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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다니면서 글을 만나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사는 세 남자의 이야기. [기자말]
제주도에 내려가 자리 잡은 동창이 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책을 쓰겠다는 아내의 의지도 상당 부분 반영했다.

"카페도 접고 책 쓴다더니, 벌써 3년째야."

카톡 대화 중 친구가 남긴 푸념이다. 책을 쓰는 건 결국 글을 쓰는 일이다. 하지만 어감이 참 다르다. '글을 쓰다'는 감성적, '책을 쓰다'는 왠지 거창함이 느껴진다. 손가락도 이 거창함이 부담스러워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십 년 넘게 꾸준히 글을 쓴 덕분에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다. 직장인이 책을 썼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시간이 있어?', '언제 써?', '언제 쉬어?' 등을 반복해서 묻는다. 이 세 가지에 대한 답을 이해 못 하는 친구는 "한이는 회사에서 일 안 하고 책만 쓰잖아?"라는 기가 막힌 말을 하기도 한다.

시간에 쫓기지도, 피곤하지도, 어렵지도, 물론 회사에서 쓰지도 않았다.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즐거우니까. 요즘도 퇴근하면 오후 9시부터 10시 반까지 글을 쓴다. 아이들이 운동가는 시간이라 적막함 속에서 글을 쓸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무언가를 꾸준히 해낸다는 사실이 오늘도 놀랍다.

내 생각이 담긴 글이 하나둘 쌓이는 게 뿌듯하다. 책을 쓰겠다는 집념으로 글을 쓰지는 않는다. 주제가 떠오르면 마음과 손이 가는 대로 일단 끄적인다. 모니터 앞에 앉아 억지로 쓰려고 하지도 않는다. 무언가 반짝 떠오르면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할 뿐.

짧은 시간 책을 목표로 글쓰기에 임하는 사람이 많다. 오픈 플랫폼에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 적 있다. 모두의 목표는 책 출간이었다. 고작 3시간의 수업을 듣고 책을 쓸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기도 한다. 사이비로 책 내는 비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는 의욕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끈질김이라는 망치로 여러분의 글쓰기를 오래오래 두드리세요!"

수업 마무리 멘트다. 베스트셀러 작가 존 메이슨의 명언 "성공이라는 못을 박으려면 끈질김이라는 망치가 필요하다"를 살짝 바꾼 마무리다.

책을 목표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글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 쓰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고민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십수 년간의 글쓰기 여정이 떠올랐다. 책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페이스를 조절해야 조금이라도 더 효과적으로 오래도록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한 3가지 팁을 전해본다.

하나, 평범함의 재발견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도 특별해질 수 있다.
▲ 영화 <회사원>의 한 장면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도 특별해질 수 있다.
ⓒ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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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까지 써야 해?"

책을 내고 싶어 카카오 브런치에 가입했다는 친구의 말이다. 친구 브런치에는 단기간에 200개가 넘는 글이 쌓였다. 친구는 출간 제의를 받으려고 꾸역꾸역 쓰고 있다고 했다.

단기간에 책을 쓰겠다는 희망찬 목표를 정하고 행복한 상상에만 몰두하면 부담과 고통이 늘어난다. 부담과 욕심은 자유로운 사고의 확장을 제한한다. 글은 누군가에게 드러내는 결과물이다. 스스로 과정을 부담스럽게 몰아가면 재미도 효율성도 떨어진다.

2010년, 블로그에 최신 영화 리뷰를 쓰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영화를 보고 상상하고 분석하는 일이 즐거웠다. 퇴근 후 혼자 영화를 보고, 주말에도 가족을 두고 시간을 내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 보는 일이 일상을 잡아먹는 기분을 느끼면서 즐거웠던 기분도 점점 가라앉았다.

