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늘이 18대 총선 선거운동 마지막 날입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낮고 대결구도가 불명확한 이상한 선거가 치뤄지고 있습니다. 투표율이 사상 최저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투표권을 포기하는 것도 주권자가 보유한 권리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스스로 주권을 내다 버리는 주권자는 주권을 누릴 자격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모두 투표를 일찍 마치고 놀러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오늘은 사표방지 심리에 대하여 좀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표가 가치없는 사표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될 사람을 밀어주자'고 생각합니다. 종종 될 사람과 경쟁하는 2위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두가지의 경우가 다 사표방지 심리가 작동하는 예입니다. 사표방지 심리에 의하여 투표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과연 합리적일까요?

자신에게 하나 주어진 투표권을 가장 가치있게 행사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겁니다. 투표를 했지만 결과에 반영되는 정도가 미약하고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일을 피하고 싶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약간의 고민이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누군가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누군가를 낙선시키기 위해 경쟁자에게 투표를 하게 되는 것을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볼 일은 그렇게 결정을 내리는 것이 과연 정치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했을까요? 여당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여당에게, 여당을 견제하기 위해서 야당에게 투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종종 가장 좋아하고 지지하고 싶은 정치세력의 설자리를 잃게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소선거구제의 제도적 한계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당선 가능성에 대한 지나친 고려가 좋은 정치세력의 진입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사회는 매우 다양한 정치적 욕구를 가진 국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위 1%를 대변하는 특권층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평범한 중산층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다수의 서민이 원하는 정치세력도 있어야 합니다. 정부의 보조가 없이는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빈곤층도 누군가는 대변해야 합니다. 조직화된 노조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세력도 필요합니다. 조직이 없는 중소기업 노동자나 비정규직의 이익도 정치에 반영돼야 합니다.

그래서 단순한 양강구도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정치로는 이러한 다양한 국민적 욕구를 충족할 길이 없습니다. 게다가 지역주의까지 개입된 대결양태는 주권자의 선택을 지극히 제한하는 잘못된 것입니다. 특별히 당선가능성이 선택의 기준으로 작용하면 대부분의 국민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을 선택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권자가 정치에 대해서 풍성한 대안중 선택할 수 있는 체계가 돼야 진정한 민주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양당제가 정착된 미국의 정치만이 좋은 정치는 아닙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결은 매우 빈약한 선택의 대안만이 존재하는 판입니다. 둘 다가 중도 우파적 정책지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이가 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제한된 선택의 대안은 결국 유권자의 불만족을 낳을 뿐입니다. 사표방지 심리가 심화되면 결국 양당제를 만들고 거기에서 만족해야 합니다.

또 정치인들이 유권자에게 좀 더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선택을 받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극단적으로는 상대당과 반대되는 정책만으로도 상당한 표를 얻을 수가 있게 됩니다. 그 것은 주권자의 표가 가장 가치없어지는 구도입니다. 진정으로 원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이 발을 붙이지도 못하게 만드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지역구도가 확연한 대한민국은 더더욱 양당제를 정착시켜선 안될 일입니다. 결국 영남당과 호남당의 양당구도는 지역주의를 심화시키는 도구에 불과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도 우리는 많이 강요당해 왔습니다. 한나라당을 견제하기 위해서 무조건 반한나라당의 대표주자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종종 비판적 지지라는 이름으로 원하지 않는 보수정당에 투표하고도 진보적 정책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참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사표방지 심리의 노예가 되는 동안 우리의 지지를 먹고 자라난 정치세력은 더욱 정체성이 모호한 잡탕정당이 되곤 하였습니다.

이제 당당히 사표를 던져야 합니다. 비록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더라도 가장 우리의 마음에 맞는 정당과 정치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것이 오늘은 비록 사표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모인 한표한표는 후일에 다양한 정치적 대안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영남당, 호남당, 충청당이 아닌 정책정당들의 탄생에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특정한 거대 정당의 공천장이 당선을 보장하는 일은 없어져야 마땅한 일입니다. 막대기를 공천해도 당선되는 나라의 국민은 그 막대기들에게 얻어 맞을 뿐입니다.

투표는 당장의 정치적 선택일 수도 있지만 먼후일을 위해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행위가 돼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씩 다양한 대안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 것이 주권자가 정치인의 노예가 되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길입니다. 혹시 지역주의의 노예가 되어 있지는 않은지, 사표방지 심리의 노예가 되어 있지는 않은지 모두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내표를 받고도 낙선한 후보는 그 것도 받지 못하고 낙선한 후보보다 훨씬 가치있는 미래의 재목감이 될 것입니다.

당선될 가능성이 없어도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정당을 찍어야 합니다. 아직 없다면 가장 덜 싫은 쪽이라도 선택하면 됩니다. 주권을 포기하는 사람보다는 주권을 미래를 위한 거름으로 삼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당장의 구도에 휘말려서 사표방지심리의 노예가 되어서는 영원히 당신을 위한 정치세력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과감하게 사표가 되는 것을 각오하고 최선의 후보와 정당을 선택할 용기가 필요할 때입니다. 부디 기권하기 보다는 미래를 위한 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태그:#사표방지심리, #양강구도, #강요된 선택, #미래를 위한 밑거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