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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것 없는 듯 보이지만 별 것이 아니었던 식사 준비
▲ 엄마와 함께 준비한 아침 식사 별 것 없는 듯 보이지만 별 것이 아니었던 식사 준비
ⓒ 박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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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은 나의 26번째 생일이었다. 매해 생일날 나는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집 밖에서 친구들과 노는 편이었다. 올해는 특히 취업준비생이라는 이유로 집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 내 생일날만큼은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소중한 가족을 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명 '일일엄마 체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요리에도 다 비법이 있는 거야

할 줄 아는 거라곤 고작 라면, 계란말이가 전부인 내가 요리를 하겠다고 하니 엄마는 못 미더웠나 보다. 오늘 하루 모든 식사를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라면밖에 할 줄 모르는 애한테 요리를 맡기는 게 무리라며 옆에서 엄마를 도와주면서 배우라고 하셨다.

아침 메뉴는 미역국, 브로콜리, 취나물이었다. 생일날 엄마가 해준 미역국을 매번 먹다가 내가 직접 미역국을 만들려고 하니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몰랐다. 미역에 물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했더니 뭘 모르는 소리란다. 결국 엄마가 하는 걸 지켜보며 배우기로 했다. 어제 미리 불려놓은 미역을 참기름, 꽃소금, 국간장에 살짝 데친 후 물을 부어 넣었다. 이후 새우젓을 넣고 들깨가루도 뿌려주었다. 계랑컵 없이 눈대중으로 재료를 넣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신기해 보여 그 비법을 물어보았다.

"엄마 재료 얼마나 넣어야 할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느낌 아니까~."
"그러니까 그 느낌 좀 설명해줘."
"적당량 넣으면 돼."
"?"

원하던 대답이 아니라 실망했지만 언젠가 나도 그 느낌을 알게 되겠지 위로하며 엄마 옆에서 요리를 도왔다. 미역국을 끓이는 동안에는 브로콜리를 데치기로 했다. 먼저 브로콜리를 씻고 작은 크기로 썬 뒤 냄비에 브로콜리를 넣고 굵은 소금을 넣은 뒤 데쳤다. 다음은 취나물이었다. 프라이팬에 해바라기씨유를두르고 미리 삶아놓은 취나물을 중간불로 볶았다. 볶는 와중에 엄마는 양파와 파를 썰어 취나물을 볶고 있는 프라이팬에 넣었다.

"어? 엄마, 양파랑 파는 왜 넣은 거야?"
"음식에 맛을 더하고 색깔을 더하려고 그러지."

식사 준비가 끝나 이제 밥 먹는가 했는데 엄마는 집안일을 하다 보면 돌아서면 밥이라고 점심 때 먹을 반찬도 미리 해놓자고 하셨다. 그래서 무난한 김치찌개를 미리 해두기로 했다. 신김치를 꺼내 큼지막하게 썰고 돼지고기를 넣은 뒤 찌개가 보글보글 끓을 때쯤 두부를 넣었다.

요리를 하며 내가 가장 많이한 말은 '왜?'였다. "엄마 이거 왜 넣는 거야?", "엄마 이걸 왜 지금 넣어?". 엄마는 "왜 자꾸 물어보냐"고 귀찮은듯 말했지만 차근차근 그 이유를 설명해주셨다. 그동안은 엄마가 해주는 것만 먹다 보니 요리를 하는 데 이렇게나 많은 지혜와 노하우가 필요한지 몰랐다.

요리를 한다고 불 앞에 계속 있으니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땀이 났다. 불 앞에 계속 있으니까 덥다고 말하는 내게 엄마는 그럼 여름엔 얼마나 덥겠냐고 말했다. 새삼 우리 가족을 위해 사계절 내내 뜨거운 불 앞에서 요리해주시는 엄마가 고마웠다.

아니, 식구는 줄었는데 왜 빨래는 그대로지?

이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금성 세탁기다. 장수 비결은 꼭 필요할 때만 쓰기!
▲ 올해 21살인 우리집 세탁기 이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금성 세탁기다. 장수 비결은 꼭 필요할 때만 쓰기!
ⓒ 박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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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하려고 보니 빨랫감의 양이 장난 아니다. 남동생이 군대에 가 있어 식구는 5명에서4명으로 줄었는데 이상하게 빨래는 줄지 않은 것 같다. 질량보존의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거였나 싶었다. 이유가 궁금해서 다들 옷 한 번 입고 바로 내놓나 해서 물어보니 그것도 아니란다. 마음 같아선 세탁기에 빨랫감을 다 집어넣고 돌려버리고 싶은데 우리 집은 웬만한 옷은 손빨래로 빨고 세탁기로는 주로 헹굼, 탈수만 하기 때문에 오늘도 웬만한 옷은 손빨래 하기로 했다.

먼저 빨랫감을 소재별로 분류하고, 다시 색깔별로 구분했다. 세제를 대야에 풀어넣고 빨랫감을 넣은 뒤 한참을 주물렀다. 이후 빨랫감을 물에 두세 번 헹구고 세탁기에 넣으려고 하니 코스 선택, 물 높이, 탈수 강약 조절 등 세탁기에 버튼이 너무 많아 뭘 눌러야 할지 몰랐다. 엄마를 불러 버튼 조절 방법을 묻고 다시 남은 빨래를 했다.

네 번을 나눠 했더니 그제야 빨래가 끝났다. 빨래를 한바탕 하고 나니 삭신이 쑤셨다. 엄마에게 "와… 빨래하기 힘드네. 결혼하지 말까?"라고 얘기하니 엄마는 "결혼생활이 간단하고 쉬운 줄 아니"라고 말하시며 하하하 웃으셨다. 빨래를 직접 해보니 "저번에 그 옷 빨았는데 왜 또 빨라고 내놓니?"라고 묻는 엄마의 심경이 이해가 갔다. 남동생이 군대에 안 갔으면 정말 빨래하다가 큰일날 뻔했다.

말끔히 청소한 바닥에 또 머리카락이라니

청소는 자신 있었다. 내가 오래전부터 틈틈이 했던 집안일이니까. 청소를 하려고 하니 집 안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잡동사니들이 눈에 거슬렸다. 바닥에 놓은 잡동사니만 어떻게 정리해도 청소가 쉬워지겠는데…. 왜 엄마가 "옷 갈아입는 것만 신경 쓰지 말고 이불도 개고 바닥에 있는 것 정리 좀 하고 다녀"라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바닥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한 뒤 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스팀 청소기를 돌렸다. 청소를 하고 나니 어느새 1시간이 흘렀다. 청소를 마치고 청소기를 정리하는데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으악. 그새 머리카락이 또 떨어졌어"라고 소리치는 나에게 엄마는 "원래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거야. 돌아서면 아침, 점심, 저녁이 되고 똑같은 일을 계속하는데 얼마나 지루하겠어"라고 말했다.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집안일을 했다. 요리를 하고 나니 설거지가 기다리고, 설거지 후엔 빨래가, 빨래 후엔 방 청소와 화장실 청소가, 그 이후엔 분리 수거가 기다리고 있었다. 끝이 안 보이던 집안일을 겨우 끝내고 나니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도대체 엄마는 집안일에 직장 일까지 어떻게 하시는 거지? 뉴스에서 파업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 나도 집안일 파업하고 싶다"고 말하던 엄마의 말이 뼛속까지 이해되는 하루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오늘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집안일을 도와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태그:#집안일, #엄마,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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