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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저지 국제환경단체인 (사)푸른아시아(사무총장 오기출)와 고양시 후원으로 지난 8월 19일부터 엿새간 몽골의 울란바타르와 돈드고비·바양노르에서 사막화저지 숲가꾸기 현장을 돌아보고 현지 관계자를 취재했습니다. 다섯 차례 나눠 싣습니다. - 기자주

몽골 전통의 성소 ‘어워’. 서낭당이라 할 수 있죠. 산, 언덕, 고개 위 또는 강?호수?샘물 옆에 있죠. 천지자연을 내어준 하늘신(텡그리)과 대지신(가자르)을 경외하는 곳입니다.
 몽골 전통의 성소 ‘어워’. 서낭당이라 할 수 있죠. 산, 언덕, 고개 위 또는 강?호수?샘물 옆에 있죠. 천지자연을 내어준 하늘신(텡그리)과 대지신(가자르)을 경외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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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나는 부르한 칼돈 산에 제물을 바치고 숭배한다. 자손들은 이것을 항상 기억하라."

800여 년 전 일이죠. 테무진이 칭기스칸에 오르기 전 메르키드족으로부터 급습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수목이 울창한 부르한 칼돈 산에 숨어 생명을 부지했죠. 그 뒤 이 산을 신성한 산으로 모셨습니다. 그의 태생지라고, 지금은 성지로 지정돼 있죠. 몽골인들이 산·나무·바위를 숭배하는 일면을 보여주죠.

몽골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 타는 말입니다. 유목민은 이거 없으면 그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으니까요. 염소나 양을 치는 것도, 급하거나 필요한 일로 어딘가를 가려해도 마찬가지지요. 말 머리를 때리지 않는 관습도 그 때문입니다. 이들은 아끼는 말이 죽으면, 그 머리를 '어워'에 안치합니다. 저승 좋은 곳으로 가라는 기원을 담아서요.

'어워'는 몽골 전통의 성소. 서낭당과 같다고 할 수 있겠네요. 큰 산, 언덕, 고개 위 또는 강·호수·샘물 옆엔 어김없이 있죠. 초원과 숲 그리고 강·호수와 물을 준 하늘신(텡그리)과 대지신(가자르)에게 고마움과 경외를 드리는 곳, 어워. 길을 떠날 때 무탈을 기원하며 시계방향으로 세 바퀴 돈답니다. 운전 중 만나면 경적이라도 세 번 울리고 지나죠. 여행자에게는 이정표 노릇도 하고요.

"이 산에 제물을 바치고 숭배한다"

돌무더기를 쌓고 그 위엔 말 머리뼈, 돈, 사탕 등을 올려놓죠. 복을 기원하며 바친 것들입니다. 고대사회 신이 준 불을 돌화로 속에 간수했는데, 그 신성한 돌을 모아놓은 곳이죠. 정주하지 않는 유목인들이기에 성소 역시 고정건축(바이싱)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 한 가운데 '하늘의 신'을 뜻하는 파란색 천(하닥)을 두른 나무를 꽂아놓았죠.

몽골의 거친 대지에 나무를 심는 이들. 5년의 땀방울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숲 가꾸기를 바라지 않던 유목민들이 그 정성에 감동을 했으니까요.
 몽골의 거친 대지에 나무를 심는 이들. 5년의 땀방울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숲 가꾸기를 바라지 않던 유목민들이 그 정성에 감동을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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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은 자연에 순응하는 문화를 가졌습니다. 훼손하지 않으며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삶. 정주해 농사지으며 주변을 가꾸는 문화엔 거부감을 가지죠. 자연의 재생력을 알기에 계절 따라 옮겨 다니며 유목을 하는 것이고요. 이처럼 생태적 삶을 영위하는 유목민이 환경파괴의 최대 피해자인 건 아이러니죠.

몽골인들이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걸 반길 리 만무하죠. 낯선 것 이전에 신성한 자연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걸 찬성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 몽골인들이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문화를 받아들인다니 참 놀랍습니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게 아님을 알았을까요? 탐욕이 파괴한 자연을 복원하는데 동의한 것일 테지요.

몽골인들이 왜 낯섦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는지, 바트볼트 환경녹색개발부 국제협력국장 말을 들으면 수긍이 갑니다. 지난달 20일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지속불가능'이라 했습니다. 지난 40년간 대초원의 30%가 모래로 뒤덮이며, 생물다양성이 파괴되고 있답니다. 4계절에 더해 '5계절 황사철'이 생겨났고요. 동식물이 못 사니, 인간도 살 수가 없는 세상. 그 생사기로에서 절체절명의 선택이라는 것이죠.

몽골에서 기후변화 저지 사업을 총괄하는 이신철 푸른아시아 몽골지부장(54·남). 그가 꺼낸 말은 자립과 협동이었습니다. 친환경 유목생활이 몸에 밴 이들에게 외부에서 어느 날 불어 닥친 위기 기후변화. 초원과 가축을 잃고 '환경난민'으로 전락한 유목민들. 이들에게 연유를 알려주고 함께 대처해야 한다고요. 그가 요즘 관심을 갖는 건 주민협동조직입니다.

