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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유교의 영향을 받은 한학자답게 매우 엄격하셨고, 일을 하시는 시간 이외에는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부모님과 함께 교회(샌프란시스코 한국인연합감리교회)를 다니기는 했지만, 돌아가실 때(1940년)까지 다른 집안과는 달리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지 않다."

미국에서 태어나 90평생을 샌프란시스코와 인근의 레딩 지역에서 마취과 의사로 살아온 그였지만, 다른 발음은 몰라도 '독립운동'과 '동학운동' 발음은 한국인 만큼 정확하게 발음하는 그는 아버지 문양목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을 이렇게 회상했다.

아버지의 항일 독립운동 행적에 대해서는 교회를 다니면서 교인들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그. 그는 우리고장 애국지사인 우운 문양목 선생의 셋째 아들 윌리엄 문(93) 옹이다.

윌리엄 문 옹과 문양목 선생 부부가 함께 다녔던 연합감리교회는 당시 도산 안창호, 이대위 목사 등이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던 본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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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취재진이 연합감리교회를 방문해 확보한 샌프란시스코 한국인연합감리교회의 100년 역사가 한 권에 담겨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한인과 교회'(2003년,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 100년사 편찬위원회)에는 이러한 항일독립운동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특히, 100년사 속 문양목 선생은 교회 신도이면서 주일 한글학교 교사, 그리고 미주에서 발행된 한인 최초의 한글잡지이자 기독교 문서였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한인 이민사회를 이끌어간 지도자들의 신앙과 사상의 기초를 닦은 정신적인 초석이었던 <대도>에서 자신의 신앙과 사상을 담은 글을 발표하는 등 <대도>의 발간으로 기독교를 통한 민족의 희망과 활로를 찾는 글을 싣기도 했다.

이처럼 미주 항일독립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문양목 선생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했을 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와서도 인삼 등을 파는 한약방과 청소업체인 클리닝샵, 그리고 김 부라더스 농장에서 일을 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5년여 앞둔 1940년 12월 25일 사망하기 까지 우운 선생의 생활은 그리 녹록지 않았음을 윌리엄 문의 증언을 통해 재삼 확인할 수 있었다.

비행기로 10시간 이상을 날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뒤 다시 샌프란시스코에서도 230마일 떨어진 레딩에 승용차로 4시간여를 달려 마침내 만난 윌리엄 문 옹에게 아버지의 모든 기록이 담긴 문양목 평전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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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t's Great"

감탄사를 연호하며 한동안 평전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는 어느새 감격의 눈시울로 붉게 변해있었다. 잠시 동안 평전을 펼쳐보던 윌리엄 문은 "실로 대단한 책"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들고는 저자가 누구인지를 묻기도 했다.

또한 취재진에게는 윌리엄 문을 방문하기 전 문양목 선생의 묘소가 있는 스탁턴의 파크뷰 공동묘지를 참배했다고 전하자 너무 고마운 듯 손을 맞잡고 한동안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본격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 문양목 선생의 고향마을에서 선양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는 말을 전하자 연신 고마움을 표하면서 윌리엄 문은 자신이 무릎에 올려져 있던 훈장과 훈장증, 사진 등을 기념관에 기증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특히, 다소 민감한 문제지만 우운 선생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던 고 이대위 목사의 국립묘지 이장에 대해 설명하면서 향후 우운 선생의 묘소를 국립묘지로의 이장을 추진할 경우 의사를 묻는 질문에 대해 한참을 고심하더니 미소를 띠며 우리말로 "생각해보겠습니다"라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문양목 선생의 국립묘지 묘소 이전문제는 2005년 당시 문양목 선생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던 이대위 목사의 유해 송환시 함께 추진됐지만 윌리엄 문의 누이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윌리엄 문의 두형과 누이가 모두 사망, 우운 선생의 유일한 혈육인 윌리엄 문 옹이 긍정적인 반응이어서 향후 태안군이나 문씨종중, 기념사업회측에서 서둘러 추진에 나선다면 국가보훈처와의 협의절차가 필요하겠지만 우운 선생의 국립묘지 이장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시할 유품이 없어 제동이 걸린 우운 선생의 기념관에 전시할 유품도 윌리엄 문이 기증의사를 밝힌 만큼 정식절차를 밟아 서둘러 기증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윌리엄 문 옹은 지난 20년 동안 아버지 문양목의 선양사업을 위해 문씨종중측에 매년 200만원 상당을 기부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근에 중단했다고 밝힌 윌리엄 문 옹은 취재진에게 다시 기부할 곳을 알려달라며 기념사업회측에 기부할 뜻을 전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신문사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문양목, #애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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