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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 3월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후보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김영삼 전 대통령.
 지난 1997년 3월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후보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김영삼 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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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불법사찰의 배후로 지목된 MB(이명박)의 얼굴에서 YS(김영삼)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MB 정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전방위적 사찰에서 YS 정부 탄생에 일조했던 이른바 '초원복국집' 사건과 YS의 차남 김현철씨에게 도청-사찰정보를 보고한 국가안전기획부 '미림팀'의 어두운 그림자가 중첩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에서 공직자 직무감찰을 수행한 조직을 공직윤리지원관실로 '부활'시켜 대통령과 동향(영일-포항) 사람들인 '영포 라인'으로 채웠다. 이들은 3년 동안 공직자와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사찰했다. 그런데 민간인(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을 불법사찰한 꼬리가 밟히자 '가카'의 '영포 라인 졸개들'은 '대포폰'과 '디가우저'까지 동원해 증거를 인멸했다. 그것이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의 본질이다.

그러나 '가카의 졸개들'은 모든 증거를 인멸하지는 않았다. 아니 어쩌면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는 '가카'의 지시를 명(命)받아 불철주야 견마지로 했던 자신들의 '활동상'과 '공적'을 보상받기 위한 물적 증거를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중의 하나가 검찰이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근무한 김기현 경정 집에서 압수한 USB(이동식 저장장치) 메모리다.

미림팀과 초원복국집, 그리고 '영포 라인'의 노골적인 지역색

안기부 도청조직 '미림팀'에서 녹음한 이른바 'X파일' 테이프(왼쪽. MBC 화면촬영)와 1997년 세풍 사건 검찰 수사기록.
 안기부 도청조직 '미림팀'에서 녹음한 이른바 'X파일' 테이프(왼쪽. MBC 화면촬영)와 1997년 세풍 사건 검찰 수사기록.
ⓒ 연합뉴스/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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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 민간인 불법사찰은 YS 정부에서 '부활'시켜 정·재계 및 언론계 주요 인사들을 미행 도청한 안기부 '미림팀'과 판박이다. 미림팀은 안기부 직제상 '여론조사팀'으로 존재했지만 실제로는 '비선 사조직'으로 운영되었다. '문민정부 소통령'으로 통한 김현철씨는 경복고-고려대 동문인 오정소 대공정책실장(이후 차장 승진)으로부터 도청으로 취득한 '생정보'를 보고 받았다. 고용노사 담당인 이영호 비서관이 민정수석실을 따돌리고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보고를 받은 것도 닮은꼴이다(지난 톺아보기 <불법사찰은 '한국판 워터게이트-위키리크스' / 'MB 졸개들'의 좌충우돌 바보행진... 어이없다> 참조).

선거를 앞두고 공개된 미행과 도청의 흔적은 또 다른 추억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민간인 불법사찰은 그 증거물들이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 1992년 12월 15일 대선 직전에 폭로된 초원복국집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민간인 불법사찰은 초원복국집에서 '속살'을 드러낸 '우리가 남이가'의 재판이다.

그가 정치인이었던 것은 불과 1년 안팎의 시간이었다. 그 사이 그는 원내 31석을 가진 제3당의 대표와 대선후보를 지냈고, 또 '반값아파트'를 비롯한 센세이셔널한 공약과 '초원복국집 회동 폭로' 사건 등으로 정치권에 돌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 정치판에 돌풍을 몰고 왔던 정주영 그가 정치인이었던 것은 불과 1년 안팎의 시간이었다. 그 사이 그는 원내 31석을 가진 제3당의 대표와 대선후보를 지냈고, 또 '반값아파트'를 비롯한 센세이셔널한 공약과 '초원복국집 회동 폭로' 사건 등으로 정치권에 돌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 통일국민당 선거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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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기춘 법무장관은 부산시장과 경찰청장 등 기관장들과 초원복국집에 모여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 관권선거를 획책했다. 이에 동향을 탐지한 정주영 후보 측은 전직 안기부 직원과 도청장치를 동원해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돼" 등 기관장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대화를 녹음해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자 김영삼 후보 측은 이 사건을 음모라고 규정하고 역공을 취했으며, 주류 언론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관권선거의 부도덕성보다 주거침입에 의한 도청의 비열함을 더 부각시켰다. 이 때문에 통일국민당과 정주영 후보가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고, 영남 지지층이 결집하는 결과를 낳았다. 선거결과 역시 김영삼 후보의 당선으로 '우리'(대구경북과 부산경남)가 '남'이 아님이 입증된 셈이다.