대초원, 하늘과 대지의 신이 준 선물. 그 땅엔 인간과 가축, 그리고 풀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하지만 탐욕이 푸른 초원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대초원, 하늘과 대지의 신이 준 선물. 그 땅엔 인간과 가축, 그리고 풀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하지만 탐욕이 푸른 초원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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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선 해가 왼쪽에서 떠요"

"몽골인들은 해가 왼쪽에서 뜬다고 합니다. '동서' 개념이 아닌 몽골식 문화죠. 이들은 30년을 제과소에서 일해도 제 맡은 일 외 다른 일은 안 한다고 합니다. 밀가루 붓는 일을 맡은 이는 그 일밖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역할을 나누는 사회주의 풍토. 하지만 기후변화는 외부로부터 몰아닥친 재앙(조드)이잖아요. 그 대처법도 함께 모색해야죠."

그는 오랜 세월 YMCA(이하 Y)운동을 했답니다. 인천고교Y와 이천·오산Y를 창립했으며, 부선·성남Y 조직사업에 참여했죠. 인천에서 시민운동을 하며 민관협력기구인 '환경원탁회의'를 운영할 때 푸른아시아와 협력해 '인천 시민의 숲'을 몽골에 조성했지요. 그 계기로 몽골에 오게 됐다는 군요. 꿈을 물으니 "비밀"이라면서도 '현지 주민조직화'라 귀띔합니다.

푸른아시아가 '나무 심는 단체'가 아니라고 역설했던 김종우 홍보국장(40·남) 말도 생생합니다. '사막화 방지 적응모델'을 만드는 단체라면서요. 오기출 사무총장한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고 하니, 억울하기라도 하다는 듯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를 연발합니다. 6년간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니 글쎄 이러네요.

"몽골 땅이 넓잖아요. 푸른아시아 직원 몇이 나무 좀 심는다고 해결되겠어요?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지속가능성입니다. 한국인 몇이 현장을 관리하고 지킨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거든요. 주민이 스스로 나설 때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생계를 해결하면 사막화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이제 그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척박한 대지를 뚫고 솟아난 푸른 희망. 그 땅을 지키려는 구슬땀에 생명이 싹터 무럭무럭 자랍니다.
 척박한 대지를 뚫고 솟아난 푸른 희망. 그 땅을 지키려는 구슬땀에 생명이 싹터 무럭무럭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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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꿈꾸는 사막화저지 사업이 어렴풋이 그려집니다. 몽골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설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죠. 고소득 유실수로 생계를 해결하고, 종묘기술을 전수해 일거리(돈벌이)를 창출하고, 생산자협동조합을 만들어 행정·국제사회와 협력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하는 것이죠. 자신들은 그 뒤 슬그머니 빠지면 된답니다.

버번 위스키도 바닥났고... "갑시다"

박찬영 바양노르 영농팀장(51·남)이 분명하게 청사진을 보여줍니다. 주민자립 모델만 마무리하면 지속가능성을 갖춘다면서요. 4개 작목반을 만들어 2~3년 실험을 거치려고 한답니다. 영농(채소 등 농산물), 유실수(차차르간 등), 약초(감초 등), 양묘(숲가꾸기에 필요한 묘목 재배) 작목반을 실행·구상 중이고요.

"지난주 약초농장에 다녀왔습니다. 몽골 감초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죠. 명성이 알려지고 약초(장사)꾼들이 과잉채취, 사막화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감초는 대표적 사막화저지 식물이거든요. 약초작목반을 곧 조직할 예정입니다. 주민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옛날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이젠 '그럴 수 있겠다' 반응하죠."

박 팀장은 기자에게 재미난 추억도 안겼습니다. 바양노르에 도착한 날 저녁, 맥주 한 잔 할 시간이 있었죠. 흥이 좀 나려나 싶은데, 술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담딩 박사가 챙겨온 버번 위스키 한잔을 마셨지만, 그 걸론 턱도 없죠. 박 팀장 "갑시다"고 외치네요. 1시간여 떨어진 자신의 거처로 가잡니다. 술 있다면서. 한밤 중 대초원 행진이 시작됐습니다.

이들은 분명 ‘사람을 키우는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먼 훗날 ‘녹색 전사’가 되리란 꿈. 사막화 현장에서 만난 미래세대는 분명 희망을 전해줍니다. 왼쪽부터 남지영, 노은지, 신승욱 학생.
 이들은 분명 ‘사람을 키우는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먼 훗날 ‘녹색 전사’가 되리란 꿈. 사막화 현장에서 만난 미래세대는 분명 희망을 전해줍니다. 왼쪽부터 남지영, 노은지, 신승욱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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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콰한 일행 셋, 여행자 숙소를 나섰습니다. 캄캄한 초원으로 발걸음을 뗍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 가는 길 어디쯤의 기시감이 들 즈음 대지에 몸을 눕혀봅니다. 초원의 연인이 되어. 술기운에 낯선 집을 침범, 민망했죠. 이불을 뒤집어쓴 아내, 묘한 표정의 남편. 한밤 이방인이 들어왔으니….

