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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설렘이다.
 첫날은 설렘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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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가게에 온 어떤 외국인이 대뜸 흥분된 표정으로 "First day in Korea!"(한국에서의 첫날이에요!)라고 하길래 "Welcome to Korea!"(한국에 온 걸 환영해요)라고 해줬더니 "Thank you!"(고마워요)라면서 좋아한다.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그가 느낀 벅찬 기분이 전달돼 나 역시 잠시나마 작은 흥분이 일었다. 한국 그리고 다국적 동네인 이태원에서의 첫날의 흥분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떤 시름도 잊을 만큼 벅차고 짜릿했을 것이다. 과거 외국에서의 나 역시 그랬으니까.

내가 해외에서 느낀 첫날의 짜릿함은 지금껏 딱 두 번이다. 바야흐로 1998년, 평생 헤어나지 못할 줄 알았던 한반도를 드디어 벗어나 난생 처음 캐나다 동부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인천공항은 생길 기미도 없던 시절의 김포공항에서 오전 11시 몇 분발 Canadian Airline에 몸을 싣고 토론토 공항에 내렸을 때도 오전 11시 몇 분이었고, 난 과연 여기가 김포공항인지 토론토공항인지조차 어리둥절했었다.

마중나온 외삼촌의 밴을 타고 토론토의 한 동네에 내린 후부터 난 급속히 벅찬 흥분상태에 돌입했다. 아... 이제 더이상 한국이 아니구나... 내가 진짜로 외국에 있구나... 그래서 외삼촌 댁에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밖으로 나와 제일 먼저 근처에 있는 토론토 공립 도서관을 둘러본 뒤, 마치 달나라에라도 온 듯한 흥분 상태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별세계'에서의 첫날의 환희를 만끽했다. 그땐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다.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나며 그 흥분은 점차 사그라들고, 귀국날이 가까워질 때쯤엔 여기가 캐나다인지 뭔지 별 느낌도 없이 그저 무미건조한 기분으로 미처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의무적'으로 방문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의례 그렇듯이, 막상 귀국한 뒤에는 한 달 가까이를 '캐나다 향수병'으로 고생하긴 했지만.

두 번째의 환희와 흥분은 5년 전 난생 처음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오는 동안 차창 밖으로 비친 '영국스러운' 풍경에 기분은 점차 고조되기 시작했고, 메트로 Earl's Court 역에 내려 밖으로 나오는 순간 마주친 런던스러운 풍경에 난 또 한 번 급속히 환희와 흥분상태에 빠졌다.

'아... 여기가 바로 런던이구나...'

그리고 숙소에 짐을 던져놓기가 무섭게 다시 지하철을 타고 간 '코벤트 가든'에서 기분은 절정에 다달았다. 사실 그 순간만큼은 그곳의 누군가가 이런 벅찬 기분을 알아주고 공감해주길 기대하지만, 대개 마주치는 건 고루한 일상에 박힌 지역 주민들의 영혼없는 표정뿐이었다.

그래서 난 한국에서의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보이는 이들에겐 가급적 그런 기분을 공감해주려고(혹은 그런 척이라도 하려고) 하는 편이다.

가끔 가게에 오는 후즐근한 차림의 배낭여행객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나 역시 과거에 당신들 나라에서 그런 모습이었지... 그곳에서 벅차고 설레기도 하고 때론 화가 나기도 했지... 지금 당신들에게 한국이 어떤 느낌일까... 아직도 벅차고 흥분되는지... 아니면 이제 웬만큼 익숙해져서 슬슬 지겨워지는지...

현재 여러 이슈들로 시끄럽고 혼란스러운데도 불구하고 참 이상케도 사람들은 점점 더 큰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오르는 이 나라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이라도 좋은 기억 듬뿍 쌓아가기를...


태그:#외국, #첫날, #이태원, #흥분,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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