안기부 미림팀은 현장 도청이라는 불법 수단을 동원해 수집한 첩보를 토대로 정보를 생산했지만 정보를 왜곡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일부 공직자 동향정보를 보면, 노골적인 '지역색'을 띠고 있다. 영포 라인이 주축이 된 지원관실에서 보고자의 '입맛'에 따라 동향정보 대상자에 대한 정보 왜곡과 주관적 평가가 개입되었을 보여준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호남출신이라는 소문... 교체해야"

동향보고 문건 가운데 '유OO 경찰청 정보1분실장 동향보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원관실의 경찰 간부 동향보고는 총경 이상급 간부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는데 경정인 유 실장이 동향보고 대상이 된 것부터가 이례적이다. 이는 결국 유 실장이 특정지역(광주광역시) 출신이라는 점과, 그럼에도 정보파트 핵심 보직을 맡고 있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향보고에도 그런 점이 '노골적'으로 적시돼 있다.

◦ 정보1분실장은 항상 정보 왜곡·누설 의혹을 받기 쉬운 자리이기 때문에 충성심이 담보되지 않은 호남인사가 분실장으로 근무하면 보고서가 아무리 공정하다 하더라도 사장되거나 평가절하 되는 등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어 정보분실장은 충성심이 담보되어야 하며

◦ 현재 분실장은 지역적 편향성을 띄고 업무를 추진하고 사적 정보활동이 심하여 부하직원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어 교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여론

◦ 현재 정보2과 1계장은 1분실 보고서를 모두 보며 이를 바탕으로 상부기관에 보고하는 충성심이 담보되고 공정해야 하는 주요 보직으로 현재 1계장이 정보1분실장, 정보4과장 등 호남출신들과 친하며 인사기록카드에는 출생지가 서울로 나와 있지만 부모님의 영향으로 호남출신이라는 소문이 있으며

◦ 현재까지 문제점이나 부정적 여론은 없으나 앞으로는 1계장 자리도 충성심이 담보되는 인사로 발령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내부 여론

"호남 출신 인사는 충성심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편견을 근거로 "정보 왜곡·누설 의혹을 받기 쉬운 자리에 앉혀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특정지역에 대한 편견이 정부 조직의 공문서에 버젓이 등장하는 점이 놀랍다. 심지어 서울 태생인 정보2과 1계장(경정)에 대해서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호남출신이라는 소문"과 함께 경찰청 정보국의 호남 출신 간부들과 친한 점을 거론하면서 '예방' 차원에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정보 왜곡과 편견을 넘어선 '현대판 지역 연좌제'다.

동향보고는 호남 출신 솎아내기 위한 '표적 사찰' 결과물?

민간인불법사찰 진상규명 촉구 촛불집회가 4일 오후 서울시청 부근 대한문앞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비상행동' 주최로 열리고 있다.
 민간인불법사찰 진상규명 촉구 촛불집회가 4일 오후 서울시청 부근 대한문앞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비상행동' 주최로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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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사찰-동향 보고 문건에는 영·호남 지역 인사 간에 뚜렷하게 대비되는 동향 보고나 사찰 결과가 포함돼 있다. 대체적으로 호남 출신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많고, 영남 출신에 대해서는 우호적 표현이 눈에 띈다. 이 때문에 기관장이나 핵심 보직에 있는 호남 출신을 솎아내기 위해서 '표적 사찰'을 한 것이라는 의심을 살 만한 대목이다.

