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기 분위기가 전혀 다른 두 술이 있습니다. 하나는 고급 레스토랑에나 어울릴 것 같고, 또 하나는 슬리퍼 질질 끌고 나가 먹어도 전혀 부담이 없을 것 같은 그런 술이지요. 바로 와인과 전통주(막걸리)입니다. 어울려 보이지 않는 이 두 술의 공통점이라면, 최근 이 술이 대중 곁으로 바싹 다가왔다는 건데요. 와인이 더 이상 별스럽지 않고, 전통주(막걸리)가 그다지 구리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준비한 '와인 vs. 전통주(막걸리)' 기획. 이 술들의 매력에 한번 취해보실까요. [편집자말]
와인전문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소믈리에다. 소믈리에는 레스토랑에서 와인 관련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에 국가대표 소믈리에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하봉 소믈리에
 정하봉 소믈리에
ⓒ 김진수

관련사진보기


국내 최고의 소믈리에로 공인받은 정하봉 소믈리에(33, JW메리어트 호텔)를 지난 6월 24일 만났다. 정 소믈리에는 작년 12월 '한국 왕중왕 소믈리에 선발대회'에서 우승하여 2010년 세계 소믈리에대회(ASI, 국제소믈리에협회 주최) 출전 티켓을 따냈다.

2000년에 경희대에서 호텔관광을 전공하고 있던 그는 어느 날 '블루넌'이라는 이름의 스위트 와인을 마시는 순간, '세상에 이렇게 달콤하면서도 기분을 좋게 만드는 술이 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이때부터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된 정씨는 지금은 국가대표 소믈리에 자리에 올랐다.

소믈리에에게 가장 필요한 소양으로 그가 꼽는 것은 풍부한 지식이었다. 와인지식뿐만 아니라 세계문화 전반에 대한 풍부한 교양과 상식이다. 그래서 그는 매일 출근하기 전 두 시간을 독서에 할애한다고 말한다. 절반은 와인 관련 도서를 읽고 나머지 시간에는 교양 서적을 본다고.

부단한 열정과 노력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소믈리에를 꿈꾸는 정하봉씨에게 누구나 궁금해 하는 와인에 대한 몇 가지 질문들, 그리고 와인 초보에게 권해줄 만한 노하우와 팁을 인터뷰를 통해 정리해 보았다.

"와인, 중형차 한 대 값 정도 마셨다"

정하봉 소믈리에가 작년 소믈리에 대회에서 테이스팅을 하고 있는 장면
 정하봉 소믈리에가 작년 소믈리에 대회에서 테이스팅을 하고 있는 장면
ⓒ 김진수

관련사진보기

- 소믈리에하면 '와인감별사'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와인이든 맛만 보고 이름을 척척 맞히는 모습부터 떠오른다. 진짜 어떤 와인이든 테이스팅만 하면 답이 '척척' 나오는가?
"맛을 보고 와인 이름을 척척 맞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와인 생산국과 품종, 대략적인 빈티지(포도를 수확한 연도)는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와인을 시음한 후 '칠레산 와인이며 까베르네 쇼비뇽 품종으로 대략 2007년 또는 2008년 빈티지다'라고는 말할 수 있다.

소믈리에 대회에서도 와인 이름을 써내라고 하지는 않는다. 지역, 빈티지, 품종을 추정하여 쓰고 당도, 탄닌, 밀도, 산도, 균형감에 대해서 평가하고 총평하는 방식이다."

- 빈티지나 지역을 맞힌다는 것도 대단하다. 어떤 식으로 시음을 하는 것인가?
"그것은 머릿속에 와인 산지별 특징과 포도품종의 특징, 숙성 정도에 따른 색과 맛에 대한 정보가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때문에 소믈리에들은 비교 테이스팅을 많이 한다. 지역과 품종, 빈티지별로 두 가지 이상의 와인을 비교해서 마셔보면 각각의 특징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구체적인 테이스팅 방법에는 정해진 순서가 있다. 색과 향, 맛을 차례로 보는 것. 색을 볼 때는 숙성 기간에 따른 색깔을 확인한다. 일반적으로 레드와인은 숙성되면서 보라색에서 주황색으로 색이 바뀐다. 보라색이나 주황색에도 워낙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어서 구별하기 쉽지는 않다. 그 다음은 향을 맡는다. 향을 통해서 포도품종을 끄집어낼 수 있다. 까베르네 쇼비뇽의 경우 블랙베리나 블랙커런트 같은 검은 열매향이 난다. 피노누아는 라즈베리나 스트로베리 같은 붉은 열매향이 난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향인지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와인이 서양에서 유래되다 보니 모든 용어가 서양 기준이다. 그래서 아로마키트라고 하는 향기 학습도구를 가지고 공부하는 소믈리에도 많다. 마지막으로 맛을 볼 때는 반복적 연습을 통해 미리 인지된 정보를 가지고 접근한다. 색과 향을 통해 추측한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전반적인 맛과 균형감을 평가하는 것이다."

