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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 북적,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골라 살 수 있고, 흥정하는 재미가 있어서. 깎을 수도 있고, 덤도 있고, 인정도 있고…."
"힘들고 그럴 때 시장에 가서 사람들과 섞이다 보면 위로도 되고 힘도 나곤 해."

재래시장을 좋아한다는 몇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대략 이처럼 말하더군요. 공감합니다. 같은 이유로 재래시장을 좋아하고, 그래서 대형마트나 할인마트보다 선호하거든요. 그런데 전, 이에 '장날의 추억'을 더해 재래시장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대대로 이어져 온 생선가게(2017.3.12)
 대대로 이어져 온 생선가게(2017.3.12)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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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마을 가까운 곳에 '원평장'이 열리곤 합니다. 4·9일에 열리는 오일장인데요. 소시장(쇠전, 牛市場)이 따로 열릴 정도로, 장날이면 연극패들이 모여들어 연극을 할 정도로 규모가 컸던 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점포 몇 개 달랑 열릴 정도로 쇠락하고 말았답니다.

부모님은 장날이면 팥죽이나 국밥을 사주시곤 했습니다. 장날마다 설탕 듬뿍 묻힌 핫도그나 번데기를 사오시곤 했고, 명절을 앞둔 장날 아버지가 메고 오신 광목 자루 속에는 설빔이 들어 있곤 했답니다. 밤새워 풀어도 될 정도로 장날 추억이 많네요. 장 가까이 살아 다른 사람들보다 장날과 얽힌 추억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조선시대 선조 때 생겼다는 원평장의 쇠락이 아쉬워 길을 가다가도 시장 풍경이 보이면 기웃거리곤 합니다. 어느 지역을 여행할 때면 주변에 오일장이 서나? 검색하기도 하고, 장날을 염두에 두고 여행 날짜를 잡은 적도 있습니다.

지난 10일~12일, 친정 식구들과 강진-정약용 남도 유배길 도보여행을 했습니다. 많은 음식점들이 체인점화 되어 지역만의 특색 있는 음식들이 많이 줄었다지만, 그래도 여행 중 그 지역만의 음식을 먹는 재미는 여행의 큰 즐거움이기도 하죠. 무얼 먹었는가에 따라 다시 가고 싶은 곳 또는 그다지 별로인 곳으로 기억되기도 하고요.

1913송정역시장 안 쉼터(2017.3.12)
 1913송정역시장 안 쉼터(2017.3.12)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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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았을까요?(2017.3.12)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았을까요?(2017.3.12)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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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걸을 목적으로 갔던 만큼 11일 오전 7시 40분쯤부터 저녁 8시 무렵까지 걸었는데요. 애초 7시 무렵 강진읍으로 돌아와 강진의 특별한 음식인 한상차림 한정식을 먹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8시 넘어서야 강진읍으로 돌아왔고, 숙소를 정한 후 식당에 들어간 8시 30분은 한정식을 주문해 먹기에는 좀 늦은 시각이라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광주의 특별한 음식? 광주송정역에서 기차 탈 거라고 했지? 거기서(유스퀘어터미널(광천터미널))에서 10분쯤 걸어가면 지하철 농성역이 나오거든. 지하철 타고 광주송정역까지 가. 송정역 앞 떡갈비 골목 유명하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 맛있다는 소리 나올 정도로 대부분 맛있어. 거기서 떡갈비 먹고 시간 되면 그 맞은편에 있는 1913시장에 들러봐. 톡톡 튀는 재미있는 가게들이 많을 거야. 군것질거리들도 많고…. 수요미식회에도 나왔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더라. 말하면 잘 모르더라고."

그런데 막상 아쉽더군요. 난생 처음 도보여행은 처음이라는 새언니와 큰언니, 그리고 형부가 마음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광주에서라도 폼 나는 음식을 먹어 보자.',  결혼과 함께 광주에서 25년째 살고 있는 고향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이처럼 귀띔했습니다. '1913 송정역시장(1913 역전시장)'은 그렇게 갔습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로 농촌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1980년대 이후 대부분의 지방들은 인구 침체를 겪는데요. 우리의 재래시장(오일장이나 전통시장 등)들이 활기를 잃은 원인이기도 하죠. 1990년대 중반 서울·경기를 시작으로 우후죽순 생겨난 할인마트나 대형마트 등에 밀려 재래시장들은 더욱 큰 침체를 겪게 됩니다.

'1913 송정역시장'은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1913년에 생긴 시장으로, 과거에는 '매일송정역전시장'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재래시장들처럼 1980년대 무렵부터 쇠락했다고요. 이런 시장이 북적이기 시작한 것은 청년들의 창업이 활성화되면서.

글귀가 멋있지 않나요? 모두 담고 싶어 사람이 없을 때를 한참 기다려야 했답니디.(2017.3.12)
 글귀가 멋있지 않나요? 모두 담고 싶어 사람이 없을 때를 한참 기다려야 했답니디.(2017.3.12)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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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라면봉지가 눈길을 끌었던, 세계 여러 나라의 봉지라면 끓여주는 라면집(2017.3.12)
 독특한 라면봉지가 눈길을 끌었던, 세계 여러 나라의 봉지라면 끓여주는 라면집(2017.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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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도 고로케도 사오고 싶었으나….(2017.3.12)
 식빵도 고로케도 사오고 싶었으나….(2017.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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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창업이 작년 4월부터니 며칠 후면 1년이네요. 옛날부터 있었던 시장인데 좀 그랬어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창업을 하면서 유명한 곳이 되었습니다. 옛날 가게들과 청년들 가게가 혼합되어 있어요. 우리나라 재래시장들이 많이 죽었잖아요. 취업 못하는 젊은 사람들도 많고. 이 둘을 해결한 이런 아이디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이곳은 정말 성공하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천천히 구경해 보세요. 재미있는 가게들도, 재미있는 음식들도 많아요. (무등산 등산 했나?  물어보길래 우리의 여행 이야길 했더니) 그런데 형제들끼리 여행 참 부럽네요. 나도 형제들과 여행하고 싶네요" (쥐포집 남자)

