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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중 회향제를 준비하는 동자승들
ⓒ 조명자
오늘(8월 27일)이 음력으로 7월 15일 백중날이다. 봄부터 한여름까지 논밭에서 땀 흘려 일하던 농부들도 오늘 하루만큼은 호미자루 내던지고 거방지게 놀아도 뭐랄 이 없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제상에 새로 난 과일을 정성껏 올리며 극락왕생을 빌어드리는 날도 오늘이다.

백가지 곡식과 과일이 익고, 세 벌 김매기 끝낸 농부들의 발뒤꿈치가 하얗게 되는 '백종'이지만 불가에선 오늘 하루가 5대 명절 중에 하나일 만큼 중요한 날이다.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한 곳에 은거해 참선과 수행을 닦은 스님들과 함께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상님들의 천도를 위해 정성껏 제를 모시는 날이 오늘이니 아마도 일반 불자들 사이엔 '사월 초파일' 다음으로 중요한 날이 백중일 것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을 위로해 드리는 목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백중, 우란분절인 7월 15일이 일년 중 유일하게 삼악도(지옥, 아귀, 축생)에 빠진 조상들을 구원해 낼 수 있는 날이라니 자식 된 도리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터.

부모님 살아서 효도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불효자는 불효자대로 생전에 못 다한 효도를 할 수 있는 기회이니 만큼 돌아가신 우리 어머님에게 나쁜 며느리였던 내가 어찌 이 날을 그냥 넘기랴. 누구의 부모라 할 것 없이 혹시 돌아가셔서 지옥에 빠졌을지도 모르는 부모님을 극락세계로 구출할 수 있다니 그것만큼 큰 효도가 또 있을까?

아침부터 목욕재계하고 인근에 있는 절로 향했다. 제가 시작되려면 두 시간 남짓 여유가 있건만 부지런한 노 보살님들이 벌써 오셔서 열심히 경전을 읽고 계신다. 보살님들 사이에 앉아 잠시잠깐 호흡을 골랐다.

▲ 목탁 치는 동자승
ⓒ 조명자
벌써 가을 냄새를 머금은 듯한 바람이 법당 안을 휘감는다. 이 바람에 한 생각 실려 날려버린다면 내 속에 들끓고 있던 온갖 시름이 한순간에 별 거 아닌 걸로 바뀔지 누가 아는가? 그런데 갑자기 법당 안이 어수선해졌다. 무슨 아이들 목소리가 속닥속닥 들려 눈을 떠봤더니 가사 장삼을 말끔히 차려입은 동자승 다섯 명이 우르르 몰려들어 온 것이었다.

동자승들을 보니 아이들을 유난히 예뻐하시는 주지스님의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개구쟁이 아이들처럼 동자승과 함께 어울려 웃고, 장난치는 주지스님 모습은 아이들에게 다정한 아빠나 삼촌 진배없었다.

IMF가 끝나갈 즈음, 부모와 헤어진 어린 형제를 주지스님이 맡게 된 것이 동자승을 받게 된 최초의 계기였다. 어느 날 선배가 부모님 천도제를 모신다기에 찾아갔더니 주지스님 방에서 4살, 5살짜리 사내아이 둘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까불고 있었다.

개구쟁이 머슴아들이 노는 모습이 예뻐 죽겠다는 듯 쳐다보시던 스님이 우리들에게 아이들 사연을 소개해주셨다.

"우리 신도님이 갑자기 저 아이들을 데리고 오셨어. 이웃 집 아이들이라는데 IMF 때문에 저 녀석 아빠가 망해버렸는가 봐. 살 집도 없고, 돈도 못 버니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그래서 녀석들 아빠한테 그랬어. 기반 잡을 때까지 내가 성심성의껏 저 녀석들 돌 볼 테니까 형편 되면 아이들 찾아가라고 그랬으니까 언젠가 데려가겠지? 하하하."

다음 해도 그 다음 해도 그 녀석들은 그대로 있었다. 녀석들뿐만 아니라 해가 갈수록 꼬마들이 늘어났다. 두 녀석이 잘 크는 것이 입소문 나 처지가 막막한 사람들이 아이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다 싶어 양육을 부탁하는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주지스님은 아이들을 맡아 키우면서 꼭 승려로 만들겠다는 욕심도 없으신 것 같았다. 어차피 인연 따라 모인 아이들인데 그 인연에 의해 '단기 출가'가 되든지 '장기 출가'가 되든지 아니면 영영 불제자로 남는 출세간으로 가든지 그 모든 것이 '인연법'이 시키는 대로 따르면 된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꼬맹이부터 제법 의젓한 중학생까지. 가사장삼을 단정하게 걸친 동자승들이 '우란분재'를 준비하겠다고 우왕좌왕 난리다. 어떤 동자승은 경전과 목탁을 앞에 놓고, 제일 큰 형처럼 보이는 동자승은 큰 북 앞에 좌정한다.