- 머릿속에 와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다. 많은 시음 경험이 필요할 것이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을 것 같다.
"작년 소믈리에 왕중왕 대회를 준비하면서 두 달간 약 500만원 정도 쓴 것 같다. 직업적으로 와인을 접하기 때문에 일반 애호가보다는 나은 점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도 와인을 많이 사서 마신다. 중형차 한 대 값 정도는 들었다."

"와인 주문할 때 떨지 않으려면, 세 가지만 준비하세요"

- 와인이 대중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고급 술이라는 등의 선입견이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와인을 돈 많은 사람들만 마시는 건 아니다. 와인도 지금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고 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독한 술 대신 건강에도 좋고 분위기 내기에도 좋은 와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작년 5월 통계를 보면 대형마트에서 와인이 맥주를 누르고 소주 다음으로 판매량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와인의 가격도 지금은 매우 합리적으로 바뀌었다. 마트에선 1만원에서 1만 5천원 사이의 와인이 많아, 와인은 서민들이 못 마시는 비싼 술이라는 인식은 이젠 없다."

- 하지만 와인은 대부분 수입품이다. 와인이 대중화될수록 수입이 늘어날 텐데, 그것도 문제 아닌가?
"모든 와인이 수입산인 것은 아니다. 국내에도 와인을 만드는 곳이 많다.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다. 전체 와인 시장이 커질수록 정부에서 국산 와인의 연구개발에 지원이 많이 필요하다. 지금도 일부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안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에는 자체적인 와인 생산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내수 판매량도 많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본다."

- 하지만 국산 와인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와인에 비해 한참 부족한 느낌이다.
"당연하다. 수천년 동안 와인을 재배한 나라와 이제 막 와인 양조를 시작한 나라가 같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국산 와인을 프랑스 와인과 비교하지만 절대평가는 어렵다. 국산 와인은 질이 낮다는 선입관을 버리고 현재 단계에서 하나의 스타일로 이해하면 어떨까. 국내 와인 소비자들이 국산 와인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

- 와인 초보자의 경우,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서 와인을 주문할 때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일이 많다. 어떻게 하면 친구나 손님 앞에서 '근사하게' 와인을 주문할 수 있을까?
"외부 강의를 나갈 때 다루는 주제가 대개 그 부분이다. 와인에는 항상 비즈니스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식사에 와인을 곁들이면서 미팅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와인에 대한 기초 정보 몇 가지만 알아도 대화가 '술술' 풀리기도 한다. 주문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지식이 포도의 품종이다. 레드와인의 품종 3가지, 화이트와인 품종 3가지 정도만 기억해도 와인을 고르기가 한결 수월하다. 가령 레드와인에 쓰이는 까베르네 쇼비뇽이라는 품종은 묵직하고 떫은 탄닌맛이 강한 편이다. 메를로라는 품종은 부드럽고 피노누아는 가볍고 섬세하다. 이런 차이를 알고만 있어도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기가 한결 수월하다. 또 자기 입맛에 맞는 품종을 미리 알고 있으면 와인리스트를 볼 때 크게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와인 초보라면 신세계 와인을 공략하라"

정하봉 소믈리에에게 마셔보았던 와인 중 최고의 와인을 물었더니, 82년 샤또 라뚜르를 꼽았다. 어느 요소 하나도 튀지 않는 완벽한 균형감과 거의 1분 이상 이어지던 피니쉬를 그 이유로 꼽았다.
 정하봉 소믈리에에게 마셔보았던 와인 중 최고의 와인을 물었더니, 82년 샤또 라뚜르를 꼽았다. 어느 요소 하나도 튀지 않는 완벽한 균형감과 거의 1분 이상 이어지던 피니쉬를 그 이유로 꼽았다.
ⓒ 김진수

관련사진보기


- 와인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마트나 숍에서 어떤 와인을 골라야 할지 막막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초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와인 입문 요령이 있다면?
"스위트한 맛은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 일단은 스위트 화이트 와인으로 시작하고 단맛이 없는 드라이 화이트 와인, 레드와인 순서로 와인을 접하는 것을 권한다. 레드와인은 혀 양끝을 떨떠름하게 만드는 탄닌 때문에 바로 접할 경우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팁은 저렴하지만 맛 좋은 와인을 찾는다면 '신세계' 와인을 공략하라는 것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전통적으로 와인을 생산해온 유럽국가들을 구세계(Old world)라고 하고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처럼 최근에 와인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나라를 신세계(New world)라고 한다. 신세계에서 만든 와인들은 대중적인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와인을 만들기 때문에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고 초보자들이 접하기에 좋다."