떡갈비 골목에서 떡갈비를 먹은 후라 우리 모두는 배가 많이 불러있었습니다. 참, 광주송정역 떡갈비의 특징 중 하나는 갈비탕 같지만 매우 맑은 국물이 서비스로 나온다는 것. 투명한 국물 맛이 담백하면서 매우 시원했습니다. 떡갈비 6인분에 누룽지 두개 별도로 시켜 7만 4천 원이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그리 부담스럽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음식 맞죠?

여하간 우리 모두 배가 부른 상태. "우선 쥐포 한 마리씩 먹자. 내가(큰언니) 사줄게", 쥐포가 구워지는 사이 쥐포집 남자에게 "친구가 말해줘 우연히 왔는데 재밌네요!"라고 했더니 이처럼 말했는데요. 쥐포 아저씨 말대로 독창적이며 재미있는 가게들이 많았습니다. 독특한 간판들이나 가게 모습, 메뉴판이나 파는 음식들 등, 구경거리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입에선 "와~! 아이디어 좋다!", "오빠! 저기 갱소년 좀 봐. (설명)문구가 재밌지?", "가게가 근사해서 그러나? 앉아서 먹는 사람들 모습까지 화보 풍경 같다" 이와 같은 감탄들이 계속 쏟아졌습니다.

국밥집과 빵집 등, 특히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가게가 몇 곳 보였는데요. 그들이 그토록 줄 서서 기다릴 정도의 그 음식이 도무지 궁금해 발길이 경쾌하게 떨어지지 않더군요. 그럴수록 배가 불러 그 무엇도 먹을 수 없음이 원망스럽고, 30,40분 후쯤 기차 타고 떠나야 하는 것이 속상하기까지 했습니다.

참, 1913 송정역시장은 최근 몇 년 전부터 지방자치 주도로 특히 많이 조성되고 있는 관광형시장입니다. 그래서 시장은 시장인데 음식 재료 그런 것보다 음식 자체를 파는 가게가 대부분입니다. 찬거리 등을 사려면 인근에 열리는 송정시장으로 가야한다네요.

술 마시는 사람들까지 멋있어 보이던 집. 옛날부터 있어온 가게와 청년창업몰이 나란히….(2017.3.12)
 술 마시는 사람들까지 멋있어 보이던 집. 옛날부터 있어온 가게와 청년창업몰이 나란히….(2017.3.12)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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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가게들과 청년창업 가게들이 공존하는 곳이나 가게 대부분은 옛날 건물을 이용했다고 하네요(2017.3.12)
 옛날 가게들과 청년창업 가게들이 공존하는 곳이나 가게 대부분은 옛날 건물을 이용했다고 하네요(2017.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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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로 초코파이를?(2017.3.12)
 쌀로 초코파이를?(2017.3.12)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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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카페(2017.3.12)
 길모퉁이 카페(2017.3.12)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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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몰랐던 곳을 친구 덕분에 얼떨결에, 그리고 기차 시간을 염두에 두고 잠깐 들렀기 때문에 여유 있게 둘러보지도 못했고, 일행과 다니다보니 사진도 풍성하게 담지 못한 데서 오는 아쉬움으로, 어떤 시장일까 궁금해 검색해봤습니다. 다른 사람들 사진과 이용 후기를 보니 못 보고 온 것이 더 많네요. 가뜩이나 아쉬운 터에 더욱 더 아쉬워지게 말이죠.

이용자들 후기에 의하면(못 봤는데), 기차표를 파는 곳도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제2의 대합실로 불리기도 한다고요. 양갱이나 김부각 등, 음식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씨와 수요미식회에서 극찬한 음식점들이 몇 곳이나 있다고요. 빵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들르는 빵집도, 세계 여러 나라들의 라면을 끓여주는 집도 있다고 하네요.

참, 토요일에는 야시장(오후 5시~ 11시까지)이 열리는데, 세계 10여 개국의 음식들을 맛볼 수 있고, 민속공연도 있다고 합니다.

여하간 너무나 아쉽기만 합니다. 그래서 또 가봐야겠단 생각뿐입니다. 사람들이 많아 가게마다 대표 먹거리 구경도, 사진 찍기도 좀 힘들었는데, 여유 있게 가서 사진도 좀 더 멋지게 담아 보고, 뭣보다 이것저것 먹어보고 싶네요. 평소 맛 집 기행 그런 걸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닌데도 1913송정역시장의 먹을거리들은 궁금하기만 합니다.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데 누군가와 술 한 잔 나누고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어우러져 풍경이 멋있는 술집도 있더군요. 그래서 남편하고 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노력과 열정이 빛나는 곳이라 그런지 그날 시장 구경하며 아이들 생각이 나더군요. 남편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함께 갈 수 있는 날을 물어봐야겠습니다.



태그:#1913송정역시장, #재래시장(전통시장), #원평장(오일장), #도보여행, #몽실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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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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