'사람을 키우는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활동은 환경운동이 아니라면서요. 여러 번 강조한 걸 보면 진심이겠죠? 그 뒤 숨은 완고한 뜻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는 않을테고. 개발독재, 그에 맞선 환경운동. 반환경 정책 저지에 주력하던 운동. 기후변화(사막화) 저지는 그런 전시운동으론 안 된다고 여겼을까요?

까만 밤 초원에 누워, 하얀 전설로

긴 호흡을 시작한 거죠. 취재여행 중 한국 대학생 여럿을 만났습니다. 일주일 일정으로 몽골엔 온 '푸른아시아 지킴이'(GAK, 6개월과정) 수강생들. 한국과 몽골에서 각 십수명씩 선발해 세미나·캠페인을 하고, 일주일 사막화 현장을 돌며 배우는 '녹색 홍보대사' 양성교육과정. 21일 밤 국립몽골대 기숙사에서 만났습니다.

환경공학을 전공하는 남지영(23·여·대학4)씨. 현장을 보고 참 많은 괴리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보고 배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절감했고요. 한국·몽골 학생들이 소통하고 협력할 일이 많을 거라는 군요. "환경교육을 강화하고 학우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지속적으로 노력할 방안을 모색하고 싶다"고 하네요.

소우주 게르의 버팀목 ‘바간나’. 버드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천신이 준 소중한 불, 그리고 이를 모시는 화로를 떠받쳐 하늘과 소통하도록 하는 기둥이죠.
 소우주 게르의 버팀목 ‘바간나’. 버드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천신이 준 소중한 불, 그리고 이를 모시는 화로를 떠받쳐 하늘과 소통하도록 하는 기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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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욱(23·남·대학3)씨는 "몽골학생들과 일주일을 보내는 게 정말 특별한 경험이며 산교육이었다"며 "지구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협력해야 할 일을 깨달은 만큼, 언어장벽이나 국경을 넘어 국제사회연대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교육학 전공인데 향후 환경교육을 선택할 마음을 다지고 있다고 했죠.

노은지(19·여·대학2)씨는 초원을 여행하며 물이 모자라 샤워를 제대로 못했는데, 맘대로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물을 원 없이 낭비했던 자신의 태도가 부끄러웠다고 했습니다. 대초원에 몰아친 재앙을 친구들에게 알리기로 마음먹었다고요. 기회 된다면 이웃 나라 학생들에게도 이런 사실을 알리고 대학사회가 머리를 맞대 대처하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푸른아시아 몽골 사업 안착에는 담딩 박사(60·남)의 도움이 컸습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몽골인들은 가장 심각한 의제로 '기후변화'를 꼽는다고요. 국토의 70~90%가 사막화니 그럴 만도 하지요. 온난화가 주요인인데, 조림으로 저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답니다. 성공모델을 확대하고 싶다는 군요. 환경녹색개발부 고문으로 정부의 '녹색띠' 사업과 협력방안도 찾겠다고 합니다.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협력하길 바란답니다.

고비에 숲 들어설 때까지, '바야르테'

중국 심양에 가면 청나라 2대 황제 홍타이지 무덤이 있습니다. 병자호란 때 조선에 삼전도 굴욕을 안긴 인물의 묘죠. 여느 것과 다른 점은 봉분 위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무성히 자라는 것입니다. 만주족이 발호하지 못하도록 그랬다는 '한족음모론'이 제기되는데, 모르는 소리.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무덤에 꽂는 '마니수'(瑪尼樹, 지혜의 나무)라는 몽골 풍속을 따른 거죠. 가지가 뿌리내려 자라면 길상의 징조로 여기거든요.

몽골의 푸르디푸른 대초원. 인간의 탐욕이 그 하늘과 대지를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텡그리(하늘신)와 가자르(대지신)의 거대한 진노를 피하려면 이제 그쳐야 할 때입니다.
 몽골의 푸르디푸른 대초원. 인간의 탐욕이 그 하늘과 대지를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텡그리(하늘신)와 가자르(대지신)의 거대한 진노를 피하려면 이제 그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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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들의 성소 '어워' 맨 위엔 버드나무를 꽂습니다. 소우주 게르의 버팀목 '바간나' 역시 버드나무. 천신이 준 소중한 불, 그리고 이를 모시는 화로를 떠받쳐 하늘과 소통하도록 하는 기둥. 게르 화살대(지붕)도 무녀가 섬기는 신목도 버드나무. 아예 '몽골나무'라 부른답니다.

푸른아시아는 몽골인들과 힘을 합쳐 버드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그들이 신목으로 여기는 나무를 키우죠. '한 번 좋다고 말하면 결코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는 몽골인들. '우리는 우리, 난 나'라고 당당하게 선 그 의젓함. 푸른 버드나무 숲으로 고비를 포위하는 날을 고대합니다. 숲 가꾸기는 신성을 해치는 인위가 아니며 유목의 해체가 아닌 걸 알기에. 텡그리가 준 푸른 대초원을 지키기 위해. 그 날까지 '바야르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터넷저널에도 실립니다.



태그:#몽골, #기후변화, #사막화, #푸른아시아, #숲가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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