- 작년에 참여한 와인 소믈리에 대회를 보니까, 유명 산지의 와인뿐만 아니라 일본과 국산와인, 사케와 심지어 물까지 테이스팅을 하더라. 소믈리에가 그런 것까지 감별하나?
"요즘의 경향은 소믈리에가 와인전문가가 아니라 음료전문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믈리에는 와인뿐만 아니라 위스키나 보드카 같은 주류나 각 나라별 전통주에도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국내 소믈리에 대회에 나가기 전에 국산 와인과 수입되고 있는 생수를 구할 수 있을 만큼 구해서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시음을 하기도 했다. 물맛에도 미묘하지만 밀도감과 미네랄에서 제품마다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와인 애호가라는 사람들 중에는 유난히 와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주, 맥주는 그냥 즐기면서 와인만 유독 외워야 할 것이 많은 까닭은 무엇인가?
"와인이 참 어렵다. 그건 이런 예를 들고 싶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맛있는 생선이 뭐냐'고 물었을 때, '전남 영광 법성포 굴비다'고 대답하는 경우다. 한국어를 안다고 해도 생선 종류와 우리나라 지역을 모르면 암호같은 이야기다.

와인이야말로 대표적인 지역 특산물이다. '프랑스 와인 뭐가 맛있나'라고 말한다면 '보르도 뽀이약 와인이다'라는 답변이 주로 나올 것이다. 프랑스 와인 산지를 모르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제대로 와인을 즐기고 싶다면 와인의 다양한 지역과 품종을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이 사실 필요하다."

"여기서 제일 맛있는 와인을 달라는 손님, 난감하죠"

- 호텔에서 와인을 서비스하다 보면 많은 에피소드가 있을 듯하다. 많은 고객들을 대하다 보면 난처한 상황이나 황당한 경우도 있을 듯한데.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손님을 꼽자면 '여기서 제일 맛있는 와인을 달라'고 말하는 손님들이다. 이런 경우에는 몇 가지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와인을 추천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 손님이 어떤 와인을 드셨는지, 특별히 좋아하는 와인 스타일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식사와 잘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한다. 가격에 민감한 고객에게는 'O만원대 와인으로 맞출까요'라고 의향을 물어본다.

또 다른 에피소드라면 고객 중에 전문직 종사자가 많은데, 종종 선물로 받은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이름을 알려주면서 '샤또XX라는 와인인데, 얼마 정도 하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보르도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5000종이 넘는다.

소믈리에가 그 모든 와인을 알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런 분들께는 '라벨에 그랑크뤼 클라세(Grand Cru Classe)라고 적혀있는지 먼저 확인해 보라'고 얘기한다. 보르도 와인의 와인등급으로 총 61개 와인에 대해서만 그랑크뤼 클라세를 표시할 수 있어 이 표시가 있다면 고급와인이다."

- 그런데 사실 호텔은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와인 초보자들에겐 와인메이커스 디너와 호텔에서 진행하는 와인시음회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권한다. 보통 와인을 잘 모를 경우 이런 행사에 참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번만 참석해 보면 시음행사가 얼마나 알차고 경제적인지 알 수 있다.

이런 행사는 와인을 수입업체에서 협찬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식사비에 1만~2만원 정도만 추가하면 5~7종의 좋은 와인을 시음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특히 와인메이커가 직접 방문하는 행사라면 와인에 대한 궁금한 점을 직접 물어볼 수 있어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 최근에는 덜하지만 한때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책이 크게 화제가 됐다. 이 만화 때문에 와인에 입문한 사람이 크게 늘었다고 하는데 현장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 있나?
"그렇다. <신의 물방울>에 보면 주인공이 디켄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디켄팅은 와인 속의 침전물을 제거하거나 강건한 와인을 부드럽게 하려는 것인데, 사실 디켄팅이 필요한 와인은 많지 않다. 한창 <신의 물방울>이 인기를 모을 때는 여덟 테이블 중 절반 이상이 디켄팅을 요구해 놀란 적이 있다. 물론 그 와인들은 주로 미국과 칠레 와인으로 디켄팅이 필요없는 와인이었다."

- 마지막으로 와인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와인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단순한 술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얽혀있는 문화적 술이다'고 말하고 싶다. 와인에 빠져들게 되면 자연스럽게 세계지리나 역사, 자연과 문화에 눈 뜨게 된다. 와인을 접하기 전에는 내 머릿속에 세계지도가 없었다. 지금은 뉴스에서 남미나 유럽 얘기가 나오면 귀가 번쩍 뜨인다.

또 와인을 접하다 보면 음식에 대한 관심도 생길 수밖에 없다. 요리를 알면 이 역시 세계 각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진다. 와인을 알게 되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많은 지식을 쌓았고 또 최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수많은 책을 보게 되었다. 이런 점이 다른 술이 따라올 수 없는 와인만의 매력은 아닐까. 내가 와인을 알게 된 것이 대단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태그:#와인, #소믈리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