박대로 밥상을 채워 살아갈 힘으로 비축했다.

생선 비늘과 껍질도 다 쓸모 있는 것이라며 박박 긁어모아 묵으로 만들어 먹었다. '벌버리묵'은 황해도에서 전해 온 서해 바닷가의 향토 음식으로 인천은 영종도, 무의도 일대에서 주로 먹는다. 집마다 그 빛깔이 모두 다른데 정성을 들일수록 맑고 투명하다.
  
무의도에서 난 박대와 ‘벌버리묵’의 재료인 박대 껍질
 무의도에서 난 박대와 ‘벌버리묵’의 재료인 박대 껍질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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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바다에서 잡은 젓새우, 배 위에서 바로 소금에 버무려 새우젓을 담근다.
 강화 바다에서 잡은 젓새우, 배 위에서 바로 소금에 버무려 새우젓을 담근다.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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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밥상 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물고기는 무엇일까? 어쩌면 젓새우다. 보이지 않게 다양한 음식에 스며들어 감칠맛을 낸다. 고유의 풍미도 짙다. 푹 삶은 부드러운 돼지고기 한 점을 젓새우에 찍어 먹는 맛이란. 그뿐인가, 기꺼이 다른 물고기의 먹잇감이 되어 거대한 바다 생태계를 움직인다. 과연 밥상 위의 숨은 강자다.

젓새우는 강화도 연간 어획량의 30%에 이른다. 특히 9월에서 11월, 가을에 잡히는 젓새우의 70%가 강화 어장에서 난다. 이 가을, 아버지의 새우잡이 '꽁당배'가 바다에 섬처럼 머물러 있으리라.
 
어업 중인 꽃게잡이 배 ‘삼영호’. 꽃게만 잡히는 게 아니다. 아귀, 농어 등 별게 다 걸려 올라온다.
 어업 중인 꽃게잡이 배 ‘삼영호’. 꽃게만 잡히는 게 아니다. 아귀, 농어 등 별게 다 걸려 올라온다.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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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 삼치, 가자미, 새우, 조기, 홍어, 숭어, 농어, 광어, 밴댕이. 인천 바다에는 예로부터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물고기가 모여들었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날것들이 삼시 세끼 밥상을 풍성하게 채웠다. 그저 밥 한술에 깃든 이토록 찬란한 행복이, 바다로부터 왔다.
 
방사능 검사 확대, 원산지 특별 단속 빈틈없이 실시

우리 시는 2021년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 시점부터 수산물 안전 관리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왔습니다. 먼저 시는 방사능 검사를 대폭 늘려 부적합한 수산물의 유통을 원천 차단합니다. 수산기술지원센터는 관내 양식장 및 위 공판장에서 생산된 수산물의 유통 전前 방사능 검사를 연말까지 200건으로 늘릴 방침입니다. '수산물 안심관리 마을' 시범사업도 추진해 양식장 방사능 검사를 면밀하게 진행합니다. 대형마트와 어시장에 유통하는 수산물을 검사하는 보건환경연구원은 연안부두에 수산물 현장검사소를 개소했으며, 지난해 280여 건이던 방사능 검사를 올해 600건으로 확대합니다. 이를 위해 시는 지난해 2대였던 방사능 검사장비를 5대로 확충하며, 지난해 292건이었던 검사 건수를 800건으로 늘리고, 검사 결과는 검사기관 수산기술지원센터와 보건환경연구원 누리집에 투명하게 공개합니다. 또 시료 채취부터 분석까지 모든 방사능 검사 과정을 시민이 직접 확인하는 참관프로그램을 운영해 불안감을 해소하고 신뢰도를 높입니다. 일본산 수산물의 원산지를 속여 유통하지 못하도록 특별 단속도 강화합니다. 위축된 수산물 소비심리를 해소하기 위해 명절 전통어시장 온누리상품권 할인행사, 다음달 수산물 직거래장터 할인행사도 지원할 예정입니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류창현 포토 디렉터

태그:#바다, #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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