▲ 아~ 지루해
ⓒ 조명자
큰스님이 오시기 전까지 무릎 꿇고 '좌복'에 앉아 묵상을 해야 하건만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인 아이들에겐 1분이 '여삼추'다. 옆에 앉은 도반 어깨에 뭉개기도 하다, 콧구멍도 쑤셔보다, 그래도 지루하면 엎드렸다 앉았다 주리를 틀며 야단을 치지만 법당 안 시계는 국방부 시계처럼 더디기만 했다.

드디어 '백중 회양식'이 시작됐다. 주지스님의 인도대로 경전을 따라 읽는데 경전 읽는 리듬에 맞게 목탁을 치는 동자승들의 솜씨가 상당하다. 서너 옥타브는 높은 꼬맹이 동자승들의 낭랑한 목소리에 발맞춰 '둥둥 드르르륵 딱딱' 큰 북이 울리기 시작했다.

▲ 북 치는 동자승, 제일 맏형이다.
ⓒ 조명자
제일 큰 형인 듯싶은 동자승. 힘차면서도 부드러운 북 소리를 울리는 두 손이 미끄러지듯 날아간다. 북을 제대로 치려면 손에 힘을 주면 절대로 안 된다. 힘을 최대한 빼고 북채를 가볍게 손목으로 톡톡 치는 기분으로 움직여야만 원하는 북소리가 나게 마련인데 북치는 동자승은 벌써 일정한 경지에 든 것 같았다.

무념무상인 옆 얼굴. 잘 해야 중학교 1~2학년쯤 됐을까? 지루하고 재미없고, 주리가 틀리는 그 맘 때의 까까머리 남자아이의 표정과는 너무나 다르게 무심한 얼굴이었다. 북 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갑자기 애잔한 마음이 든다.

제 마음 제가 어쩌지 못하는 사춘기가 한창일 텐데 할머니뻘 되는 '노 보살'들 속에서 저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북 앞에 앉았을까? 그러고 보니 까불대는 동생들과는 달리 어딘지 근접하기 힘든 무게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 바라춤 준비하는 동자승들
ⓒ 조명자

▲ 바라춤
ⓒ 조명자
제를 끝마치면서 주지스님이 "누구야"하며 동자승의 법명을 불렀다.

"너희들, 보살님들 앞에서 바라춤 한번 보여 드리거라."

체구에 맞게 제작된 바라를 들고 여섯 명의 동자승들이 바라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두 개의 바라가 "체쟁" 소리를 내며 옆으로 비껴가다 슬쩍 올라가는 머리 위에서 안팎이 빠르게 회전하는 바라춤의 묘미가 어설프지만 그대로 살아 있었다.

'바루' 공양을 하는 동자승들과 함께 점심공양을 한 뒤 설거지까지 깨끗이 끝내고 난 뒤 법당 안에 올라가 보니 동자승들이 모여 불장난이 한창이다.

▲ 가사장삼을 벗은 동자승의 단체사진
ⓒ 조명자
"스님들 중 제일 큰 형이 몇 학년이야?"
"중학교 2학년이요."
"그 다음엔?"

사슴처럼 눈이 동그란 동자승이 활달하게 대답을 한다.

"중학교 2학년 형, 1학년 형 그리고 저하고, 재하고 또 저기 친구 셋이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그담에 4학년 하나, 2학년 둘 그게 전부예요."

"법명은?"
"선우, 선철, 선재, 일광, 월광 그리고 선일, 선종, 선도. 크크큭."

목탁도 잘 치고, 바라춤도 멋있었다고 동자승들을 칭찬해주니까 모두들 기분이 좋은지 헤벌쭉 웃는다. "자, 기념사진 찍어줄게 앉아" 그랬더니 쪼르르 앉는 게 어찌나 귀여운지 그럴 수 있다면 데리고 나와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먹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인연 따라 불문에 모여 형제가 된 아이들. 이 동자승들에게 한 때의 이 경험이 인생에서 소중하고 행복한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든. 우리 인생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건 사랑밖에 없으니까.

태그:#동자승, #바라춤, #공양, #백중 회향제, #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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