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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서울남부출입국·외국인청 앞에 모여 피켓을 들었습니다.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이란 국적 친구의 난민 재심사 신청을 응원하는 시위였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중학생의 참가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피켓팅에 가기 위해 모인 친구들 모습이다.
 피켓팅에 가기 위해 모인 친구들 모습이다.
ⓒ 김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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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40분]

7월 19일 아침, 눈을 떴더니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지각이다. 어제 저녁 늦게까지 연주곡을 준비하고 잠을 잤더니 늦은 것이다. 학교로 뛰어갔더니 교육감님이 우리를 찾으신다고 한다. 오늘 피켓 시위하는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 오셨단다. 엄청난 수의 카메라가 빠져나간 후 우리는 교육감님과 만났다. 교육감님께서 말씀하셨다. '차이는 디딤돌, 차별은 걸림돌'이라고. 교육감님까지 나서주시다니, 우리는 감동했다. 누군가의 '교육감 잘 뽑았네' 하는 농담에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오전 11시 40분]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집합장소인 이란 친구의 교실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점심은 선생님들이 준비하신 밥버거. 점심을 먹으며 시위에서 부를 노래를 연습했다. 학생 46명, 선생님 3명, 어머님 4명이 우리 참여 인원이다. 아쉽다. 학부모 동의서를 받지 않았다면 100명도 넘게 참가했을 텐데. 시위라고 하니 위험할까 봐 말리시는 부모님들 때문에 참가인원이 확 줄었다. 1학년은 참가자가 고작 2명.

시위장소까지 가는 길은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집에 갔다 오는 친구를 기다리느라, 교통카드 충전이 필요한 친구를 기다리느라, 화장실 가는 친구를 기다리느라, 시간은 자꾸 지체되고 현장에서 대기 중인 기자들에겐 언제 도착하느냐는 문의가 빗발치니 학생회장과 선생님들도 초조해하셨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 한 대에 구기듯 모두 몸을 몰아넣고 간신히 시위장소에 도착한 순간, 우리는 아찔했다.

카메라 수십 대, 경찰들, 뜨거운 햇볕. 몰려드는 기자들을 정리하며 국어 선생님께서 우리를 조금 그늘에 있는 곳에 앉히셨다. 학생회장은 기자들에게 시위 진행 상황을 설명했고 그 동안 우리는 마이크를 설치하고 플래카드를 건 후 피켓을 꺼냈다. 어머님들은 얼려온 물을 나눠주시고 우리가 피켓을 높이 드는 순간, 음악이 울려 퍼졌다.

피켓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시위하는 친구들 모습이다.
 피켓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시위하는 친구들 모습이다.
ⓒ 김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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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20분]

예정보다 20분쯤 지연된 집회의 시작. 음악 속에 피켓팅 하는 것도 잠시, 나와 친구 지민이에게 기타를 연주하란다. 정신없이 마이크를 잡고 친구들과 함께 '걱정말아요 그대'를 부르는 동안 마침내 이란 친구가 일어섰다. 드디어 난민 지위 재신청을 하러 가는 것. 신분 노출 때문에 이란인 아버지가 오지 않아 이란 친구의 담임선생님과 친구 5명이 동행했다.

이란 친구의 난민신청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순식간에 모두 빠져나가고 우리는 잠시 여유를 가지며 음악 속에서 피켓팅을 계속했다. 아이들은 핸드폰을 꺼내 아침에 올라온 교육감님 관련 기사를 검색하고 시위에 함께 참여 못 한 친구들의 응원 문자를 확인하면서 우리도 구호를 외치자고 주장했다. 원래 구호 없는 피켓팅으로 진행하려던 학생회 측에서 난처해하고 있는데, 이번엔 어머니들까지 가세해 구호 외치자고 선생님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설득에 못 이겨 학생회장과 의논해 몇 가지 구호를 외치기로 했는데, 철없기만 한 우리에게 매번 떠밀려 여기까지 와 서계신 마음 약한 선생님을 보니 나도 몰래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던가. 국어 선생님과 학생회장 지유, 선도부장 현준이는 아침 7시 30분에 등교해서 밤 8시까지 매일 준비에 매달렸다. 체력이 방전돼 2~3분씩 잠깐 틈이 날 때마다 의자를 붙여놓고 쓰러져 있는 그들을 볼 때의 안쓰러움이란. 도움은커녕 방해만 됐던, 그들을 힘들게 했던 수많은 일은 차마 여기에 담지 못한다.

그들뿐이 아니다. 매일 1층에서 4층까지 전 교실을 뛰어다녔던 지민이, 규비, 은하, 집회신고를 위해 양천경찰서에서 4시간 기다려야 했던 범중이 어머니, 플래카드 만들어주신 정원이 어머니, 언론사마다 전화해 취재를 부탁해 주신 이안이 아빠. 친구의 목숨이 걸린 일이기에 필사적이었던 우리의 몸부림. 그것이 오늘을 만든 것이다.

피켓에 친구와 관련된 문구를 적어서 시위를 했다.
 피켓에 친구와 관련된 문구를 적어서 시위를 했다.
ⓒ 김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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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30분]

드디어 연락이 왔다. 이란 친구의 난민 재신청이 접수되었단다. 우리는 손뼉을 쳤다. 접수 대기시간만 6시간, 불친절과 경멸, 혼자서 출입국관리소 가던 길, 내 친구는 1시간 만에 친절하게 접수증을 받았고 친구들과 함께 와서 친구들과 함께 돌아간다. 처음으로 사람대접 받았노라고 말하는 내 이란 친구. 학교 밖에서 내 친구가 겪어야 했던 멸시와 수모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친구가 피켓시위장으로 돌아오자 기자들이 다시 몰려왔다. 수많은 기자가 친구들과 어머니, 선생님을 인터뷰하느라 구호를 외치기로 한 우리의 계획은 1도 실현되지 못했다.

[오후 4시]

우리는 집회를 정리했고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집회를 해산하면서 국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우리가 한 일은 한국 인권역사에 작은 디딤돌이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매일 매일 우리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내 이란 친구,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은 내 오랜 친구, 우리는 지금 알아가고 있다. 세상의 어두운 장벽을 무너뜨리는 건 진심과 진심의 손 잡기라는 걸.

마지막으로 한 마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친구는 한국인이다.


태그:#피켓시위, #학생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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