예를 들어 박OO 총경(전북 정읍)에 대해서도 "호남 출신 직원들과 비선 조직인 민관 협력단체(향우회)를 결성하는 등 청렴성이 의심된다"고 동향보고에 기록돼 있다. 또 이OO 소방감(전남 순천)의 경우 "같이 근무하던 경북 출신 OOO 계장을 중앙소방학교로, 경북 출신 구조구급과 OOO 계장을 제주도로 발령냈다는 후문으로 지역색이 어느 누구보다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같은 경찰대 1기 출신 고위간부에 대한 청렴-도덕성 평가에서도 한 호남 출신 치안감에 대해서는 "OO서장 재직시 지역 건달과 골프를 치는 등 자주 어울렸고, 업무능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진 교통안전계장을 편애하여 청렴성은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반면에, 영남 출신 치안감들에 대해서는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 외부인은 만나지를 않고 술자리 참석도 최소화하는 등 자기관리가 뛰어나 관련 잡음은 없음"(이강덕, 경북 포항) "부인이 교사이며 사생활이 깔끔하고 자기관리가 뛰어나 관련 잡음은 없음"(서천호, 경남 남해)으로 평가해 대조를 이뤘다.

경찰 이외에도 공직자 재산공개 당시 최저액으로 언론에 회자된 최성룡(전남 나주) 소방방재청장 등을 제외하고는 호남 출신임을 문제 삼아 부정적 평가를 내린 사례가 많았다. 이를테면 한 호남 출신 간부에 대해서는 "DJ정부 소방준감으로 승진한 전 정부 수혜자이면서도 계속 중용되었으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 간부공채 출신 선배들과 사이가 좋지 않음"이라고 악평을 한 반면에, 포항 출신 간부에 대해서는 "OO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는 등 전형적인 노력형으로 공사생활이 건전하다는 평"이라고 상반된 평가를 했다.

심지어 보건복지부 인사과장을 지낸 김문석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장에 대해서는 '경기 수원 출생'이라고 적시하고서도 "보건복지부 특정파벌(호남-서울대 사회복지학과)의 중심인물로서 정보를 독점하고 인사를 농단함"이라는 표현과 함께 복지부내 '호남-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출신 인맥의 명단을 열거하고 있다. 김문석 국시원장은 MB 정부의 공기업 '표적 사정', 즉 가카의 졸개들이 동향보고에 적시한 표현으로는 "전 정부에서 부적절하게 임명된 공기업 인사 가려내기"의 주요 표적이었다.

군사정부 시절의 '호남 홀대'를 넘어선 '호남 학대'

국가 정보기관에서는 직원을 공채할 때 지역 할당제를 적용한다. 국가정보원에 상대적으로 지방 국립대 출신이 많은 배경이다. 이같은 원칙은 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도 지켜졌다. 특정지역 출신의 과다 대표성과 권력 독점은 조직 안팎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것을 막아 정보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정보의 왜곡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이 작성한 장·차관 직무역량 평가나 공직자 동향보고서 말미에 첨부한 '자료 입수 경위'를 보면 거개가 각 해당 부처의 영포 라인 공무원들과 감사관실 직원 그리고 해당부처에 출입하는 '조중동' 기자들과의 면담 결과다. 조중동 출입기자들의 장·차관 평가를 반영한 면담결과는 실적을 과시하기 위해 '녹취록'까지 첨부했다. 결국 주고받은 정보의 '소스' 자체가 '같은 편끼리'다보니 생산된 정보도 왜곡과 편견으로 가득찰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간인 불법사찰에 동원된 영포 라인 졸개들은 공직윤리지원관들이 아니라 공직윤리'파괴관'들이었다. 그들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보좌하기 위한 공직자 동향보고를 명목으로 내세웠지만, 내부적으로는 비밀 사조직을 만들어 호남 출신 공직자들을 솎아내고 '왕따' 시키기 위한 '현대판 지역 연좌제'를 작동시켰다. 이는 과거 군사정부에서부터 김영삼 정부까지 이어진 공직사회에서의 '호남 홀대'를 넘어선 '호남 학대' 수준이다.


태그:#불법사찰, #영포 라인, #초원복국집, #미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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