일주일에 5일을 머무는 곳, 직장생활 이야기로 주제를 바꿨다. 남들도 다 겪는 흔한 이야기에 누가 공감할까 싶었지만, 글을 읽고 공감하는 동지가 점점 늘었다. 그 덕분에 에너지를 충전하며 꾸준히 글을 썼다. 평범한 직장생활의 재발견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글이 점점 쌓였다. 블로그에서 카카오 브런치 플랫폼으로 옮겨 글쓰기를 이어갔다.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기자 활동도 하면서 글 쓰는 일을 향유하고 있다. 여전히 거창하지 않은 직장생활 이야기를 남긴다. 어떤 날에도 똑같은 경험은 없고, 살아 있는 한 경험은 마를 날이 없으니까.

둘, 알고 보니 뇌가 돕는 일
 
무엇이든 좋은 습관을 들이면 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 글 쓰는 습관 무엇이든 좋은 습관을 들이면 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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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푹 빠져 살 때가 있었다.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스마트폰에 메모했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도 글을 썼다. 퇴근 후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고 예약 발행을 했다.

반복의 결실인 습관(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글쓰기가 습관이 돼 어느 순간부터 뇌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 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2%밖에 안 되지만 먹는 음식 에너지의 25%를 사용한다. 그래서 우리 뇌는 되도록 에너지를 적게 쓰려고 애를 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는 기꺼이 에너지를 투자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습관이라는 방식으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한다. 우리가 뇌의 에너지를 기꺼이 사용하면서 즐기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 정재승, 책 <열두 발자국> 중

책에서 '뇌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는 기꺼이 에너지를 투자한다'고 했다. 뇌는 에너지 최소화를 위해 습관에 따르는 경향이 있다. 좋아하는 일에 습관을 들인다면 수시로 뇌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글쓰기는 손가락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빼놓지 않는 일과가 되었다. 뇌가 글 쓰는 습관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줘서라고 믿는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뇌가 기꺼이 허락하는 즐거운 취미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행복한 마음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하지 않게 즐겨야 한다. 그래야 오래오래 뇌의 지원을 받으며 좋아하는 습관을 이어갈 수 있다.

셋, 쌓일수록 새끼 치는 글
 
글쓰기의 즐거움
 글쓰기의 즐거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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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이 칼퇴보다 즐거워지는 책>, <회사에 들키지 말아야 할 당신의 속마음> 등 내가 쓴 책의 초석은 오랜 시간 블로그에 쌓인 400여 개의 글이었다. 기존의 글에 새로운 경험을 추가해 수정 및 보완한 원고를 책에 담았다. 출간을 위해 새롭게 쓴 글은 별로 없다.

종종 언론사나 기업 사외보 담당자에게 직장생활 관련 원고 요청을 받는다. 글의 주제를 듣자마자 기존에 써놨던 글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기존 글에 담긴 소재(경험)를 일부 활용하기도 한다. 과거의 글에서 자라난 새싹이 또다시 새로운 글로 탄생하는 과정이다.

글을 많이 쓰다 보면 양이 늘어나는 만큼 실력도 향상된다. 나만의 노하우도 생기고 활용할 소재도 많아진다. 십수 년 전 써 놓은 글을 보면서 삭제하고 싶은 충동이 일 때가 있었다. 

하지만 버릴 글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어떤 경험이든 소중하고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는 법이다. 지금의 내가 다시 수정 보완하면 현실의 내 글로 재탄생한다. 글로 남긴 과거의 경험은 소중한 삶의 흔적으로 빛을 발한다. 내 글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이 글에 '꾸준함', '꾸준히'라는 단어가 8번 등장한다. '글은 꾸준히 써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취미가 되고 즐거움도 누리면서 뇌의 적극적인 지원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거창하지 않게 내가 남기고 싶은 글, 유일무이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즐겁게 썼으면 좋겠다.

직장 다니면서 글을 만나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사는 세 남자의 이야기.
태그:#글쓰기, #남자의글쓰기, #글쓰는습관, #습관의힘, #꾸준한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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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직장인,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아빠, 매 순간을 글로 즐기는 기록자. 글 속에 나를 담아 내면을 가꾸는 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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